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최근 ‘제9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진행, 기존 일상부문에 고용부문이 추가됐다.

공모전 결과 이음미 씨의 ‘빙산의 일각’ 일상부문 대상, 박수현 씨의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 고용부문 대상 등 총 30개 입상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2편,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5편을 소개한다. 열다섯 번째는 고용부문 우수상 수상작인 한윤경의 ‘그의 자리’이다.

그의 자리

한윤경

엄마의 회사에 그 사람이 있었다.

다른 이들보다 20분 일찍 와서는 미리 사무실을 청소해놓고 재고를 확인하고 다른 이들의 커피까지 타놓고 헐레벌떡 들어오는 이들에게 웃으며 커피를 건네는 사람. 모두가 꺼리는 일을 자진해서 웃으며 기꺼이 하는 사람. 서로들 하기 싫어 야금야금 눈치만 보던 새에 어느 샌가 눈치도 못 채게 정리해놓고 생색조차 낼 줄 모르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가 일하는 곳은 마트였다. 근처의 아파트 주민들이 매일 입구가 닳도록 오고가는 그 마트. 하루에 수천, 수만 명이 장을 보러오는 그 곳은 가벼운 마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왔던 젊은이들도 혀를 내두르고 도망가곤 하는 마트였다.

그 마트에서 그는 제법 유명한 사람이었다. 조금 바보 같을 정도로 착하고, 어수룩해 제 이득을 챙길 줄 모른다고. 엄마는 항상 그 사람을 그렇게 말했다. 조금은 영악하게 쉬운 일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일을 미뤄도 될 텐데 그는 항상 그렇게 모든 일을 자진해서 떠맡는다고 하였다.

엄마가 일하는 곳은 신선식품 코너였다. 각종 튀김류부터 반찬, 식사를 만들어내는 그 곳은 엄마 나이대의 아주머니도 대개 일하시는 곳이라고 하였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소란스러운 여자휴게실과 깔깔거리는 웃음 사이로 그가 조용히 노크를 하고 휴게실 앞 테이블에 커피를 몇 잔 두고 갔었다.

그 커피를 자연스레 가져와서는 다들 마시며 다시 전날 남편과의 작은 언쟁을 말하며 휴게실은 명랑한 웃음소리가 가득 찼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항상 출근을 하면 꾸벅거리며 90도로 인사를 하고 커피를 타서 두고 갔고 그런 그의 친절함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마움도 점차 옅게 흐려졌다.

항상 대량으로 들어오는 재료는 기본 20kg 단위를 넘어갔고 아주머니들은 지나가는 남자 직원들을 불러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어야 했다. 흔쾌히 옮겨주는 직원도 있었지만 굉장히 귀찮은 기색 가득히 들어 올리는 시늉을 하다가 안 되겠다고 가버리는 사람도 많다고 하였다. 꼭 그럴 때면 다들 옆 냉장실에서 쌀을 씻던 그에게 찾아가 다들 옮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럼 그는 조용히 포대를 들어서 놓고 여사님 허리들 다치시면 안 되니 본인에게 말해달라며 조금 부끄러워하며 말했다.

그렇게 착한 사람을 왜 다들 얕잡아 보느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조금은 민망한 듯 내 눈을 피하고 ‘손과 말을 조금 많이 떨어.’라고 하였다. 그는 장애인 고용 복지로 인해 입사한 사람이라서 사람들은 조금씩 그를 얕잡아봤었다고 하였다. 누구는 군대도 다녀오고, 대학교도 졸업하고 겨우 들어온 회사 문턱을 장애란 이유로 쉽게 들어왔다고 그렇게 미워들 한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 남자들끼리 모여서 담배를 그렇게 많이 피잖니. 그 애는 담배도 안 피니까 그 뙤약볕에 세워놓고 자기들끼리 그늘에서 낄낄거리고 쉬었다더라.’ 엄마는 한숨을 푸욱 쉬었다. 같이 일하는 아주머니들은 그에게 매번 곤란한 질문을 하고 즐긴다고. ‘여자친구는 있니’, ‘아휴 있었겠어? 여자애들도 눈이 있지’, 라며 그렇게 크게 웃는다고. 그렇게 당하지 말고 한 번쯤은 크게 화를 내라고 엄마가 답답함을 못 이겨 따로 불러다 말을 하자 그는 늘 그랬듯이 뒤통수를 긁적이며 헤헤 하고 감사하다며 또 그렇게 꾸벅하고 인사를 했었다.

그런 그는 다섯 남매 중 넷째라고 하였다. 위로 누나 셋에, 동생 하나. 누나들은 정말 예쁘다고, 머리도 좋고 공부도 잘한다고. 동생은 착하고 형 말을 그렇게 잘 듣는다고. 엄마가 보여준 그의 프로필은 가족사진이었다. 그의 말대로 그렇게 예쁘지는 않았지만 서로 깊이 아끼는 듯한 닮은 얼굴 일곱이서 그렇게 사진관에서 빼어 입은 사진을 보고 있자니 나는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말 한마디, 얼굴 한 번 본 적 없지만 어쩐지 조금은 둔한 몸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다 눈이 마주치면 어색하게 씨익 웃고 꾸벅하고 인사하는 부끄럼 많은 그를. 사진 속에서는 손도, 말도 떨지 않는 그를 보며 나는 어쩐지 그를 꼭 잘 아는 사람 같았다.

그런 그가 누군가와 싸웠다는 소문이 들려온 것은 몇 개월 전이었다. 작은 언쟁이 아니라 욕설과 몇 번의 주먹다짐이 있었다고 하였다. 그와 싸웠다는 아르바이트생은 모험담을 늘어놓듯 같이 일하는 형들 앞에서 신이 나서 떠들어대지만 그는 호기심에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고 묵묵히 일을 했다. 원인 제공이나, 누가 때렸는지는 중요하지 않았고 그가 아르바이트생을 때렸다는 유언비어만이 진실처럼 퍼져나갔다. 그런 말들 신경 쓰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이제는 억지 티가 선뜻 나게 웃어 보이고 팀장님이 불렀다며 면담하러 간다며 자리를 피했었다. 엄마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기 전 날이었다.

그리고 그의 퇴사는 조용히 이루어졌다. 팀장 면담과 사직서 제출, 유니폼 반납이 순차적으로 아주 조용히 이루어졌다고. 인력난이라고 항상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바쁘던 인사팀 그 누구도 그를 붙들지 않았다고. 그의 퇴사는 그저 그의 락커가 비워지고, 스케줄에서 이름 한 줄이 빠지는 정도의 일이었다고. 그 역시 내일 돌아올 사람처럼 꾸벅거리고 인사를 하고 조용히 사무실을 나갔다고 했다.

그렇게 나가는 그를 급하게 붙든 것은 엄마였다.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 가서 너는 안 때렸다고 사실을 말하라며 그의 어깨를 붙잡고 흔드는 엄마를 두고 그는 정말 아이처럼 울었다고 하였다. 물건들이 잔뜩 쌓여 어둑하고 먼지냄새 가득한 그 복도에서 그는 일곱 살 난 아이처럼 팔로 얼굴을 가리고 목 놓아 엉엉 울었고 엄마는 그저 그의 등을 쓸어주며 왜 그러니, 왜 그렇게 우니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한 번은 엄마가 그에게 물어봤더랬다. 같은 돈 받고 일하는 곳에서 너는 왜 그리 열심히 하느냐고. 그런 엄마의 질문에 그는 조금은 웃어보였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 하면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겠죠?’ 그 대답에 엄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조용히 그가 타준 커피를 마셨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하며 내게 보이지 않으려 고개를 돌리고 맺힌 눈물을 닦았다. 그냥 사람 하나 나간 자리가 아니라고. 그냥 자리가 아니라고. 그건 그냥 자리여서는 안됐다고.

그가 나가고 얼마 되지 않아 탕비실은 사람들이 먹다 남긴 종이컵과 커피 찌꺼기가 쌓여서 눈뜨고 못 볼 지경이 되었다고 하였다. 탕비실 쓰레기통은 컵들이 뒤엉켜 섞이다 못해 넘칠 정도로 미루다 벌레가 생길 지경이 되었다. 사무실에는 먼지와 서류 조각이 바닥을 굴러다니고 전날 마시다 남은 커피를 쏟아 서류가 엉망이 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제야 그가 그립다고 하는 사람들도, 결국엔 또 누군가에게 잡일을 떠넘기려 하는 사람들도 모두 한번 씩 떠올렸다. 사실 그가 그저 회사를 다니고 싶었던 청년이었다는 것을 다들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저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이 기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싶었던 사람일 뿐이었다는 것을.

엄마의 회사는 그 사람이 있었다.

순진해서 사람 말을 전부 믿고 꾀를 부릴 줄 모르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엄마는 아직도 그를 떠올린다.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이 떠나던 그가 그리도 서럽게 울던 모습을. 이제는 그의 특징보다는 능력에 집중해주는 곳에서 잘 지내기를, 아픈 곳은 없기를, 건강히 지내기를, 그 곳에서 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만의 자리를 갖기를.

모두가 하나씩 갖고 있는 그 자리. 바로 그 자리를 그가 당당하게 떳떳하게 웃는 얼굴로 앉아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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