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최근 ‘제9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진행, 기존 일상부문에 고용부문이 추가됐다.
공모전 결과 이음미 씨의 ‘빙산의 일각’ 일상부문 대상, 박수현 씨의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 고용부문 대상 등 총 30개 입상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2편,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5편을 소개한다. 열네 번째는 고용부문 우수상 수상작인 이은호의 ‘be free of(자유롭다)’이다.
be free of(자유롭다)
이은호
바리스타를 꿈꾸던 저는 몇 차례의 면접 끝에 이름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중견카페 직영점 매니저로 채용이 되었습니다. 첫 근무를 시작한지 며칠 뒤, 평일이 되자 못 보던 직원이 있었습니다. 제가 발령된 카페는 큰 규모의 매장으로 일이 고됐기 때문에, 들어온 지 며칠 안 돼서 그만두는 직원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부점장님께 새로운 직원이 발령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아, 화정 씨? 아니. 장애인인데 평일에만 근무해. 10시부터 4시까지.”
그 말을 들으니 생각이 났습니다. 제가 입사한 이 기업은 장애인 고용률이 높은 우수한 기업이라는 내용을 봤었습니다. 그런 내용만 있고 실상은 제대로 고용이 안 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기에 더 의외였습니다. 아무래도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인 것 같았습니다. 이런 상황을 실제로 보니 ‘정말 좋은 기업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화정 씨는 일을 참 잘했습니다. 다른 직원들은 꼭 한 번씩 지각을 하는데, 화정 씨는 한 번도 지각을 한 적이 없었습니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일은 꼭 했고, 한 번 맡은 일은 끝까지 잘 해냈습니다. 웬만한 직원보다 카운터면 카운터, 음료 제조면 음료 제조, 청소면 청소 못하는 게 없었습니다. 직접적으로 대화를 하기 전까지 장애인인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장애인에 대한 큰 편견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장애인쉼터에 봉사활동을 다녔을 때, 몸이 불편하거나 의사표현을 잘 하지 못하는 장애인들만 봐왔기 때문에 장애인은 전부 혼자서는 외출도 어렵고, 보호자가 항상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정말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화정 씨와 일한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새로운 직원이 오면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미연 씨, 아무리 고객이 컴플레인을 건다고 해도 그렇게 대응하는 건 아니죠.”
스케줄 근무였기에 막 출근을 했는데 새로운 직원이 부점장님한테 혼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심각한 분위기였기에 다른 직원에게 물으니 화정 씨가 카운터에서 음료 주문을 잘못 받았다고 컴플레인이 걸렸는데, 새로운 직원이 대응하는 과정에서 장애인이라서 그렇다며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부점장님이 옆에 있었기에 새로운 직원이 바로 제지되었고, 고객님에게는 죄송하다고 한 뒤 음료를 새로 만들어 드려서 상황이 종결되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저는 마감 조였고, 마감조가 투입되는 시간이 화정 씨가 퇴근하는 시간이라 화정 씨가 컴플레인 상황은 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요?
제가 만약 화정 씨의 입장이었으면 정말 큰 상처가 됐을 것 같습니다. 다른 직원이 하는 건 실수고 장애인 직원이 하는 건 무능일까요? 아닙니다. 사실상 점장급 직원이 되어도 음료 주문받을 때 실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직원들은 다시 한 번 주문한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때문에 실제론 직원의 실수인지, 고객의 실수인지 잘잘못을 가리긴 어렵습니다. 다만 컴플레인이 들어온다면 그에 맞는 매뉴얼이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대응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한동안 매장 분위기는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장애인이라서 그렇다.’라는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제가 실수를 했을 때, ‘일반인이라서 그렇다.’라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장애인이라서 그런 건 없습니다. 그냥 단지 실수였을 뿐입니다. 새로운 직원도 그 사실을 깨달았으면 좋았겠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일을 그만 두었습니다.
화정 씨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평일이면 출근을 했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모두 그 일은 잊은 채 각자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암묵적으로 누구도 그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누군가는 무관심일 수도 있습니다.
화정 씨는 하루 근무시간이 6시간 정도로 근무시간이 짧기 때문에 휴게 시간이 30분 주어졌는데, 그 시간에 식사를 했습니다. 화정 씨는 카페를 좋아했기 때문에 휴게시간에 하루에 한 잔씩 제공되는 음료도 만들어 먹었고, 제공되지 않는 디저트는 매번 사서 먹었습니다.
근무를 하지 않는 날에도 집 주변에 있는 다른 직영 매장에 간다고 했습니다. 어느 날은 화정 씨가 디저트를 사서 계산하는 걸 보았는데, 제 값을 주고 디저트를 사 먹는 것이었습니다. 직영점 매니저들은 전부 사원번호를 입력하면 저렴하게 제품을 구매할 수 있는 복지제도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화정 씨, 왜 할인코드 안 써요?”
“저는 할인코드 없어요.”
저는 다시한번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았습니다. 화정 씨는 한 달 단위로 재계약하는 계약 직 파트타이머였기 때문에 정직원의 복지제도는 지원되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화정 씨에게 제 사원번호를 적어주며, 다른 매장 갔을 때도 이 번호로 할인 받아서 사 먹으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명절 선물이나 인센티브 등 화정 씨에게는 한 번도 지급된 적이 없었습니다. 좋은 취지로 장애인을 고용했지만 정직원은 아니고 계약직으로 언제든 계약 이 종료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성장의 기회가 없다는 것. 저는 화정 씨의 상황에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장애인을 고용함으로써 회사의 이미지는 좋아졌을지 몰라도, 막상 고용의 실태는 이러했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승진을 할 수도 없었고, 자신보다 늦게 입사한 정규 직원들이 어느새 상급자가 되어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저 또한 화정 씨보다 6개월 정도 늦게 입사했지만 그랬습니다.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왔고, 아무도 이 상황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화정 씨와 연계된 고용복지담당자가 가끔씩 방문하는데, 화정 씨가 취업이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 라는 듯 얘기하셨고, 취업을 하지 못한 장애인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전에 장애인과 일을 해 본 경험이 없었고, 화정 씨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카페 말고는 다른 장애인들의 고용 현장은 잘 모르지만, 이건 확실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주 자잘하게, 계속적으로 차별이 있었는데도 그냥 그러려니 하는 상황이 반복 되다보니 장애인 직원은 회사의 복지를 누리지 못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다른 직원들도 알게 모르게 화정 씨는 계속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메신저 프로필 사진을 남자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으로 변경한 화정 씨의 프로필 사진을 보며 서로 낄낄거리는 직원들도 있었고, 화정 씨가 실수한 상황이면 어떠한 피드백도 없이 넘기는 직원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러한 직원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고 화정 씨를 잘 챙겨주는 직원들도 있었지만, 회사라는 작은 사회 안에서조차 화정 씨는 소외당하는 기분을 많이 느꼈으리라 생각됩니다.
잘못된 것을 알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일개 1년도 되지 않은 직원이었으니까요. 단지 할인코드를 알려주거나, 회사에서 지급되는 선물을 나눠주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저는 다른 매장으로 발령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퇴사를 했기에 그 이후엔 화정 씨는 볼 수 없었습니다.
아주 가끔씩, 내가 일했던 카페 앞을 지나가다 보면 화정 씨 생각이 납니다. 서비스업계가 코로나로 직격탄을 맞았기에 화정 씨가 계속 일을 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화정 씨라면 카페가 아니더라도 무슨 일이든 잘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얼마 전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이라는 책을 보았습니다. 책 속에서 다리가 불편한 꿈 제작자가 사람들에게 언제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끼는지를 묻습니다. 그리곤 스스로를 가두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에 집중하지 말고 스스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데 집중하라는 말을 합니다.
책을 보며 화정 씨가 많이 생각났습니다. 화정 씨를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이 신체적 결함일 수도 있고, 주변의 시선, 또는 다른 이유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르게 생각해보면 제 자신도 스스로에게 자유롭지 못하고 불합리에 침묵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저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 것은 직장 내에서 큰 분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아했던 제 자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기들이 처음 걷기 위해서는, 수도 없이 넘어지면서도 다시 일어서야 걸음마를 뗄 수 있습니다. 아기들도 넘어질 것을 알면서도 딛고 일어서려는 용기를 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 제가 글을 쓴 이유입니다. 저는 지금 용기를 내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억압하는 것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려는 용기, 차별과 불합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용기, 실패하는 것이 두렵고 무섭지만 다시 일어서려는,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가 저희 모두에게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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