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최근 ‘제9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진행, 기존 일상부문에 고용부문이 추가됐다.

공모전 결과 이음미 씨의 ‘빙산의 일각’ 일상부문 대상, 박수현 씨의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 고용부문 대상 등 총 30개 입상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2편,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5편을 소개한다. 열두 번째는 고용부문 우수상 수상작인 김영하의 ‘18년차 휠체어장애인 국세공무원 이야기’이다.

18년차 휠체어장애인 국세공무원 이야기

김영하

저는 휠체어 운전경력 25년차이자, 국세경력 18년차인 휠체어장애 세무공무원 김영하입니다. 시간은 정말 상대적인 것 같아요. 서울에서의 자유로웠던 1년 6개월 동안의 대학생활이 휠체어를 탄 25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또한, 휠체어를 탄 1년 6개월 동안의 수험생활 기간이 국세공무원으로 근무하는 18년보다 더 길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말이죠.

제 자신을 보면서 늘 항상 느끼는 점이 정말 인생은 계획대로 안 된다는 거예요. 제가 그 사실을 제대로 실감한 게 대학교 2학년이었던 1997년이었습니다. 그전까지만 해도 세운 계획에서 크게 벗어나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부모님은 막내였던 저를 못 믿었던지 집에서 대학을 다니는 게 어떻겠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서울로 대학을 갈 것이라며 고집했고, 처음으로 집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했습니다. 지금도 가장 좋은 시간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하지 않고 대학생활 때였다고 말할 정도로 바쁘고 즐겁게 보냈습니다. 학과생활, 동아리 활동에 과외도 하고, 여름에는 수련회와 농촌봉사 활동까지 했습니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학교에 가려고 눈을 떴는데, 몸이 전혀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말을 하려고 해도 목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어! 내가 왜 이러지! 꿈인가!”

그런데 시간이 꽤 오래 지난 것 같은데도, 그 꿈에서 계속 깨어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어쩌면 이게 꿈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서서히 기억이 돌아오더군요. 지금 제가 있는 곳은 학교 앞 하숙방이 아니라 서울대학교병원이었습니다. 드라마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이 저에게 일어난 거예요.

처음에는 눈에 초점이 맞지 않아서 사물이 전부 둘로 보였는데 서서히 사물이 하나로 보이고, 글을 읽을 정도로 시력이 회복되었을 때 언니가 쓴 병상일기를 봤어요. 제가 숙명여대 2학년이었던 97년, 2학기 중간고사 기간에 갑자기 많이 아팠대요.

제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한 부모님은 급하게 서울로 오셔서 저를 서울대학교병원에 입원시켰답니다. 여러 검사를 받았는데, 정확한 병명은 나오지 않았고, 그러니 약도 쓸 수 없었다고 해요. 상태는 점점 더 안 좋아지고, 그렇게 계속 검사를 받던 중에 호흡이 끊어졌고, 급하게 중환자실로 옮겨졌습니다. 검사결과 간뇌가 죽은 상태로 나왔고, 한번 죽은 뇌는 재생이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뇌사판정이 내려졌습니다.

뇌사판정 후 40일이 지났을 때에 호흡이 저절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의사들도 기적이라고, 지금 상태로 신경이 온다면 다음 학기 때는 복학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쭉쭉 내려오던 신경이 허리쯤에서 멈췄는지 더 이상 진전이 없었고, 병원에서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치료가 없다며 이제 퇴원을 하라더군요. 그렇게 휠체어를 타고 집이 있는 광주로 왔습니다.

저는 대학을 중퇴했다고 해서 낙심하거나 우울해하지 않았어요. 의사들도 내 상태는 모르는 거라고, 어차피 난 곧 나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잠시 지체된 시간은, 앞으로 두 배 더 열심히 보내면 된다고 생각했죠. 만약, 그때 이렇게 오랫동안 휠체어를 탈 것이라는 일을 알았다면 내 성격상 힘들어했을 것입니다.

곧 복학할 거라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휠체어를 타고 있는 지금 이 시간도 소중한 내 시간이니까 그냥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에 장애인복지관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분들이 휠체어장애인에게 운전은 필수라고 운전면허부터 취득하라고 하더군요.

손이 둔해져서 펜을 잡는 것도 힘들었는데, 여전히 책 보는 것을 좋아해서 문제집을 보는 것은 재밌더라고요. 그렇게 한 번에 운전면허시험에 합격하여 주변에서 공무원시험에 도전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군요.

공무원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지만, 저는 다시 연필을 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대학 때 전공이 수학과였으니까 세무직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첫 시험결과는 역시나 불합격이었습니다. 점수를 확인해 보니 네 과목은 합격선을 넘었는데, 처음 접한 한 과목에서 과락으로 떨어졌더군요. 아깝긴 했지만, 다시 한다고 해서 합격할 거란 보장도 없었고, 저 혼자서 하는 수험생활이 아니라 엄마와 언니가 내 발이 돼서 함께 하는 거였기 때문에 미안하기도 해서 그만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는 시험합격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하더군요. 다시 준비했던 1년 동안의 시간이 내 인생에서 제일 힘들었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2002년, 이제 정말 공무원시험은 끝이다! 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히 월드컵응원만 하고 있었을 때 필기합격발표가 났습니다. 면접 때문에 정부 과천청사에 갔을 때 무리가 됐는지 욕창이 재발하여 수술을 했습니다. 수술실에서 입원실로 올라오니 최종합격통지서가 도착해 있었습니다. 이제 내 이름 앞에 휠체어장애인 말고도 국세공무원이라는 수식어가 생겼네요.

2004년 4월 6일 북광주세무서로 첫 출근을 했습니다. 제가 이 일은 정말 하나님의 기막힌 타이밍이라고 고백하는 일이 있는데, 입사하기 바로 전에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장애인화장실이 설치가 되었습니다. 만약, 장애인화장실이 없었다면 내 직장생활이 어땠을까! 아마도 세무서 근무는 불가능하지 않았을까!

공공기관이라면 최소한 장애인화장실 같은 기본적인 장애인의 편의시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광주지역에 있는 세무관서가 오래됐기도 했고, 특히나 세무서에 휠체어장애인 민원인이 거의 오지 않니 그동안은 설치할 필요성을 못 느꼈겠죠. 그런데 제가 입사를 한 거고요.

국가직 공무원은 2년에 한 번씩 광주지방국세청 산하 세무서를 돌며 인사이동을 하게 돼 있답니다. 그런데 장애인공무원은 광주 안에 있는 세무관서에 근무를 할 수 있어요. 사실 제가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게 된 가장 큰 계기가 됐죠. 문제는 제가 근무할 수 있는 환경은 북광주세무서밖에 없었기 때문에 전 이동을 못하고 6년을 북광주세무서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다가 2010년 북광주세무서 서장님으로 부임하신 김주현서장님(지금은 세무사님)께서 광주세무서로 가시면서 저에게 광주세무서에 장애인화장실부터 만들 거니까 다음에 광주세무서로 오라고 하시더군요. 그렇게 해서 북광주세무서 광주세무서로 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프고 나서 전 내 인생에 결혼은 없을 거로 생각했는데, 하나님의 계획은 그게 아니셨나 보더라고요. 장애인선교단체 ‘실로암사람들’에서 근무하시던 목사님과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건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예쁜 딸을 선물로 주셔서 제가 올해 학부모가 됐다는 거예요.

제 임신 소식은 우리 가족뿐 아니라 우리 회사에서도 큰 사건이었답니다. 저희 과장님께서는 “영하 씨에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일이 아니라, 하은이를 지키는 거예요.”라고 하시며 바로 병가처리를 해주셨답니다. 아마 우리 하은이가 10개월을 휠체어에서 저와 함께 있다가 건강하게 태어날 수 있었던 건 우리 국세청 동료들의 이런 배려 덕분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그래서 더욱 국세청에 고마운 마음이 들고요.

출산휴가 후 저는 서광주세무서로 복직을 했어요. 복직하기 전 광주지방국세청에서 혹시 필요한 시설이 있냐고 물으시기에 장애인화장실이라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이제 광주 3개 서에 모두 장애인화장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장애편의시설을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 집단에 장애인이 소속되는 일이구나….’ 였어요. 제가 입사하고 나서 장애편의시설(장애인화장실, 경사로, 엘리베이터)이 만들어졌으니까요.

이제 바라기는 구성원 중에 이용할 사람이 없어도 이런 장애인의 편의시설이 의무적으로 설치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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