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최근 ‘제9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진행, 기존 일상부문에 고용부문이 추가됐다.
공모전 결과 이음미 씨의 ‘빙산의 일각’ 일상부문 대상, 박수현 씨의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 고용부문 대상 등 총 30개 입상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2편,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5편을 소개한다. 열 번째는 일상부문 우수상 수상작인 이지은의 ‘안녕. 그 안녕.’이다.
안녕. 그 안녕.
이지은
손이 부끄러웠다.
이제는 밑동밖에 남지 않은 그의 손이 아니라. 떨리는 그의 두 손에 쥐어져 있던 돈다발을 받는 나의 손이 그랬다.
“드디어 우리집에도 대학생이 생기는 거네. 은행 문 열리면 빨리 등록금 내고 오거라. 그동안 공부하느라 참말로 애썼다. 삼촌은 인자 출근한데이!”
반지하 방을 나서는 삼촌의 모습은 여느 날과 같았다.
집밖으로 나서는 동시에 자취를 감추는 그의 손. 그의 손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과는 관계없이 그의 점퍼 속에서 좀처럼 나올 줄을 몰랐다. 예닐곱 개의 계단을 엉거주춤 오르는 삼촌의 뒷모습에 그날따라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내렸다. 빛바랜 신문지에 둘둘 쌓여 있던 나의 등록금은 삼촌의 피와 땀임을 아니 그보다 더한 고통과 두려움의 대가임을 모를 수가 없어서 자꾸만 눈물이 흘렀다.
도박중독으로 집에 들어오시지 않던 아버지. 그보다 먼저 가출한 엄마.
이미 두 동생과 어머니를 홀로 부양하느라 힘겨웠던 삼촌은 다섯 살배기 조카까지 책임지느라 잘 다니던 회사까지 관두셔야 했다. 오로지 많은 월급을 주는 곳을 찾아 헤매다 삼촌은 결국 밀링업체에 취업하셨다. 육중한 기계들이 쉴 새 없이 작동하고 그 장단에 맞추어야 하는 사람들은 더 쉴틈 없이 움직여야 한다는 곳. 창문하나 없어 숨쉬기조차 버겁던 지하공장에서도 삼촌은 열심히 일하셨다. 그러나 야근이며 특근까지 자처하시며 두둑해진 월급봉투에 희망을 가졌던 것은 잠시였다.
삼촌은 새 직장에서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 두 손가락을 잃어야만 했다. 찰나의 시간에 삼촌의 손가락은 소용돌이처럼 기계 속으로 빠져 들어갔고 아픈 줄도 다친 줄도 모른 채 멍하니 서 계셨다고 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하얀 붕대가 삼촌의 손가락을 대신하고 있었다. 삼촌은 한동안 절망 속에 빠져 살았다. 너무도 달라진 손의 모양새가 괴로웠고 손가락 두 개가 없음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너 무도 많음에 좌절했다고 하셨다. 가난했던 형편 탓에 고등학교 내내 아르바이트를 해 처음으로 중고로 샀던 자신의 유일한 낙이었던 기타를 부수며 남몰래 꺼이꺼이 목 놓아 우신적도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삼촌은 다시 공장으로 향하셨다. 이유는 단 하나. 가족 때문이었다. 오직 가족을 위해 삼촌은 그 위험천만한 일에 또 뛰어 드셨다.
인생을 살며 사고는 한번쯤이어야 하지 않을까?
허나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삼촌은 또 손가락 세 개를 잃으셨다. 이번에는 기계의 오작동 때문이었다. 아무리 버튼을 눌러도 멈추지 않던 기계 속으로 삼촌의 손가락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제 앞에서 새빨간 피를 분수처럼 뿜으며 바스러져 가고 있는 신체의 일부분을 보고 있는 그 심정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고난을 겪고도 삼촌은 상처가 다 아물 기도 전 다시 공장으로 발걸음을 또 옮기셨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직장을 그만 두었을 법한데 삼촌은 그렇지 않으셨다. 성치 못한 손을 가진 몸으로 다른 직장을 구할 수도 없고 구한다 해도 가족을 먹여 살릴 벌이가 되지 않을 거란 연유에서였다. 할머니는 펑펑 우시며 나는 생떼까지 써가며 공장으로 향하는 삼촌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기도 했지만 삼촌은 묵묵히 더 오랜 시간 일하셨다.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나는 남들보다 이르게 알 수 있었다.
등이 굽은 할머니가 나를 업어 길렀고 손가락이 잘린 삼촌이 나를 먹여 키우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도 삼촌처럼 부지런히 공부했다. 성적은 쑥쑥 올랐고 초등학교 고학년 땐 반장도 맡게 되었다. 이상하게 그럴수록 놀림도 따라 붙었다.
“지은이 말야. 엄마 아빠가 없다며?”
“반장네 집 되게 가난하데.”
뭐 그런 것쯤은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같은 동네에 살아 유치원 때부터 잘 알고 지내던 지훈이는 우리 삼촌이 XX이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벙어리장갑밖에 못 끼는 손XX이라는 이야기는 눈덩어리마냥 불어나 어느덧 우리 삼촌은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는 아이들이 다 보는 쉬는 시간에 기다렸다는 듯 녀석을 때렸다. 물론 나도 맞았지만 내가 먼저 시비를 걸었다는 이유로 교무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어야만 했다. 얼마 뒤 삼촌이 학교를 찾아 오셨다. 담임선생님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신 삼촌은 큰 소리를 치며 지훈이에게 사과를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나는 사과 따윈 할 수 없다 버텼다.
“지은아! 네 말대로 손이 불편한 삼촌을 놀린 지훈이도 잘못한 건 맞아. 하지만 어떤 이유라도 친구를 먼저 때린 건 더 큰 잘못이야! 그러니까 지은이가 먼저 사과하는 것이 맞는 거야! 어서 지훈이에게 사과 해.”
내게는 다정하기만 하셨던 삼촌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는 마지 못 해 사과를 했고 선생님은 둘 다 잘못한 것이니 조용히 넘어가자 하셨다.
그날 밤 삼촌은 “우리 지은이! 삼촌이 다음 주 학부모 교실에 선생님으로 나가도 될까? 지은이만 괜찮다면 삼촌이 지은이네 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라고 말씀하셨고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쉬는 날에도 일을 나가시던 삼촌은 그날 처음으로 월차라는 것을 내고 우리 반을 찾아 오셨다. 단 한 벌이었던 감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시고.
“흠흠. 나는 우리 5반 반장 이지은의 삼촌이란다. 삼촌은 오늘 장애와 장애인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한단다.”
어디서 구했는지도 모를 장애인들의 다큐멘터리 비디오가 재생되었고 그 속에는 여러 장애인들의 아프기도 행복하기도 한 삶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평범하면서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흐르던 화면은 얼마 후 멈추었고 삼촌은 말씀을 이어나가셨다.
“우리 반에도 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고 내가 싫어하는 친구도 있을 거야. 하지만 모두가 한반에서 공부하는 것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도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친구인 거란다. 내가 싫어하는 친구에게 억지로 잘 해줄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그 친구를 놀리거나 함부로 대하는 것은 안 되는 거야. 사람은 사람이란 이유로 존중받아야 마땅한 거란다. 존중이란 것은 어렵고 대단한 게 아니야! 그냥 저 사람도 나처럼 소중한 사람이구나 생각하고 행동하면 되는 것이란다.”
삼촌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사람이란 존재는 모두 다 귀하며 존중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란 것만은 명확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바쁜 시간을 내어 장애에 대한 편견을 깨 주신 삼촌에게 박수를 쳐 드리자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아이들은 박수를 쳤다. 어쩌면 어린 조카가 또다시 상처를 받을까봐 커다란 용기를 내 주신 삼촌에게 나도 일어나 뜨거운 박수를 쳤다. 아이들은 삼촌이 시간을 맞춰 배달시킨 햄버거에 더 환호하고 있었지만 삼촌은 흐뭇한 미소를 짓고 계셨다.
삼촌은 그 이후로도 몇 번의 작고 큰 사고를 또 당하셨다.
장애에 경중을 따질 수는 없지만 나는 우리 삼촌이 가장 아프고 시리다. 손가락이 없기에 모든 일에 불편함을 감수해야 했고 수많은 일에 더 많은 수고가 필요했던 삼촌의 지난날이 아니라 슈퍼에 식당에 가서도 꼭 조카에게 계산을 부탁하는 주머니에서 손을 꺼내지 않고 걷느라 자주 다치는 삼촌의 일상이 나는 항상 안타깝다. 하지만 삼촌은 허허 웃으며 말하신다. 당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들이 이 세상엔 많다고.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라고.
나는 그를 통해 장애와 삶을 배웠다. 그리고 존중과 존경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삼촌이 장애를 떠안아 가면서 길러 낸 어린 조카는 어느덧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삼촌은 예순을 넘긴 연세에도 아직도 그 험난한 일을 하고 계신다. 사고가 난 뒤 햇빛 한 번 바람 한 점 쐴 수 없었던 삼촌의 손. 몸의 불편함은 익숙해지기 마련이지만 타인의 시선이 보내오는 따가움은 수그러들지 않는다고 하신다.
장애인에게 양보하라. 장애인을 배려하라. 누구라도 그런 것들을 강요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부디 서로를 존중하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 안녕한 건강한 사회가 오길 고대 할 뿐이다.
그렇다면 내가 작던 그 시절. 저 멀리 내가 보이면 두 손을 번쩍 들어 크게 흔들면 안녕하시던 삼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무치게 그리운 안녕. 그 안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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