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최근 ‘제9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진행, 기존 일상부문에 고용부문이 추가됐다.
공모전 결과 이음미 씨의 ‘빙산의 일각’ 일상부문 대상, 박수현 씨의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 고용부문 대상 등 총 30개 입상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2편,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5편을 소개한다. 여덟 번째는 일상부문 우수상 수상작인 김은아의 ‘아름다운 동행’이다.
아름다운 동행
김은아
‘반갑습니다, 고객님. 고객님의 소중한 상품이 오늘 배송되었습니다.’
물건을 주문한 적도 없는데 고개를 갸우뚱하며 문자를 확인한다. 발신인을 보니 남해 친정아버지이다. 며칠 뒤가 막내 사위의 생일인 것을 기억하고, 남해에서 당일 배송으로 택배를 손수 부치신 것이다. 스티로폼 택배 상자를 뜯으니 남해 냄새 가득 품은 반건조 박대가 몇 마리 누워있고, 생일상에 올리라고 잘 손질된 조기도 보인다.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져 울컥한다.
아버지가 친정엄마처럼 우리를 챙기기 시작한 건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진 1999년 그때부터였다. 당뇨와 스트레스로 엄마는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반신불수가 되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다.
남해에서 엄마는 다섯 아이를 번듯하게 잘 키워 모두 대학 잘 보냈다며 동네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엄마에게 다섯 남매는 당신이 가진 전부였고 오직 자식만을 위해 사는 사람처럼 희생하며 살아오셨다. 그중 장남에 대한 기대와 사랑은 더 특별했다. 1990년대 말 우리 사회에 불어 닥친 IMF의 어려움 속에서 막 사업을 시작했던 큰 오빠에게도 예외 없이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다. 엄마 인생의 가장 큰 버팀목인 장남의 부도는 엄마에게 큰 충격이었다. 그러던 중 넷째인 내가 결혼을 하였다. 아들을 낳았을 때 막내딸 몸조리는 직접 해 주시겠다며 엄마는 고집을 피우셨다. 대전까지 오셔서 며칠 밤을 잠도 못 주무시고 갓난쟁이를 돌봐 주셨다.
며칠 후 쓰러진 엄마를 부산병원에서 만났을 때는 이미 반신불수에 언어장애까지 겹쳐 예전의 씩씩한 엄마가 아니었다. 잔소리가 그렇게 많았던 우리 엄마가 입술 달싹거리는 것도 힘들어하셨다. 이런 일이 왜 하필 엄마한테 일어난 건가 싶어 처음에는 받아들일 수 없어 엄마를 잡고 소리 내어 울었다. 산후조리 후에 쓰러지셔서 내 탓인 것만 같은 죄책감도 컸었다.
몸은 장애가 왔지만, 엄마의 정신은 예전처럼 또렷해서 눈빛은 여전히 무엇인가를 말하고 있었다. 부지런한 분이라 끊임없이 움직이셨는데 머리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아 얼마나 갑갑하였겠는가. 하지만 엄마도 시간이 지나면서 본인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가족인 우리도 예전의 여장부 엄마를 가슴에 묻고 장애 1급의 엄마에게 익숙해져야 했다.
자존심이 강한 분이라 자기 대·소변을 누구에게도 맡기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엄마는 아버지만 찾았다. 무엇보다 힘든 건 엄마의 목욕이었는데 이마저도 아버지만 하라고 해서 24시간 아버지의 밀착 케어가 시작되었다.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어눌한 엄마의 말을 알아듣는 사람도 아버지였다.
“아이고 우리 하여사는 아이들 키울 때는 내는 맨날 뒷전이더마는 요새 와서 인자 철들었는가베, 내만 찾는 거 본께, 허허.”
아버지의 실없는 유머에 엄마의 입술이 어색하게 샐쭉 올라간다. 남들이 보면 지옥 같은 상황일 수도 있는데 매사에 긍정적인 아버지의 대처로 엄마는 웃는 날이 조금씩 더해갔다.
가까이 사는 언니는 낮이고 밤이고 일만 생기면 불려가면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 그렇게 언니는 다섯 형제의 장남이 되어갔다. 우리는 가족회의를 통해 각자의 상황에서 엄마를 위해 해야 할 일들을 나누었다. 많이 돕지 못해 서로 미안해했다. 아버지의 수고를 들어드리고자 일주일마다 순번을 정해 매주 남해집을 방문하기로 했다. 우리가 다섯 형제라 5주 만에 한번 순서가 돌아오니 얼마나 다행인가 하며 엄마가 ‘이런 날을 대비해서 자식을 많이 낳았네’ 라며 가벼운 농담도 건넬 수 있게 되었다.
“이 동네에서 창관네 만큼 자식들이 자주 오는 집도 없을기라, 자식들이 매주 저리 오는 집이 오데 있노.”
동네 어른들은 처음에는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셨지만 이후 예전처럼 음식도 나눠주시고 신경을 써 주시며 사랑으로 함께 하셨다.
엄마가 장애인 판정을 받지 않았으면 몰랐을 텐데 나라에서 장애인 등급판정에 따른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고 도움을 받게 되었다. 개인의 아픔이 국가의 시스템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매일 집으로 오시는 장애인 돌봄 서비스의 도우미 이모님께 진심으로 감사했다.
“객지에서 한 번씩 와보는 저희보다 매일 돌보아주시는 이모님이 자식보다 훨씬 낫네요.”
“아유, 그런 말씀 마세요. 자식들이 열심히 일해서 세금을 내니까 이런 서비스를 받는 거예요.” 하며 위로의 말씀을 건네주셨다.
지난 주말에는 오른팔 오른 다리를 못 쓰시는 엄마를 위해 매주 무료 진료 봉사를 나오시던 보건소 소속 한의사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진료를 하러 가게 되었다며 인사를 오셨다. 남해에 계시는 동안 최선을 다해 주셔서 우리가 감사한데 그동안 정들었다며 일을 마치고 직접 아버지 엄마께 인사를 하러 온 것이었다.
“어머니, 건강하셔야 합니다. 다음에 오시는 한의사 선생님은 더 훌륭하시니 침 잘 맞으시고 꼭 치료 잘 받으셔야 해요.”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엄마는 큰 눈에 눈물이 고이며 진심으로 감사해하며 젊은 한의사 손을 놓지 못하셨다. 우리 가족만 엄마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자기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장애인인 엄마를 돕고 있었다.
엄마의 장애에 모두가 익숙해져 가던 어느 해, 아버지의 건강도 눈에 띄게 약해져 가고 있었다. 몇 년을 휴가 없이 엄마 옆에서 돌보기만 하셨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가족회의 끝에 여름휴가를 반납하고 우리 형제가 일주일을 엄마와 지내고 아버지께 온전한 쉼을 드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아버지는 긴 병간호로 친구들과의 모임도, 사회생활도 점점 단절된 노년 생활을 보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와 결혼 후 바로 군에 입대했었는데, 휴가 이야기가 나오니 그때 군 생활을 보낸 강원도 화천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다. 2박 3일 일정의 특별한 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왠지 우리 오 남매도 같이 기대하며 아버지의 휴가를 준비하였다. 막내 사위가 운전하고 작은아들이 동행한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 청춘의 시절로 돌아갔다 오신 듯 이후 아버지는 다시 활기를 찾았다.
아버지가 엄마와 장애를 함께 한 지 25년째이다. 여전히 새벽부터 변함없는 하루를 엄마와 같이 일어나 시작한다.
“우리 하여사, 세수하고, 자 이제 로션 챱챱 바르고, 아이고 예쁘네.”
엄마 재활운동을 시키느라 아버지는 책도 찾아보시고 평생학습원에서 재활 과정 공부도 수강하셔서 반은 의사가 되었다며 자랑하신다. 다섯 형제들도 이제 오십이 넘어가는데 아직도 자식들의 생일을 챙기신다. 남해 생선만큼 맛있는 게 없다며 손수 택배를 보내고, 겨울이면 김장해서 보내주신다.
“아버지는 우리 가족의 등대 같은 분이세요, 정말 감사해요. 아버지.”
“허허, 내 등대는 너거 엄마다, 장애가 있지만 매일 찬송하고, 성경 읽고 천국이 따로 없다 아이가.”
이전에는 건강함에 대한 감사를 몰랐다. 지금은 엄마의 장애로 모든 것이 감사하다. 한여름에 예고 없이 내리는 소나기는 무더위를 식혀줘서 감사하고, 겨울의 한 줄기 햇살은 추위를 잠시 잊게 해줘 감사하다. 엄마의 장애는 불편하지만 우리 가족이 하나가 되고 서로를 더욱 의지하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다. 두 다리로 잘 걷는다고 다 행복하게 사는 것도 아니듯, 엄마는 휠체어에 앉아 지내지만 기쁨으로 살아가니 이게 천국일 수도 있다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지난 남해군 체육대회에서 아버지와 엄마는 ‘아름다운 동행상’ 이라는 큰 상을 선물 받았다. 그저 할 일을 했는데 이게 상 받을 일이냐며 여든을 훌쩍 넘기신 아버지가 멋쩍게 웃으셨다.
볕 좋은 오후가 되면 휠체어에 모자까지 씌운 엄마를 태우고 아버지는 동네 놀이터 정자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러 간다. 엄마의 휠체어를 밀고 가는 아버지의 구부정한 뒷모습이 듬직하다. 아버지가 걸음을 떼실 때마다 얼핏얼핏 보이는 엄마의 꽃무늬 모자가 예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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