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은 최근 ‘제9회 일상 속의 장애인-스토리텔링 공모전’을 진행했다.

스토리텔링 공모전은 장애인과 관련된 일상 속 이야기들을 통해 장애인식개선을 도모하고자 2015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올해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과 함께 진행, 기존 일상부문에 고용부문이 추가됐다.

공모전 결과 이음미 씨의 ‘빙산의 일각’ 일상부문 대상, 박수현 씨의 ‘우리의 삶이 해석되는 순간’ 고용부문 대상 등 총 30개 입상작을 선정해 시상했다.

입상작 중 대상 2편, 최우수상 4편, 우수상 9편 등 15편을 소개한다. 일곱 번째는 일상부문 우수상 수상작인 김금자의 ‘내 삶의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요’이다.

내 삶의 행복한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요

김금자

엄마는 오늘도 아들 덕분에 예쁜 옷을 입고 세상을 향해 행복하게 나아갑니다.

저는 로봇그림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발달장애를 가진 로봇작가 황성제의 엄마입니다. 몇 년 전 만 해도 꿈도 꾸지 못한 일들이 지금은 현실이 되어 전시회와 초대들로 하루하루 너무 행복하고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설사 이 꿈에서 지금 깨어난다고 해도 행복한 꿈의 여운은 저의 남은 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1999년생인 성제는 돌 무렵 아빠의 직장을 따라 인도네시아로 가족모두 이사를 했습니다. 성제 위로 두 살 터울의 형이 있었고 새로운 나라의 문화에 적응하느라 성제의 발달과정에 제가 소홀했었나? 하는 자책도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서 성제가 백일 무렵 이름을 불러도 잘 돌아보지 않아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본적도 있었지만 청력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고 출국 전 종합건강검진에도 아무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소리에 조금 둔감한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두 돌쯤 되어서도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고, 이유 없이 울음을 터트릴 때가 많았습니다. 사람에게 관심이 없었고 또한 눈 맞춤이 어려웠습니다. 그때서야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남편과 저는 인터넷으로 자폐장애에 관한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설마 아니겠지. 아닐 거야 했지만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부딪치게 되었습니다.

성제는 20개 문항 중 17개 정도 자폐장애에 부합되는 증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직장을 그만둘 수 없었던 상황이여서 저 혼자 성제와 함께 한두 달씩 한국에 휴가를 와서 언어치료수업을 받았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수업자료를 가지고 인도네시아로 돌아가 치료수업을 직접 해보기도 했지만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제가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아빠를 인도네시아에 남기고 일곱 살 성제의 형과 저는 작은 가방에 옷이랑 책만 챙겨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시댁은 너무 먼 시골이었고 친정도 아버님이 병환 중이라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오로지 혼자만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둔 엄마들의 당연한 과정인 언어치료, 감각치료, 음악치료, 운동치료 등등 하루에 몇군데씩 아이의 손을 잡고 다니는 끝 모를 치료수업들이 시작되었습니다. 일반 유치원에서는 모두 입학 거부를 당했고 장애전담 유치원에서는 지체장애친구들 위주로 보육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멀었지만 평판 좋은 종교기관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에 보내기도 했었는데 구석진 곳에서 책만 주면 조용하게 노는 성제는 유치원의 많은 행사에서 배제 되고 있다는 걸 유치원 학예제 때 알게 되었습니다. 다닐 수 있는 유치원을 찾지 못해 애태우던 차에 다행히 집에서 아주 먼 곳이었지만 자폐아동을 한반에 한명만 받아준다는 좋은 유치원을 소개를 받고 또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유난히 울음이 많았던 성제는 초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저를 정말 죽을 만큼 힘들게 했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무사히 초,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성제가 고2가 되던 해 또 한 번의 무서운 회오리가 저희 집에 들이닥쳤습니다. 제가 갑자기 암 진단을 받아 수술을 하게 되었고 든든한 지원군이었던 성제의 형은 입대를 하게 되었습니다. 남편은 그때도 해외 근무 중이어서 집에는 오직 성제와 저, 둘 뿐이었습니다.

하루하루 병마와 싸우며 힘들게 지내는 중이었는데 하루는 성제가 다니는 고등학교에서 급한 전화가 왔습니다. 성제가 청소하는 할머니를 계단에서 밀어서 할머니가 계단에서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할머니가 정신을 잃었고 구급차가 오고 있으니 어머니도 빨리 학교로 오시라고, 저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 했지만 ‘성제가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하는 애는 아닌데, 왜 그랬을까? 아~ 제발 크게 다치지 않으셨기를’ 기도하며 울면서 정신없이 학교로 뛰어갔습니다.

교문을 나오는 구급차를 막아서고 차에 올라타니 전신 부목을 한 할머니가 누워계셨습니다. 다행히 정신을 차리셔서 울고 있는 제게 울지 말라고 달래주셨습니다. 일부러 밀친 게 아니고 친구랑 장난치며 뛰어 내려오다 부딪친 거라고. 천만 다행히도 할머니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옆으로 떨어지셔서 손목 골절과 발목 실금으로 치료를 받으셨습니다.

성제를 놀리고 뛰어갔던 친구는 고2가 되면서 새로 같은 반이 된 친구로 장애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이 성제를 계속 괴롭히던 친구였습니다. 그날도 성제를 놀리고 도망을 갔고 그 뒤를 쫓아가던 덩치 큰 성제가 계단에서 뛰어 내려가다 할머니와 부딪친 거였습니다. 학교폭력으로 교육위원회가 열렸고 두 사람이 다른 반으로 분리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성제가 새로운 반에 적응하는 게 쉽진 않겠지만 가해학생을 위해서 친구들에게 관심이 없는 성제를 그 학생과 분리시켜 다른 반으로 보내 달라고 제가 먼저 학교 측에 부탁드렸고 성제가 반을 옮기며 그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힘든 학교생활을 보내면서도 성제가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장거리 비행기를 탈 일이 많았는데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에게 색연필과 종이를 주면 7~8시간의 비행도 힘들어하지 않고 너무 얌전히 잘 놀았습니다. 그래서 아주 어릴 때부터 어딜 가나 그림 도구들을 들고 다녔습니다.

초등학교를 입학 했을 때도 수업은 못 따라가도 좋으니 자리에 앉아 있기만 바라며 종합장과 색연필을 챙겨주었습니다. 색을 칠하는 것보다 드로잉을 더 좋아하는 걸 알게 된 후로는 매일 저녁 연필을 깎아 열 자루 이상씩 필통에 가득 채워 주었습니다. 교실에 연필 깎기가 있었지만 그림을 너무 많이 그리니 수업시간에 연필을 깎으러 자꾸 일어나서 친구들에게 방해가 될까봐 연필을 항상 필통 가득 채워 줬던 것입니다.

성제는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장애인사생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림 그릴 때 가장 행복해하는 성제를 보며 ‘그림으로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저의 고민도 시작 되었습니다. 캐릭터와 사람을 여러 가지 재밌는 표정으로 빼곡히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게임을 잘하고 컴퓨터와 기계를 잘 다루니 애니메이션 대학을 보내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또 현실의 벽에 부딪쳤습니다. 발달장애인을 받아주겠다는 애니메이션 학원이 없었습니다. 두 군데 학원을 상담했고 한번만이라도 수업을 받게 해달라고, 딱 한번만이라도 괜찮으니 수업을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겠다고 부탁드렸습니다. 하지만 성제 학년에 맞춘 고등 입시 반은 이미 수업과제가 너무 어려워 성제가 따라갈수가 없었고 성제 수준에 맞는 기초반은 초등학생 위주라 덩치 큰 이상한 형이라고 초등학생들이 거부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두 학원에서 거절당하고 다시 고민에 빠졌습니다. ‘성제와 같은 발달장애인은 학령기가 지나면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적성에 관계 없이 보호작업장에서 단순노무만 하면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걸까?’ 성제의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저는 고민이 깊어 갔습니다.

그때 우연히 발달장애 친구들이 부산 영화의 전당에서 그림 전시회를 한다고 성제가 그림을 좋아하는걸 아는 주변 분이 알려주셨습니다. 주최가 기장장애인복지관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기장장애인복지관에 전화 문의를 하고 자료들을 챙겨서 상담을 했습니다.

아산복지재단의 후원으로 3년 동안 발달장애작가 육성프로젝트가 진행중에 있었는데 새로운 친구들을 뽑고 있었습니다. 성제 그림을 알아봐주신 선생님과 함께 성제는 그때부터 전문적인 작가로서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복지관 선생님들도 성제의 거침없는 드로잉에 감탄하며 동영상을 찍기도 하고 많은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2019년 가을 복지관 친구들과 함께 부산시민회관에서 첫 전시회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성제의 그림이 팔리고 신문과 방송에 기사가 나가면서 성제는 좋아하는 그림을 더 신나게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즈음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 정기총회에 참여하면서 예전에 치료수업을 같이 받던 성제 친구의 엄마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다들 자녀들이 그림을 좋아하고 잘 그리지만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들을 어떻게 지원해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부산에는 그림을 그리는 발달장애 작가들도 거의 없었고 단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침 그때 한젬마 선생님이 부산시립미술관에 개인전을 하면서 한국자폐인사랑협회 부산지부에 그림을 잘 그리는 발달장애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하셨습니다. 그렇게 한젬마 선생님과 부산 작가들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한국자폐인사랑협회 회원 엄마 5명과 ‘우리아트’라는 자조모임을 만들어 함께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던 일들을 서로 도와가며 부산문화재단에 작업실도 받았습니다. 우리아트 회원들은 여러 가지 공모도 함께 참여하고 수상하며, 전시초대도 받고 다함께 많은 활동들을 활발하게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성제 작가는 크고 작은 행사에 로봇작가로 전시초대를 받으며 2021~2022년 2년 동안 초대개인전을 6회 열었고 국내외 단체전도 70여회 이상 참여했습니다. 작년에는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그림이 채택되어 소장작으로 보내기도 하고 ‘순간포착 세상의 이런 일이’에 방송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대학을 졸업하고 화승이라는 회사에 장애예술인으로 취업해 어엿한 직장인이 되었습니다. 재택근무라 출근할 필요 없이 집에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하며 낮 시간에는 기장장애인복지관에서 주간활동 서비스를 다니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릴 적 어린 성제 손을 잡고 치료수업을 전전하며 끝이 없을 것 같던 어두운 터널에서 이제는 아들 덕에 전시회 오프닝을 준비하고 평생 입어보지 못했던 예쁜 옷들도 입어 봅니다. 무서워서 시작도 못했던 운전도 아들 그림을 운반하기 위해 하기 시작했고 마이크를 주면 떨려서 말도 잘못하던 제가 우리아트 대표로 가끔 무대에도 서봅니다.

아들은 끊임없이 저를 성장시키며 자신도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힘들다고만 생각했던 아들 덕분에 엄마는 오늘도 행복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습니다. 성제처럼 발달장애를 가진 자녀를 가진 분들에게 성제의 사례가 조금이나마 힘이 되고 희망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 부끄러운 글을 용기 내어 적어봅니다.

지금은 성제가 즐겁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만 저의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가 시행되어 모든 발달장애인들이 부모 사후에도 자신의 자리에서 자기 몫을 다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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