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는 지난 2019년 4월 설립된 국내 최초의 시청각장애인 지원센터다. 당시만 해도 시청각장애인이 어떤 장애인지에 대해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시청각장애인’이라고 하면 대부분 시각장애 혹은 청각장애인, ‘시·청각장애인’이라고 인식했지, 시각과 청각 기능이 동시에 손실된 사람을 떠올리는 이는 거의 없었다. 낮은 인식만큼이나 시청각장애인에 대한 제도나 정책 또한 전무했다.

시청각장애인을 위해 탄생한 헬렌켈러센터는 올해로 5주년을 맞이했다. 그간 시청각장애라는 장애를 알리기 위한 홍보 활동, 인식개선 사업을 비롯해 시청각장애인의 기본권 보장을 위한 정책 제안, 입법 운동 등 여러 사업들을 진행했고 뜻깊은 성과들을 거뒀다.

그중에서도 의미 있는 결실은 시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제도가 일부나마 생길 수 있도록 일조한 것이다. 센터의 활동에 국회의원이나 지자체, 중앙정부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제주부터 경기, 서울까지 시청각장애인 지원을 위한 조례가 제정됐다. 아직 ‘헬렌켈러법(시청각장애인 지원을 위한 특별법)’은 제정에 이르지 못했으나, 각 지자체들이 시청각장애인들의 권리 보장을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청각장애인 당사자 손창환씨와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들이 2019년 9월 국회 정문 앞에서 헬렌켈러법 촉구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시청각장애인 당사자 손창환씨와 밀알복지재단 관계자들이 2019년 9월 국회 정문 앞에서 헬렌켈러법 촉구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시청각장애아동 학습권에 대한 인식이 생긴 것 또한 뜻깊다. 헬렌켈러센터는 2019년 7월 우리나라 최초로 ‘시청각장애아동 촉감 교육’을 시작, 사각지대에 있는 시청각장애아동들을 발굴해 촉감 교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센터의 활동이 알려지면서 학습권에서 소외된 시청각장애아동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고 2022년 10월에는 시청각장애아동도 제도권 안에서 특수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특수교육법 일부가 개정되었다. 헬렌켈러센터가 이러한 변화에 조금이나마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또한 헬렌켈러센터는 당사자의 역량 강화와 자립에 초점을 맞춰 시청각장애인을 동료상담가, 강사 등으로 양성하여 시청각장애인 직업재활의 초석을 만들기도 했다. 처음엔 센터에서 교육을 받던 시청각장애인들이 이제는 직원이 되어 또 다른 시청각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이들은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는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집에만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

헬렌켈러센터는 올해 또 다른 사업을 시작했다. 서울시(복권기금)의 지원을 받아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이하 학습지원센터)를 개소한 것이다. 특수교육실, 프로그램실, 일상생활훈련실, 사무실이 마련됐으며 교육 지원, 권익 옹호, 의사소통 지원, 사회활동 지원, 직업재활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아동부터 성인까지 생애주기별로 개별화된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해 ‘한국형 헬렌켈러’들을 탄생시킬 전망이다.

2023년 7월 26일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개소식 현장에서 관계자, 시청각장애인 당사자, 가족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2023년 7월 26일 헬렌켈러 시청각장애인 학습지원센터 개소식 현장에서 관계자, 시청각장애인 당사자, 가족 등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밀알복지재단

이렇듯 헬렌켈러센터 설립 이후 시청각장애인 복지의 불모지 같았던 우리나라에도 시청각장애인의 재활과 자립의 기반이 하나둘 씩 마련되고 있다. 그러나 시청각장애인의 권익이 비장애인 수준까지 향상되기엔 아직도 남은 과제들이 많다. 이에 헬렌켈러센터는 앞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을 계획하고 있다.

첫 번째는 헬렌켈러센터의 전국화다. 현재 우리나라 시청각장애인 지원기관의 대부분은 서울에 있어 상대적으로 지방에 있는 시청각장애인들은 소외돼 있다. 이에 센터는 지방의 시청각장애인들도 가까운 지역에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체계를 구축하려 한다. 이미 센터는 밀알복지재단 부산지부를 통해 부산지역의 시청각장애인들을 발굴하고 교육을 지원하고 있으며, 자조모임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두 번째는 연구사업의 확대다. 센터는 그간 진행해 온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바탕으로 서비스 전달체계 방안이나 매뉴얼을 마련해 전문성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해외 선진국들의 사례를 벤치마킹하여 국내에서 적용 가능한 프로그램들을 마련할 예정이다.

세 번째는 시청각장애인 관련 법안을 지속적으로 제안·건의하여 입법에 이르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수년째 계류 중인 헬렌켈러법은 물론 ‘시청각장애인 전문활동지원사(SSP·Support Service Provider)’ 양성이 제도화되도록 목소리를 낼 것이다.

현재 많은 시청각장애인들이 활동지원사와의 의사소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활동지원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권과 자율성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이에 헬렌켈러센터는 밀알장애인활동지원센터와 협업해 의사소통 교육을 이수한 전문활동지원사를 양성하고 있으나 민간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이밖에도 헬렌켈러센터는 시청각장애인의 권리 향상을 위한 옹호 활동 등 다양한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전개해 나갈 것이다. 지난 5년은 시청각장애인을 알리고 인식을 개선하는 역할을 해왔다면 앞으로의 5년은 선진국 수준으로 국내 시청각장애인의 복지가 향상될 수 있도록, 우리나라 최초의 시청각장애인 지원기관이라는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 글은 밀알복지재단 헬렌켈러센터 홍유미 센터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