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11월에 연주회를 한다정확하게 연주회라기보다는 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로서 예술창작활동을 하기 위한 준비과정이다시청각장애인으로 악보를 어떻게 보고 레슨을 어떻게 받는지곡을 어떻게 이해하고 연주하는지 등의 과정을 강연 형식으로 풀어가면서 중간중간 첼로 연주도 함께하는 무대를 준비하려고 한다

준비과정이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창작활동을 하기 전이다용어 그대로 준비를 하는 과정이니 처음부터 아주 잘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그래도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을 간절하게 품고 준비하고 있다내가 너무나 좋아하는 첼로 선생님으로부터 레슨받은 결과를 펼쳐보일 수 있는 무대이면서 동시에 오로지 나만을 위한 첫 번째 무대이기 때문이다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의 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 박관찬. ©박관찬'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의 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 박관찬. ©박관찬

그래서 지금까지 배웠던 곡들로 레퍼토리를 구성해도 충분히 괜찮겠지만적어도 내 기준에서 어려운’ 곡에 도전해서 11월 연주회의 타이틀곡으로 연주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그래서 첼로 선생님과 연주회를 앞두고 가졌던 첫 번째 회의에서 연주회 때 연주할만한 곡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그 곡을 지난 레슨에서 처음으로 지도받았다

초심첼로를 처음 배울 때처럼

선생님이 추천해 주신 곡은 클래식인데냉정히 내 실력으로는 정말 어려운 곡이다그런데 역설적이라고 해야 할까어려운데 난 이 곡이 너무너무 재미있다아직 곡의 4분의 1도 제대로 연주하지 못하지만지난 레슨을 준비하는 일주일이 정말 행복했다내가 첼로를 처음 배울 때의 그 행복했던 감정을 정말 오랜만에 느꼈기 때문이다

곡의 멜로디가 너무 좋아서 일주일 내내 흥얼거렸고자기 위해 누웠는데도 계속 그 곡이 생각나고 첼로를 꺼내고 싶은 욕구가 생기곤 했다그동안 첼로를 배우고 연주를 하면서 이런 멜로디이런 테크닉이 한 곡 안에 풍부하게 들어가 있어서 다양하게 연주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내가 갈망하던 그 곡을 첼로 선생님이 딱소개해준 것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받아본 첼로 레슨 중에서 이 곡을 처음 레슨받았던 지난 시간이 단연 최고였다물론 이 곡을 처음 레슨 받는 시간이라 아직 미숙하고또 선생님이 피아노 반주를 해주려고 하면 자꾸 실수해서 민망하기도 했지만정말 즐겁고 무언가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 긍정적인 느낌만큼은 부정할 수 없었다

이 곡은 내가 배워본 곡 중에 가장 어렵고 긴 곡이다그리고 내가 갈망했던 것처럼 곡 안에 다양한 리듬과 멜로디가 등장한다그래서 처음부터 끝까지 박자를 정말 잘 맞춰야 되고 음정도리듬도테크닉도 잘해야 한다정말 쉽지 않지만그래도 정말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하고 첼로 선생님도 그런 곡이니까 추천해 준 거라고 믿고 있다

얄미운 샵과 플랫

그런데 11월까지 앞으로 3개월 동안 진짜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있다이 곡을 구성하고 있는 음정들의 얄미운 조합’ 때문이다이 곡은 사장조라서 음정 에 샵을 붙이면 되는데장조와 별개로 악보에 샵과 플랫이 계속 등장한다심지어 를 제자리 위치에서 연주하도록 하는 곳도 있다

사실 악보에서 어지간한 샵과 플랫 등장은 그냥 외워서 넘어갈 수 있는데이 곡은 진짜 얄미울 정도로 어디에서는 샵을 붙였다가 그 다음 다시 제자리로 하다가어느새 또 샵을 붙인다한 음정만 이렇게 나오면 그나마 괜찮은데한 음정이 아니라 몇 개의 음정이 이런 식으로 등장해서 연주를 할 때 아직까지는 혼란스럽다

11월에 있을 연주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박관찬11월에 있을 연주를 위해 열심히 연습하고 있다. ©박관찬

첼로 선생님이 내 연주에 피아노로 반주를 해주시다가 샵을 짚어야 되는데 제자리를 짚었거나플랫이라서 음을 내려야 되는데 올려서 연주하는 부분이 나오면 반주를 멈추시고 내게 달려오셔서 잘못된 부분을 알려 주신다선생님이 오시는 걸 보면 이미 난 아차!’하면서 또 뭔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한다그렇게 아직은 한번도 틀리지 않고 연주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즐겁다이 곡에 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합니다

11월에 이 곡을 공개하는 그 순간까지 지금의 이 마음을 잘 유지하고 싶다아직 미숙하고 완전하지도 않지만지금의 이 즐거운 마음으로 계속 연습하고 첼로 선생님께 배워간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충분히 연주할 수 있을 것 같다첼로 선생님이 레슨에서 그랬다이 곡을 연주해내는 건 하기 나름이라고

마음 같아서는 무슨 곡을 준비하고 있는지 공개하고 싶지만그냥 비밀로 하고 11월 연주회 때 공개하려고 한다그날 공개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이준비하고 있는 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는 감정을 잘 유지하고 싶다

그래서 청년은 오늘도 첼로를 연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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