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루브르 박물관에는 <불구자들 The Cripples>이란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브뤼헐 더 아우더가 말년(1568년)에 그린 걸작이다.
그림 속 ‘불구자들’의 형색은 모두 거지다. 하지만 머리에 쓴 모자로 볼 때 이 거지들은 각각 왕, 군인, 부르주아, 성직자, 농민을 상징한다. 당시는 네덜란드가 스페인의 지배를 받고 있던 시절이었다. 화가는 그런 상황에서도 네덜란드 사람들이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거지근성’으로 살고 있는 세태를 신랄하게 풍자한 듯하다.
정치색을 지우고, 장애인 역사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이 그림은 흥미롭다. ‘불구자’ 거지들의 몸에 뭔가 붙어 있다. 얼핏 보면 얼룩처럼 보이지만, 찬찬히 보면 거지들이 가슴과 등에 여우 꼬리를 덕지덕지 달고 있다. 여우 꼬리가 스페인 지배에 항거하는 네덜란드 독립운동 조직의 상징이라는 주장도 있고 아니라는 주장도 있지만, 여기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불구자들>은 과거 유럽의 장애인 거지들이 달고 다녔다는 꼬리표를 묘사한 거의 유일한 시각 매체라는 점에서, 장애인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그림이다. 17세기 이후 유럽의 장애인 거지들은 지방 당국이 나눠주는 커다란 꼬리표를 옷에 달고 구걸을 했다. 브뤼헐의 그림에는 여우 꼬리가 등장하지만,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카이로(☧) 같은 표식을 달았다. 그것이 오늘날 소수집단을 분리하고 차별하는데 악용되는 꼬리표의 원형이다.
중세까지만 해도 유럽 사회는 구걸하는 장애인과 빈민을 온정적으로 대했다. 교회를 비롯한 지역사회 자선 조직들이 국가를 대신하여 빈민 구제 사업을 도맡았다. 적선은 하나님의 자비를 실천하는 행위로 선양되었다.
하지만 근대로 넘어오면서 거지에 대한 태도가 크게 바뀌었다. 노동하지 않고 구걸해서 먹고사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용납되지 않는 분위기가 되고, “게으름은 병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노동과 근면을 중시하는 자본주의 경제와 기독교 윤리가 그 시대의 정신이었다. 또 장애인, 정신질환자, 빈민, 고아를 수용하는 시설이 여기저기 설립되면서 길거리를 배회하는 거지에 대한 인식이 더욱 나빠졌다.
영국 등 유럽 각국은 노동을 강제하는 법률을 만들어 게으름을 질병화하는 것을 넘어 범죄화했다. 노동할 수 있는 몸을 가진 자들의 구걸을 법으로 금지하고, 장애인처럼 노동이 불가능한 자들에게만 구걸을 허용했다. 그리고 장애인인 척하며 구걸하는 자들을 가려내기 위해 장애인 거지는 꼬리표를 부착하도록 했다.
19세기 이후 유럽에서 복지가 확대되면서 장애인 꼬리표는 서서히 사라졌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나치 정권이 등장하면서 새로운 꼬리표가 등장했다. 이번에는 “바람직하지 않은” 집단을 사회에서 격리시키기 위한 꼬리표였다.
히틀러 정권은 유대인들에게 노란색 ‘다윗의 별(Magen David)’을 옷에 부착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들을 독일 사회에서 추방하여 집단거주지역 게토로 강제이주시켰다. 나중에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집단수용소로 옮겨 600만 명을 집단학살했다.

또 동성애자로 확인된 남자들에게는 ‘핑크색 역삼각형(pink triangle)’을 옷에 달도록 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동성애 행위가 형법 제175조 위반이었고, 수 만 명의 게이들이 투옥되었다. 이들은 가슴에 핑크색 꼬리표를 달고 거리를 행진하며 모욕을 당했다. 교도소에서는 다른 죄수들의 폭력에 시달리고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처럼 장애인의 구걸을 합법적으로 허용하는 표식이었던 ‘꼬리표’가 20세기 들어 인종적, 성적 소수자를 합법적으로 격리하고 제거하는 상징이 되었다. 지금도 ‘꼬리표’란 단어는 특정한 집단을 주류에서 배제한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장애인’이란 꼬리표, ‘동성애자’란 꼬리표, ‘이방인’이란 꼬리표, ‘빈곤층’이란 꼬리표... 이런 꼬리표가 과거처럼 정치적, 인종적 폭력을 합법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지는 않는다, 다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문화적으로 배척하는 인식과 태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는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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