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오월이 되면 산과 들에는 초록이 더해지는데 그의 가슴에는 핏빛 상처가 되살아나고 있단다. 여기는 빛고을 광주다.

벌써 40여 년이 지났지만, 광주민주화운동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고 한다. 더구나 어린이들이 읽는 동화로 담아내기엔 많은 부분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했다는 것이다.

베를린 장벽에서 김근태 화백. ⓒ김근태 제공베를린 장벽에서 김근태 화백. ⓒ김근태 제공

김근태 화백이 겪은 그날 광주의 이야기를 책고래아이들 서른세 번째 이야기 《들꽃처럼 별들처럼》은 ‘광주민주화운동’과 ‘장애인’이라는 무겁고 큰 주제를 함께 담고 있다.

선안나 동화작가가 글을 쓰고 이상윤 선생이 그림을 그린 동화책 《들꽃처럼 별들처럼》은 김근태 화백의 이야기다.

필자는 김근태 화백의 동화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선안나 작가와 통화를 했다. 선안나 작가는 김근태 화백 관련 여러 가지 기사를 먼저 보았는데 그 가운데는 필자의 기사도 있었다고 했다. 김근태 화백의 일생을 먼저 보고 자기가 필요한 사항을 메모해서 김근태 화백을 만났다고 했다.

선안나 작가는 필자에게도 김근태 화백의 동화책을 한 권 보내 주셨는데, 김근태 화백의 이야기를 동화책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김근태 화백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지만 동화책에는 어린이를 위한 그림이 필요하므로 이상윤 선생이 수고해 주셨다고 했다.

들꽃처럼 별들처럼 표지. ⓒ이복남들꽃처럼 별들처럼 표지. ⓒ이복남

김근태 화백은 지적장애아를 그리는 화가다. 우리나라의 장애인의 날은 4월 20일이다. 세계 장애인의 날은 12월 3일이다. 2015년 12월 3일 세계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아동을 그리는 장애인 화가 김근태 화백이 미국 뉴욕 UN 본부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했다. 유엔 전시를 계기로 베를린 전시회, 파리 전시회를 거쳐 2016년에는 장애인올림픽 즉 패럴림픽 기간에 리우에서 전시회를 했고 그 후 베이징에서도 전시회가 열렸었다.

《들꽃처럼 별들처럼》 동화책은 오월 그날이 오면 해마다 가슴앓이를 하는 김근태의 삶을 담은 창작동화이다. 대학 시절 5.18 광주 시민군으로 참여했던 트라우마를 평생 가슴에 안은 채, 한쪽 눈이 보이지 않고 들을 수도 없지만 지금도 활발히 활동 중인 김근태 화백의 이야기다.

이야기 속 주인공 노마는 네 살 때 교통사고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동네 사람들은 노마를 보면 신기해했다. 그러나 노마는 겉으로만 멀쩡했지, 그때부터 오른쪽 눈이 잘 안 보이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

아내 순이를 만나고. ⓒ이복남아내 순이를 만나고. ⓒ이복남

눈의 초점이 맞지 않으니 툭하면 넘어졌고, 운동 신경이 떨어져서 뛰어놀 수도 없었다. 어린 나이에 장애인이 된 노마에게 불행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사랑하는 누나가 백혈병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마저 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디에도 기댈 데 없던 노마가 유일하게 마음을 쏟는 것은 그림이었다. 마침 노마의 그림을 유심히 보았던 선생님의 권유로 미술대학을 준비하던 중 유일한 친구 옥이가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오랜 방황 끝에 겨우 마음을 잡고 광주에 있는 미술대학에 진학한 노마는 1980년 5월 18일, 계엄군에 맞서 시민군이 되었다. 친구들의 시신이 놓여 있는 도청에 남아 죽음을 각오한 순간, 울면서 찾아온 어머니의 얼굴이 지워지지 않았다.

노마는 차마 ‘제발 죽지 말라’는 어머니의 마지막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도청을 빠져나왔다. 스스로 동료들을 배신한 거로 생각해 평생 죄인으로 살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발버둥 치기도 했다.

100 미터 그림을 그리고. ⓒ이복남100 미터 그림을 그리고. ⓒ이복남

죽음의 고통에서 노마를 살려낸 건 그림과 아내 순이였다. 특히 지적장애인을 그리면서 전혀 다른 삶을 살기 시작했다. 노마의 작품 세계도 그렇지만, 하루하루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났다.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지적장애인을 그리는 노마에게 UN에서 초대장이 날아오고, 수많은 나라에서 전시 요청이 왔다. 평화를 상징하는 베를린 장벽에 노마의 그림이 걸리고, 기네스북에 오를 만한 100미터짜리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간혹 노마의 유명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구도 쉽게 노마처럼 그림을 그릴 수도 살 수도 없었다. 노마는 지금도 몸은 불편하지만 ‘들판에 피어 있는 들꽃처럼, 밤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사람들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지적장애인을 그림으로 그리기에 심혈을 쏟고 있다. 아내 순이의 헌신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지금의 노마는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생존해 있는 실제 인물 이야기를 선안나 작가는 특유의 동화적인 상상과 환상 기법으로 담담히 그려냈다고 한다. 포장하고 둘러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생생하게 표현하며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고 했다. 여기에 이상윤 작가의 그림이 더해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단다.

나비야 같이 가자. ⓒ이복남나비야 같이 가자. ⓒ이복남

“들꽃처럼, 별들처럼”은 김근태 화백의 마음을 담은 작품 전시 제목이다. 이름 없이 피었다 사라지지만 저마다 소중한 들꽃처럼, 희미하지만 저마다의 빛으로 빛나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처럼 지적장애인들 역시 다 소중한 생명이고 귀한 존재이다.

김근태 화백은 가장 약한 이들이 병들고 파괴되어 가는 세상을 구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지적장애인이 살기 좋은 세상이 미래의 대안이자 인류가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에, 신념을 예술로 승화시키고자 온 힘을 다하고 있다.

김근태 화백의 생애에 녹아든 5.18광주민주화운동 역시 아프지만, 생생히 기억해야 할 우리의 역사로 남을 것이다. 선안나 작가의 말처럼 동화가 교육의 도구는 아니지만 분명 어린이의 마음에 신비로운 씨앗을 심어줄 것이다.

제목 : 들꽃처럼 별들처럼

글 : 선안나, 그림 : 이상윤, 펴낸곳 : 책고래, 가 격 : 14,000원, 판형 : 152×225m,

페이지 : 144쪽, 발행일 : 2023년 5월 12일, ISBN : 979-11-6502-139-9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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