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려면 그 일에 대한 직무 수행 능력을 가늠하는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잘 아는 의사와 변호사, 장애인복지에 필수적인 사회복지사나 재활상담사도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때로는 자격증 없이 야매로 변호사나 의사 노릇을 하는 사람이 있기도 한데 발각되면 변호사법 위반이나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받는다. 사회복지사를 위조하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자격증(資格證, Certification)은 인적 자원의 직무 수행 능력이나 숙련도가 어느 정도나 되는지를 일정한 기준과 절차에 따라 평가하여 합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서이다.

우리나라에서 취득할 수 있는 자격증에는 수만 가지가 있다는데 크게 나누면 국가자격증과 민간자격증이 있다. 의사 변호사는 물론이고 사회복지사(1급)나 안마사는 국가자격증이다. 그 밖에 여러 가지 민간자격증도 있다.

부산 남구청 점역교정사 강좌. ⓒ이복남부산 남구청 점역교정사 강좌. ⓒ이복남

민간자격증 중에는 국가가 공인한 국가공인민간자격증이 있다. 우리와 직간접으로 관계되는 보건복지부 소관으로는 4개의 자격증이 있는데 수어통역사 점역교정사 보행지도사 병원행정사가 있다.

수어통역사는 한국농아인협회에서, 점역교정사와 보행지도사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병원행정사는 대한병원행정관리자협회에서 관리한다.

부산 남구청 평생학습관에서 점역교정사 강좌를 한다고 했다. 남구청에서 어떻게 이런 강좌를 개설하게 되었을까. 남구청에서 장애인 평생학습으로 교육한다고 하여 남구청 평생학습 담당자에게 문의했다.

남구청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한 것은 아니고, 교육부 공모사업 중에서 채택한 거라고 했다. 20여개의 사업 중에서 이번에 장애인 도자기공예와 점역교정사 강좌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도자기공예반에는 장애인과 가족들이 참여했지만, 점역교정사 강좌에 장애인은 없지만 장애인 인식개선에는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김진 강사의 점자 명함. ⓒ이복남김진 강사의 점자 명함. ⓒ이복남

강좌는 5월 첫째 주부터 시작했다는데 점역교정사 주간반은 5월 12일에 시작한다고 해서 첫날 수업을 보러 갔다. 강좌는 오전 10시부터 남구보건소 4층 회의실에서 수업한다고 했다.

수강생은 주간반 야간반 각각 10명이라고 했다. 강사는 시각장애인 김진 씨였다. 김진 씨는 인사를 하고 수강생들에게 명함을 돌렸다. 명함은 김진 씨가 소속되어 있는 4가지 명함인데 자기소개이자 첫 수업이라고 했다. 4개의 명함 중에서 가구거리 햇님안마원과 아르테문화복지회 명함은 점자가 진하고 부산시각장애인복지연합회와 대한안마사협회 부산지부 명함은 점자가 약했다.

그 차이가 뭔지 아십니까?

필자도 그 정도 차이는 알고 있었지만, 수강생들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점자가 진한 명함은 회중점관을 사용하여 손으로 직접 찍은 명함이고 점자가 약한 명함은 점자명함각인기로 찍은 명함이다.

회중점관과 점필. ⓒ이복남회중점관과 점필. ⓒ이복남

이번 강좌에 참여한 수강생들은 자원봉사나 장애인복지에 관계가 있거나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앞으로 6개월 동안 손으로 적는 점자와 컴퓨터로 적는 점자 그리고 점자읽기 등 점역교정사 관련 이론과 업무 실무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했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김진 강사는 좀 화가 난다고 했다. 점역교정에 필요한 회중점관과 점필은 주최 측에서 배부한다고 했는데 주최 측의 실수인지 미리 배부가 되지 않았다. 강의가 시작되고 매니저가 가져온 것 같았다.

김진 강사는 오늘은 첫 시간이므로 나중에 쉬는 시간에 나눠 주라고 했는데, 매니저가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는지 강의가 시작되었는데 회중점관과 점필을 나눠 주었다.

시각장애인 앞에서 무엇을 할 때는 무엇을 한다는 것을 사전에 알려 주어야 한다. 회중점관과 점필은 비닐로 싸여 있어서 바스락바스락 비닐 소리가 났다.

칠판 앞에서 점자를 설명하는 김진 강사. ⓒ이복남칠판 앞에서 점자를 설명하는 김진 강사. ⓒ이복남

김진 강사는 회중점관이 없다는 것을 알고 누군가가 가져온 것 같았는데 분명 1교시 끝나고 쉬는 시간에 나눠 주라고 했는데 수업 시간에 나눠주면서 이렇게 소리를 내면 시각장애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뿐만 하니라 강사에 대한 예의도 아니라고 했다.

점역교정사 중에는 비장애인이 많은데 점자도서관, 시각장애인복지관, 맹학교 등에 취업하더라도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김진 강사는 시각장애인이지만 전맹은 아니고 희미하게 윤곽은 볼 수 있는 정도라 잘 보이지 않지만, 점자를 표시하는 6개의 점을 표시하는데 칠판을 이용했다.

점자는 19세기 초 프랑스 육군 포병 장교 니콜라스 바루비에가 야간 작전할 때 암호용으로 처음 개발했다고 한다. 현재 점자는 가로2개, 세로3개, 6개의 점이 2줄로 되어 있다.

이것은 나무점자판이다. ⓒ이복남이것은 나무점자판이다. ⓒ이복남

이 여섯 개의 점자가 영국과 미국,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도 전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1923년 당시 특수교육기관인 제생원 맹아부 교사였던 박두성 선생이 시각장애인들로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여 한글 점자를 연구하여 1926년 11월 4일 ‘훈맹정음’으로 한글 점자를 발표했다. 그래서 해마다 11월 4일을 점자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점역교정사 자격증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했다. 점역교정사는 1·2·3급이 있는데 이번 강좌를 마치면 3급에는 응시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김진 강사는 2급이라고 했다.

점역교정사는 시각장애인이 촉각을 이용하여 도서를 읽을 수 있도록 일반 문자를 점자로 번역하고 교정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점역교정사(點譯校正士)는 점역과 교정의 복합어라고 했다. 점역교정사 시험에 응시하는 사람 중에 시각장애인과 비시각장애인은 채점 방식이 다르다고 했다.

생활속의 점자표시. ⓒ이복남생활속의 점자표시. ⓒ이복남

수어통역사 시험에도 청각장애인과 비청각장애인의 시험이 다르다. 점역교정사 시험을 100점 기준으로 채점한다면 일반 상식이 각각 20점이고 점역은 시각장애인은 20점이고 비시각장애인은 60이다. 교정은 이와 반대로 시각장애인은 60점이고 비시각장애인은 20점이란다.

점역교정사 시험에서 3급은 국어 과목이고 2급은 영어이고 1급은 수과컴(수학 과학 컴퓨터)과 음악 일어 중에서 한 과목에 합격해야 한다고 했다.

수강생들에게 회중점관과 점필 외에 라벨지(점자를 찍을 수 있는 120g 모조지) 타코페이퍼(점자를 붙일 수 있는 테이프 용지) 등을 나눠 주었다. 점자는 쓰기와 읽기가 있는데 쓰기를 먼저 배울 거라고 했다.

첫 수업 시간 이후 과제로 수강생들에게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점자를 하나씩 찾아오라고 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캔 음료수, 엘리베이터, 지하철 방향표시는 제외라고 했다. 그 밖에 점자가 표시된 것에는 뭐가 있을까.

약사법 점자 표시. ⓒ법제처약사법 점자 표시. ⓒ법제처

우리 주변에는 여러 가지 점자가 있다는데 위에서 제외한다는 세가지 외에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약은 내년 7월이 되면 점자 표시가 필수라고 한다.

2021년 7월 20일 「약사법」이 개정되었다. 개정된 「약사법」에서 제59조의2항의 의약품과 제65조의5항의 의약외품은 점자를 표시해야 하는데 이 조항은 2024년 7월 21일부터 시행한다고 한다. 내년 7월이면 점자가 필수가 되는데 아직도 의약품에 점자는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약국에 가서 점자로 표시된 약을 찾아 보았다.

아직 1년의 기간이 남아 있지만, 두세군데 약국에 가 보았으나 점자가 표시된 약은 별로 없었다. 종합 감기약은 뒷면에 기계로 각인된 것이 있었는데 시각장애인이라도 읽기는 어려울 것 같았다. 점자를 잘 읽을 수 있나 없나를 가독성(可讀性)이라고 하는데, 기계로 각인 된 점자는 가독성이 낮은 것 같았다. 또 다른 약국에서 최근에 나왔다는 타이레놀 가루약과 펜잘에는 점자가 표시되어 있었다.

입구 경사로 내려가는 길. ⓒ이복남입구 경사로 내려가는 길. ⓒ이복남

그리고 점자하고는 별 상관이 없지만, 강의실은 남구 보건소 4층 회의실이었는데 4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가서 회의실로 가려면 오른쪽 1~2m를 지나서 다시 왼쪽으로 꺾어서 1~2m를 지나야 회의실이었다. 그런데 회의실로 들어가는 1~2m가 경사로로 되어 있었다.

들어갈 때는 올라가는 길이라서 큰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나올 때면 시각장애인이 아니더라도 무심코 발을 내딛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필자도 나오다가 발을 헛디뎌서 넘어질 뻔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경사로를 설치했을까. 아마도 계단을 1~2개 만들었다가 편의시설 때문에 계단을 없애고 경사로를 만들지는 않았을까? 이런 경사로는 시각장애인이나 어르신들에게도 불편하겠지만,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는 회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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