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첼로를 배우고 연주 활동하면서 버킷리스트가 하나 있었다. 작곡을 전공하고 피아노 반주 20년 경력의 형수님과 함께 무대에 서는 거다. 그래서 연주가 있을 때마다 한 번씩 연락을 드려서 피아노 반주가 가능한지 여쭤보았지만, 매번 시간이 맞지 않아서 무산되곤 했다. 그러다가 드디어 다가오는 토요일에 형수님과 처음으로 함께 무대에 오른다.
4월 15일 토요일 오후 2시,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가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다. 한국저시력인협회와 국회의원 김예지가 주최하는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는 저시력인과 비장애인 전문 음악인들이 한마음으로 하나되는 음악회다. 나도 저시력인이기에 이번 음악회에 초청받았는데, 마침 이날 형수님도 시간이 되신다고 해서 내 첼로 연주에 피아노 반주자로 함께하게 되었다.
연주를 앞두고 레슨을 받는 요즘, 첼로 선생님이 그 어느 때보다 꼼꼼하게 박자와 리듬을 체크해 주고 계신다. 피아노 반주가 함께하니까 내가 악보에 나와 있는 박자와 리듬을 잘 맞추면서 연주해야 하는데, 어느 부분에서는 박자가 빨라지거나 느려지고, 또 어느 부분에서는 리듬이 맞지 않는 문제가 종종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조금이나마 편하게 볼 수 있도록 임의로 만든 ‘나만의’ 악보에는 음표가 없고 계이름 위주로만 나와 있다. 그래서 악보에서의 음표와 각종 기호들이 없으니까 연주하는 곡의 섬세한 박자와 리듬을 파악하면서 연주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음표로 된 악보를 눈으로 보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하나의 곡이 지닌 특성을 명확하게 이해하면서 연주하기란 어렵다.
그래서 형수님과 함께 서는 무대가 걱정되면서도 기대도 많이 된다. (그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되겠지만) 내가 박자나 리듬을 조금 이탈한다고 해도 형수님이 충분히 반주로 커버해주실 거라고 믿고 있다. 내가 걱정하는 건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것과 박자나 리듬을 너무 크게 틀리는 것이다. 그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지금은 공연하는 날까지 열심히 연습하는 방법밖에 없다.
그래도 기자로 일하는 동안 각종 토론회나 행사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국회를 첼로 연주하기 위한 목적으로 방문한다는 것도 남다르고, 드디어 형수님과 함께 무대에 선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어떤 무대가 될지 궁금하기도 하고, 또 내 연주가 자리를 채울 관객들에겐 어떻게 보이고 들릴지도 궁금하다.

무엇보다 이번 연주에 남다른 의미를 두고 싶은 이유가 있다. 그동안 무대에서 첼로 연주를 할 때는 항상 독주였다. 내 이야기와 함께 연주하곤 했는데, 어찌 보면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박자나 리듬이 조금 틀려도 사람들은 충분히 박수를 치고 호응을 했다. 하지만 피아노 반주가 있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같이 맞춰야 하기 때문에 웬만해선 틀리면 안 된다.
그래서 요즘 첼로 선생님의 레슨이 더 꼼꼼하고 깐깐하지만, 난 오히려 이런 선생님이 더 고마웠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이 정도면 틀려도 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연주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 선생님한테서 레슨받으면서 이전보다 연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정말 더 잘 하고 싶은, 더 멋진 연주를 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생긴다.
시청각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이 정도의 연주를 한다는 게 아니라, 정말 첼로를 사랑하는 연주자로서 연주하는 곡의 박자와 리듬을 온전히 이해하면서 첼로와 하나되는 연주를 하고 싶다. 내가 연주하는 소리도 못 들으니까 물론 쉽지 않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도전해 보고 싶다. 그래야 또 다음에 새로운 목표를 가지고 도전할 수 있을 테니까.
2019년에 활동지원을 했던 사람이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내 첼로 연주를 들으면 신기해한다고. 눈과 귀에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첼로를 연주한다니까 실력 여부를 떠나서 신기하게 느낀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다시 활동지원을 하게 되면서 2019년보다 실력이 늘어나서 그런지 이제 사람들은 신기해하기보다 집중해서 듣고 감동한다고 한다.
정말 솔직하게 고백하면 무대에서 연주할 때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사람들이 얼마나 집중해서 나를 보고 있는지, 내 연주에 박수를 치는지 등을 내가 보고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내가 사랑하는 첼로 연주 자체를 즐겼다. 무대든 어디에서든 첼로를 연주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고 행복했으니까.
하지만 다가오는 연주는 이전보다 잘하고 싶다. 장소가 국회라는 것도, 형수님과 함께 한다는 의미있거니와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하다. 비록 내가 직접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기에 누군가를 통해서 전달받아야만 하겠지만. 그래도 좋은 연주가 될 수 있도록,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연주가 될 수 있도록, ‘마음으로 울리는 하모니’가 될 수 있도록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연습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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