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 달 살기를 하면서 가파도와 마라도를 꼭 가고 싶었다. 여기 저기서 들은 말은 가파도, 마라도에 휠체어를 타고 가기가 힘들다고 했다. 검색해보니 마라도는 선착장에서부터 계단이 많아서 도저히 힘들 것 같았고, 가파도는 그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오전에는 원격 수업을 하는데다, 가려고 마음 먹은 날에 마침 비가 와서 가지 못했다.
토요일 아침에 모처럼 좀 일찍 일어나서 조식도 먹고 약간의 산책도 했는데, 정말 구름 한 점 없이 파란 하늘에 날씨가 너무 좋았다. 화창한 날씨를 느끼고 나니 '아, 오늘은 가파도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혹시나 휠체어가 가기 힘들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여태까지의 내가 그 생각이 든다고 안 갈 사람이 아니다. 도와 달라고 하면 되지, 도와 주겠지 뭐~ 하는 생각으로 얼른 준비하고 서둘러 모슬포 남항(운진항)으로 갔다.

배 시간에 딱 맞게 도착을 해서 거의 바로 승선을 하려는데, '도와 주세요~' 할 것도 없이 유니폼을 단정하게 입은 여객선 직원이 알아서 나를 휠체어 채로 들어서 승선하게 해주었다. 괜한 걱정으로 가고 싶은 곳을 안 갈 이유가 없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가파도에 가길 정말 잘한 것 같다. 아니 안 갔으면 후회할 뻔 했다. 탁 트인 사방으로 마라도까지 보이는 제주의 청정 바다와 맑은 하늘을 보며 나와 아이들은 정말 힐링할 수 있었다. 청보리가 유명한 가파도에 우리가 갔을 때는 이미 수확하는 곳도 꽤 있고 누렇게 익은 보리 밭이었다. 그 밭을 지나 골목길로 들어섰다.

아이들이 배가 고프다고 해서 둘러보니 가파도 주민의 가정집 마당에 테이블 몇 개를 두고 어느 할머니 해녀의 집이 있었다. 그 가게는 이름도 예쁜 ‘새봄이네 집’이었고, 새하얀 벽에 아기자기한 그림 동화 같은 벽화와 메뉴판이 그려져 있었다. 마음이 이끌려서 들어갔고, 소라 한 접시와 해물라면을 주문했다.
주인 할머니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보니 전라도에 있는 손녀가 너무 생각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주문하지도 않은 가시리 볶음과 문어 반 접시를 썰어 주셨다. 또 라면을 끓여 주시며 마침 밥이 없어서 밥을 못 줘서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다 먹어 갈 즈음에는 서귀포 오일장에서 사 왔다며 귀한 참외를 두 개나 깎아주셨다.

아~ 이런 따뜻한 인심에 너무 감사한 건 우리였다. 그런데 갑자기 할머니께서는 아이들이 너무 예쁘다며 대뜸 가파도로 이사를 오라고 하셨다. 순간 나도 이렇게 여유롭고 평화로운 가파도에서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들이 그립고 소중한 할머니의 말씀에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가파도에서 우연히 점심을 먹으러 들어간 해녀 할머니집에서 후하고 따뜻한 인심과 푸근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척수야 사랑해(척사)' 카페에서 파란 제주님이 판매하시는 천혜향을 사먹은 인연으로 무대포로 연락드리고 가게 되었다. 사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흔쾌히 농장에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파란 제주님은 소아마비로 몸이 불편하시지만, 퇴직 후 사모님과 농장을 운영하시며 노지귤, 천혜향, 윈터프린스를 수확하시는 정말 따뜻한 분들이셨다.
처음에는 농장 안에 풀어 놓은 닭들 쌀 모이 주기~ 닭들을 쫓아 다니며 도시 아이들인 우리 딸들은 너무 재밌어 했다. 특히 아이들을 위해 8그루나 귤나무를 심기를 따로 준비해 놓으셔서 정말 감동이었다. 귤나무에 대해, 농사를 짓는 것에 대해 여러 가지 친절한 설명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해주시고, 시골 경험이 전혀 없는 우리 딸들이 정말 값지고 새로운 경험을 했다.

귤나무 심기를 마치고, 잡초들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시며 뽑아야 한다고 말을 하셨는데, 아이들은 신나서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너무 재밌다고 한 무더기를 뽑았는데, 파란 제주님은 알바비라고 용돈도 주셨다. 너무 감사한 마음에 나도 작은 선물을 드리긴 했지만, 아이들과 나에게 제주에서 이렇게 따뜻하고 행복한 하루를 선사해 주신 파란 제주님께 부족한 감사였다.
우리 딸들이 심은 귤나무에 이름표도 붙여 주셔서 자라는 걸 봐야 하고, 친정 오빠가 생긴 느낌까지 들어서 앞으로 제주에 꼭 다시 올 이유가 생겼다. 제주 토박이라 제주를 별로 떠나본 적이 없으신 파란 제주님과 사모님도 부산에 오시면 내가 극진히 모시기로 약속을 했다. 부산에 놀러 오시면 제주에서 현혜와 내가 받은 감사를 꼭 갚고 싶다.
뿐만 아니다. 그 비싼 아쿠아플래넷 입장권을 직원가로 무려 50% 할인을 받게 해주신 척사 카페의 혁이맘님도 있었다. 그 외에도 제주에서 한 달을 지내며, 관광지나 음식점에 가면 많은 분이 할인을 더 해주시거나 서비스를 더 주시는 등 정말 과분한 친절과 배려를 받았다. 이렇게 받은 사랑을 나도 누군가에게 베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원격수업이 오전에 대부분 끝나면, 리조트에서 점심을 챙겨 먹고 우리가 가고 싶은 곳으로 제주 안에서 여행을 매일 떠났다. 매일 여행하며 여유로움과 자유를 느낄 수 있었다. 휠체어 엄마인 나와 딸들 현혜는 제대로 힐링하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내가 온전히 아이들과 함께 하는 여행은 평소 일상생활에서는 쉽게 가질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커서도 엄마와 함께한 제주에서의 한 달을 행복한 추억으로 간직하길 바랄 뿐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휠체어 엄마의 행복한 제주 한 달 살기는 결국 끝이 났다. 행복한 여행은 한 달도 너무 짧게 느껴지고 아쉽고 또 아쉬웠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나는 일하고, 아이들은 등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제주에서 받은 친절, 배려, 기쁨, 사랑과 감사의 마음은 정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힘들었던 일들도 있었지만 정말 행복한 추억이 가득했던 한 달 살기였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따뜻한 제주 분들의 사랑과 감사는 가슴 속에 깊이 오래 남아 있으면 좋겠다.
다음 칼럼은 숙소, 렌터카, 초등학교 아이들의 학교 문제 등'제주 한 달 살기의 준비 과정과 제주 한 달 살기를 통해 깨닫고 얻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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