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애 첫 연주회가 열리는 11월 24일이 조금씩 다가오고 있다. 연주회에서 무슨 곡을 연주하게 될지 첼로 선생님, 피아노 반주자, 리플렛을 제작한 사람 외엔 아직 아무도 모른다. 특히 연주회에서 마지막으로 연주할 곡은 철통같이 비밀로 한 채 연습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글에서 연주회 때 연주할 곡 중 한 곡을 살짝 공개한다.
2부로 구성된 연주회에서 1부 마지막 순서로 연주할 곡이 ‘You Raise Me Up'이다. 이 곡은 작년에 첼로 선생님으로부터 레슨받은 곡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면서 동시에 상징성도 있는 곡이다. 이 곡은 1절이 끝나면 조가 바뀌는데, 2절에서 바뀐 조에 따라 연주하다 보면 첼로의 2포지션, 3포지션, 4포지션을 사용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처음 이 곡을 레슨받을 때는 굉장히 어려웠는데, 이 곡을 레슨받은 덕분에 그 뒤로 다른 곡을 연주하면서 다른 표지션도 많이 사용하게 된 것이다. 왼손이 늘 1포지션에서만 움직이니까 뭔가 심심(?)한 느낌이 없지 않았는데, 이 곡을 계기로 왼손을 다양하게 움직이며 많은 포지션을 사용하며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기서 이 곡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 곡을 연주할 때마다 선생님이 강조하는 단어 ’은은하게‘에 대한 나름의 해석 때문이다. 이 곡의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끝나는 부분까지는 ’은은하게‘ 연주하면서 끝내면 좋겠다고 선생님은 자주 말씀하신다. 그럴 때마다 난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마음속의 고개는 갸우뚱할 수밖에 없었다. ’은은하게‘ 연주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은은하게 연주하기
’은은하다‘의 사전적 정의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겉으로 뚜렷하게 드러나지 아니하고 어슴푸레하며 흐릿하다‘이다. 두 번째 뜻은 ’소리가 아득하여 들릴 듯 말 듯 하다‘이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냄새가 진하지 않고 그윽하다‘이다. 첼로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은은하게‘는 연주에 사용되는 용어니까 두 번째에 해당한다.
소리가 들릴 듯 말 듯하게 연주를 한다는 건 과연 어떤 걸까? 분명하게 들리긴 하는데, 또 한편으로는 들리지 않는 것처럼 연주할려면 활이 첼로의 줄에서 내는 진동을 그냥 약하게 해서 연주하면 되는 걸까? 그런데 난 첼로의 활을 줄에 붙인 채로 풍성한 진동이 나게 하면서 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첼로의 줄을 제대로 못 그은 것 같아서,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은은한 종소리‘라는 비유처럼 어떻게 하면 들리는 듯하면서도 들리지 않는 듯한 그런 진동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고민이다. 물론 내가 하던 방식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활의 힘을 유지하면서 풍성한 진동을 살려 연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연주하면 뭔가 아쉬울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방식대로 연주하면 스스로는 진동을 제대로 느끼면서 연주할 수 있지만, 듣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모른다. 곡마다 담긴 ’스토리‘가 실종되기 때문이다.
이 곡이 2절 중반부터 계속 높은 포지션을 사용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고음이 등장한다. 그렇게 계속 높은 음에서 연주하다가 어느 순간 최대치에서 고음이 절정에 다다르고, 거기서 천천히 내려온다. 고음에서 아래로 내려오면서 천천히 연주하면서 마무리되는데, 바로 그 과정을 은은하게 연주해야 한다. 그래야 이 곡이 가진 특성을 살리면서 ‘은은하게’ 마무리할 수 있으니까.
관객들이 은은하게 들리게 하려고 일부러 활을 잡은 손에 힘을 빼서 진동이 아예 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동이 작아지더라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활로 첼로의 줄을 그을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진동이 작아지면 관객들이 제대로 못 듣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늘 어깨와 팔,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연주했던 것 같다.
연주회는 내 연주회를 보기 위해, 듣기 위해 사람들이 온다. 그렇기에 관객들이 내가 연주하는 소리를 충분히 듣고, 연주할 때의 내 표정을 보면서 내가 어떻게 곡을 해석하고 연주하는지 보여줘야 한다. 그래서인지 지난 레슨에서도 선생님은 ‘You Raise Me Up’을 연주할 때 그냥 연주하기보다는 감정을 잘 실어서 연주하라고 하셨다. 그래야 관객들도 내 연주에 공감하고 곡에 담긴 스토리를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은은하게’가 어떤 느낌인지 아직 확실하게 감은 오지 않는다. 시각적인 표현대로라면 안개 속에서 보이는 듯하면서도 보이지 않는 듯하기도 한 무언가를 의미한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소리는 어떤 소리가 은은한 소리이며, 또 그 소리를 어떻게 연주에서 표현해야 할지는 여전히 고민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렇게 결론내렸다. 억지로 ‘은은하게’의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않고, 연주회 날까지 계속 연습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깨닫게 될 거라고. 충분히 감정을 실어서 연주하면 그만큼 자연스럽게 어느 부분이 절정이고 어느 부분이 끝나가는 부분인지 알게 될 거라고. 그럼 끝나는 부분에서 그 끝나는 느낌을 살려주기 위해 천천히든 느린 템포로든 연주하면 그게 어느 순간 ‘은은하게’ 마무리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의미있는 연주를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한 곡 한 곡마다 선생님이 레슨해주시면서 던져 주시는 단어 하나하나에도 집중하고 있다. 이렇게 레슨과 연습을 통해 만들어지고 완성된 곡들이 연주회에서 어떤 모습으로 관객들에게 보여지고 들려지게 될지 참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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