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귀에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첼로를 배우고 연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물론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다당연히 지금도 악보를 보는 게 쉽지 않고 내가 연주하는 첼로의 소리도 듣지 못한다하지만 내게 하루일과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은 왼손으로 첼로의 음정을 짚고 오른손으로 활을 잡고 첼로의 줄을 그을 때다.

첼로를 배우며 새로운 곡을 알게 되고 그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하게 되었을 때의 성취감은 정말 크다악보에 나와 있는 음표들과 각종 기호들만으로는 곡에 담긴 스토리를 파악할 수는 없기 때문에 하나의 곡을 이해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나만의 방법으로 곡을 이해하고 첼로로 연주해내기까지의 과정을 스스로가 잘 알기에 그만큼 성취감이 큰 것이다그래서 첼로를 연주한다는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했다

하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시간이 흐르면서 욕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내게 첼로라는 악기를 알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첼로를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만들어준 영화 <굿바이>의 남자 주인공 다이고가 첼로 연주를 하는 모습을 볼 때그리고 유튜브에서 다양한 첼리스트들이 첼로 연주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도 저렇게 연주하고 싶다라는 욕심을 가지게 된 것이다.

새로운 포지션

첼로를 전공했거나 어느 정도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의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연주할 때 음정을 짚는 왼손이 한 자리에 머물러 있지 않고 첼로 지판의 아래쪽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움직인다정해진 자리에서만 음정을 짚을 때 그곳을 ‘1포지션이라고 하고왼손을 첼로의 지판 아래로 이동하여 음정을 짚는 것을 ‘2포지션’, ‘3포지션’, ‘4포지션이라고 한다.

작년까지 첼로 연주를 할 때 내 왼손은 항상 1포지션에만 머물러 있었다간혹 정말 높은 음을 연주해야 할 때만 어쩔 수 없이 ’ 줄에서 한 번씩 2포지션을 사용했을 뿐전반적으로 왼손은 1포지션에만 머물러 있었다청각장애가 있으니 소리를 들으면서’ 왼손으로 정확하게 짚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1포지션에도 음정을 정확하게 짚을 수 있도록 스티커가 붙여져 있다

그동안 왼손은 늘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위치를 찾으며 연주했지만, 이젠 '감'으로 위치를 짚으며 연주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상민 작가.그동안 왼손은 늘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위치를 찾으며 연주했지만, 이젠 '감'으로 위치를 짚으며 연주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 @오상민 작가.

난 그동안 첼로의 지판에 붙여져 있는 스티커의 위치를 손가락으로 만져서 그 위치를 파악하면서 연주를 했다그래서 연주 중간에 왼손을 계속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2~4포지션을 짚기가 쉽지 않다. 2~4포지션그러니까 아랫부분에도 스티커를 붙이더라도연주 중에 왼손을 빠르게 이동하면서 짚어야 하기 때문에 스티커의 위치를 짚어내면서 연주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하지만 드디어 올해부터 그 욕심을 실행으로 옮기고 있다첼로 선생님이 더 멋있게더 깊이 있는 연주를 위해 2~4포지션도 활용하면서 연주해보자고 하신 것이다왼손이 1포지션에만 머무르지 않고 첼로의 지판 아래쪽으로도 이동시키면서 연주를 하니내 첼로 경력에서 처음으로 뭔가 발전을 한 느낌이 와서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욕심이 있다고 해서 그게 바로 실행에 옮겨지는 건 결코 아니다왼손을 아래로 이동시킨다고 해서 지판에 붙여져 있는 스티커가 바로 짚어지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특히 그동안 1포지션에서만 연주를 하면서 연주를 시작할 때 이미 1포지션에서 왼손은 준비되어 있었지만, 2포지션부터는 연주 중간에 왼손을 이동해야 한다그래서 내가 임의로 스터커의 위치를 찾으려고 하다 보면 곡의 중간이니까 박자를 놓치거나 리듬이 망가지게 된다

스티커를 찾으려고 하는 습관을 버리는 노력을 정말 많이 해야 했다레슨에서 선생님과 함께 그 노력을 시도하고혼자 연습할 때도 시도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첼로를 다시 시작하는 것 같다그동안은 스티커를 찾으면서 연주했다면이젠 정말 으로 연주를 해야 하기 때문에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아직 미숙하긴 해도이젠 제법 다른 포지션으로 왼손을 움직이며 연주를 할 수 있게 되었다기존에 1포지션으로만 연주했던 곡에도 다른 포지션을 적용해서 연주하는데정말 뿌듯하다첼로 연주하는 게 더 재미있고 선생님 말씀처럼 더 멋있고 깊이 있게 느껴지기도 해서 좋다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느낌과 자신감을 불어 넣어 주신 선생님께 너무 감사드리고 싶다

또 다른 욕심

첼로의 꽃으로 불리는 건 비브라토다이것도 첼로 연주하는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는데연주 중에 음정을 짚고 있는 왼손가락을 떨면서’ 연주하는 것이다일종의 기술이자 테크닉이라고도 할 수 있는 비브라토는 첼로 선생님 표현으로는 화려한’ 소리가 난다고 한다

사실 나는 소리를 듣지 못하니까 비브라토를 적용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소리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모른다그래서 내가 굳이 비브라토를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도 있다하지만 이젠 나만의 만족을 위해서 첼로를 연주하는 게 아니라내 연주를 듣는 사람들이 있다듣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언제까지나 1포지션에만 머무르고 싶지 않았는데 드디어 다른 포지션을 연주할 수 있게 된 것처럼언제까지나 같은 소리에만 머무를 수는 없지 않을까그렇기에 또 다른 욕심도 가져보고 싶다비브라토도 해보면 할 수 있을 거라고 선생님이 말씀해 주셔서 이번에도 기대하며 열심히 배워보고 싶다

그래서 언젠가 무대 위에서 연주할 때 모든 포지션을 움직이면서 동시에 비브라토로 화려한 소리를 내며 연주하는 더 큰 욕심을 가져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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