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인 관점에서 본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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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30회 작성일 23-03-06 13:19본문
자폐인 관점에서 본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실태조사
’합리적 조정‘ 권리로 미인식, 장애인차별 지속 우려 등 느껴
장애인 삶에 변화 체감 계기 되는 장차법 이행 실태조사이길
- 기자명칼럼니스트 이원무
- 입력 2023.03.03 17:50
- 수정 2023.03.06 10:32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1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장애인차별은 여전하다고 말하는 뉴스 앵커 모습. ⓒKBS News Youtube 동영상 캡처
2주 전, 신경다양성 포럼의 세션 4 ‘신경다양성 수용을 위하여’란 주제에서 ‘자폐수용교육 프로그램 현황 및 과제’란 제목으로 발표한 한 교수의 말 가운데 이런 게 있었다. 인식은 ‘당신은 자폐가 있으나 받아들여준다’는 것이고, 수용은 자폐 특성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수용한다는 것으로 다양성의 장점을 강조한 측면이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까 인식이라는 건 비장애인의 경우 내가 장애를 나름대로 이해하려 하나, 자폐의 부정적인 면으로 묘사되는 돌발행동, 상동행동(없어져야 하는 말들) 같은 경우 사실은 받아들이기 어렵지만, 그래도 받아 들여줄게 하는 뉘앙스라, 자폐인의 다양성 존중보다는 자폐인이 겪는 어려움은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는 등 자폐인을 차별할 여지가 남아 있다.
더군다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어려서부터 만날 기회가 거의 없고, 분리된 우리 사회에선 그럴 여지가 상당히 농후하다. 지금 하는 장애인식개선교육도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는 게 현실인 걸 생각하니, 인식개선이 말이 안 된다는 동료의 말에 대한 퍼즐이 완전 풀린 느낌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보건복지부에서 3년 전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 개정 이후로 장애인차별의 발생영역과 차별의 내용, 정도 등에 대해 보고한 ‘2021년 장차법 이행 실태조사’결과를 공표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필자도 500여 페이지나 되는 보고서를 처음부터 읽어보았다.
국가·지자체·공공기관·사업체 등 2194곳 등을 조사했던데, 이들은 장차법 규정 차별행위를 대개 인지하고 있고, 차별 예방을 위한 개선방안 가운데, 범국민 대상 장애인 인식개선 노력을 가장 많이 꼽았다. 반면 장애인차별 예방교육과 관련, 임직원 대상 교육기관 비율은 85.3%, 교육 빈도는 연평균 1.46회에 기관 15%는 여전히 이 교육을 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나온다.
장애인차별 예방교육 실시 여부(좌측), 장애인차별 예방교육 내용(중복응답, 우측). ⓒ보건복지부
이 결과와 위에서 말한 인식이라는 말의 뉘앙스, 그리고 장애를 개인의 문제로 왜곡하는 장애인식개선교육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아무리 범국민 장애인 인식개선 노력이 중요하다 해도, 교육과 제도의 양뿐만 아니라 질을 바꾸지 않는 이상, 지적장애인,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장애인을 혐오하고 차별하는 행태와 정서는 여전하거나, 오히려 더 심해질 거란 우려가 생긴다.
물론 장애인식개선교육을 안 하는 것보단 낫겠으나, 그렇더라도 장애를 장애가 있는 개인과 비장애 중심의 장애 차별적인 사회와의 상호작용으로 보는 관점으로 보며 장애인권리협약에서 중시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장애인식개선교육으로 내용을 재설계하지 않는 이상, 차별을 당하는 장애인차별은 앞으로 지속될 거란 우려가 든다. 여기에 장애인차별 예방교육이 1.46회란 건, 교육이 훈련 수준이 아니라 단순 교육에 불과함을 암시하고 있다.
부정적인 자폐 인식개선의 경우,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와 함께 개발한 자폐 수용교육 프로그램이 비자폐인이 독자 개발한 프로그램에 비해 효과적이란 내용의 외국 자료(Gillespie-Lynch et al. (2022))도 있는 만큼, 앞으로는 장애인식개선교육보단 장애를 결함이 아닌 다양성 관점으로 바라보는 장애수용 교육이 장기적으로 국가, 지자체 차원에서 주류를 이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 장애수용 교육이 장애인식 개선에 미치는 영향 등에 관한 연구는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장애수용 교육과 관련해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이것이 장기적인 연구로 되어야 한다. 이런 연구가 장기적이려면, 한국교육재단과 교육부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각부터 바꾸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장기적인 연구 속에, 장애인 당사자들을 필두로 전문가, 관련 종사자들의 연구에 대한 정기적이고 체계적인 피드백은 물론 이를 계속 장애수용 교육에 관한 연구에 반영시켜, 결국엔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거의 가까운 장애수용 교육안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온 교육안을 단기간 시범사업을 거친 후, 문제점 등을 보완해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장애수용 교육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의 참여가 활발해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 교육을 단순교육이 아닌 훈련 수준으로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판사, 검사 등의 법조인들과 의료적 헤게모니에 빠진 정신과 의사들의 의사들, 대중들, 학계, 입법부, 행정부 등을 상대로 해야 한다고 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장애수용 관점의 노력들이 계속될 때 장애인차별의 자취는 점점 사라질 것이며, 장애인권리협약 제8조 2항 가호 (1)에 있는 장애인의 권리에 대한 수용성 함양이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니 말이다.
사법/행정절차/참정권 영역에서 장애인 제공 보조기기와 편의 유무(좌측),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 정식 접수 서식/신청서 구비하지 않은 이유(우측). ⓒ보건복지부
또한, 사법/행정절차 및 서비스 참정권 관련 기관 대상으로, 기관을 이용하는 사람의 특성상 장애인에게 제공되는 편의가 있는 경우는 30.1%인 반면, 69.9%는 관련 보조기기/편의를 제공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결과 나왔다. 기관을 이용하는 장애인의 정당한 편의에 관해 정식 접수 가능한 서식, 신청서, 신청 창구 구비되지 않은 경우도 71.1%나 되었단다. 구비하지 않은 이유를 물어봤더니,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 것이 필요성 인식 부족(35.3%)이었다,
고용영역에서도 장애인 근로자가 요구한 정당한 편의 제공 경험이 없는 기관에 편의를 제공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민간의 경우 내부 운영지침/규정 부재(51.2%)에 이어 필요성 인식 부족(48.8%)이 2위를 차지했단다. 이런 것들을 보면 우리 사회에서 아직도 정당한 편의(합리적 조정, Reasonable Accommodation)이 권리로 인식·정착되지 못한 모습이 여전함을 엿볼 수 있다.
이는 작년 장애인권리위원회(이하 위원회)가 협약 5조 ‘평등과 비차별’ 분야에서 모든 생활 영역에서 장애에 기초한 차별의 한 형태로 합리적 조정의 거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고 우려한 부분과 일정 정도 관련 있다. 여기에 대해 위원회는 합리적 조정 거부가 장애에 기반한 차별임을 인식하고, 그런 차별에 대한 보고의 효과적 조사를 보장할 것을 권고했다.
따라서 합리적 조정은 장애인의 권리요, 이를 제공하지 않은 건 차별임을 분명히 인식하도록, 국가, 지자체는 장애인 당사자 참여를 보장하고 이들의 의견을 청취해 이에 대한 구체적 행동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장애인권리협약에서 말하는 합리적 조정은 장차법에서 정의한 것처럼 사전에 준비된 게 아니라, 장애인 개개인의 요구·상황에 따라 장애인에게 제공한다는 개념이므로, 장차법상의 ‘정당한 편의’(합리적 조정)‘은 권리협약에 맞게 개정돼야 함은 물론이다.
한편,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 읽기 쉬운 자료 등 교수적 적합화 관련 보조기기와 정당한 편의 등이 교육영역, 교육기관 등에서나마 제공된다고 실태조사 결과에서 나온 것은 만시지탄이면서도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도 사법/행정절차/참정권 등의 영역에서 장애인 보조기기/편의와 관련해 읽기 쉽거나 맥락에 따른 자료 등의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는 건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장애인 당사자와 관련자들에게 행한 질적 조사에서도, 장애인 방송에서 알기 어려운 방송자막, 키오스크 사용 시 단순하지 못한 구성이나 쉬운 이용 안내자료 미비치, 선거권과 관련해 쉬운 선거공보, 공적 조력인 제도, 그림 투표용지 등의 부재 등을 지적·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이 언급한 내용들이 좀 더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언급이 없어 역시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사실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한 합리적 조정 내용이 장차법에 부재하기에 이를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요구는 필자뿐만이 아니라 장애인계, 시민사회 단체에서 오랫동안 있었다. 이들 관련 합리적 조정을 마련하고, 실제 시행을 위해 예산도 뒷받침되면, 이들도 동등하게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요구를 사실상 흘려듣거나, 거의 생까고 있다. 이런 현실도 이번 장차법 이행 실태조사에서 엿볼 수 있다.
이왕 교육영역에서 교수적 적합화를 조금이나마 제공한다고 하니, 교육영역에 필요한 정당한 편의에 지적·자폐성 장애인과 관련해 읽기 쉬운 자료 등의 교수적 수정을 명시했으면 한다, 이 영역 외에도 고용, 사법 등의 다른 영역에서도 읽기 쉽거나 맥락에 따른 자료, 감각통합조치 등 지적·자폐성 장애인 관련 정당한 편의들이 장차법에 명시되고 관련 제도의 실행이 필요하다.
2020년 6월 당시 정의당 장혜영 국회의원을 비롯한 여러 의원들이 포괄적 차별금지법 발의하는 국회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KBS News Youtube 동영상 캡처
무엇보다도 이번 실태조사에선 이주 장애인, 성 소수자 장애인(예. 트랜스젠더인 장애인) 등 인종, 민족성,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에 따른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차별을 장애인들이 겪는 현실을 알 수 있는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
예를 들면 장애인연금의 경우 이주 장애인은 수급자격이 아니라서 차별을 겪는다. 그래서 이주 장애인이 소득 등의 영역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차별을 겪는지 통계와 질적 조사에서 드러내는 등 인종, 민족성,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에 따른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차별이 드러난 내용이 장차법 이행 실태조사에 나와야 한다. 하지만 그게 없었다.
작년에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선 장차법이 장애인이 겪는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형태의 차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우려를 보내며, 다음과 같은 권고를 냈다.
기존의 차별금지법, 특히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을 재검토하고,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형태의 장애에 기반한 차별 및 연령, 성별, 인종, 민족성, 성정체성, 성적지향 또는 어떠한 다른 지위에 기반한 교차적인 차별을 인식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고,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형태의 차별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략을 수립할 것
따라서 장차법 이행 실태조사엔 인종, 민족성, 성 정체성, 성적 지향 등에 따른 다중적이고 교차적인 차별을 드러내는 내용도 반드시 포함돼야 하고 그렇게 되도록 장차법에 관련 근거가 마련돼야 한다. 이를 통해 장애인이 겪는 다중적·교차적인 형태의 차별 종식 전략을 도출해 국가, 지자체 차원의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 물론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도 필요하지만 말이다.
이외에도 교육기관 중 0.6%가 2021년 장애학생 입학을 거부한 사례가 있고, 그 이유로 ’수업 자료 제공의 어려움‘이 반을 차지했으나, 장애학생에게 물어봤을 때는 장애학생의 0.9%가 입학 거부를 경험했고, 관련 이유로는 ’교육 진행을 위한 보조기기의 부재‘가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기관 응답에서 나오지 않은 거부된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응답한 학생도 10%나 되었다는 등, ’기관의 차별 인식‘과 ’당사자 경험‘간의 괴리가 크다는 장애계 일각의 지적도 국가, 지자체에서 새겨들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모쪼록 필자가 느꼈거나 언급한 아쉬움을 잘 녹여내 다음번 장차법 이행 실태조사에선, 지적·자폐성·정신 장애인의 합리적 조정 관련 내용과 다층적이고 교차적인 형태의 차별이 드러난 내용 등이 더욱 드러나는 등 이번보다는 좀 더 내용이 충실해지고 장애인식 제고 등의 영역에서도 진전된 결과가 나왔으면 한다.
이런 실태조사들이 쌓이고 쌓여 결국엔 실질적으로 장애인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로 체감되는 계기를 만드는 실태조사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되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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