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증장애인에 대한 끊이지 않는 폭력과 방임 사태에 부쳐
지난 1일 춘천의 활동지원사에 의한 뇌병변장애인 성폭행 사건 항소심 결과가 나왔다. 검찰은 1심 징역 10년이 가볍다며 항소심에서 14년을 구형하였으나 재판부는 1심과 마찬가지로 징역 10년에 10년간 신상공개 및 취업제한, 전자발찌 착용 등을 선고했다.
활동지원사 A씨는 뇌병변장애인 이용자 B씨를 7개월간 성폭행을 자행했다. 수차례에 걸친 유사성행위 시도, 강제추행, 폭행 등이 이루어졌다. B씨는 가족들의 충격과 보복의 두려움으로 주저하다가 A씨의 범행이 심해지자 고소를 마음먹었다. B씨는 증거 수집을 위해 어렵게 노트북 카메라로 A씨의 범죄영상을 촬영하였다고 한다.
언론은 이 사건의 징역 10년의 선고 결과를 ‘중형’이라 보도했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워 활동지원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B씨가, 7개월간 무방비로 당했을 수치스러운 폭력과, 그 증거 확보를 위해 혹시나 들통나 보복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 혼자서 카메라의 각도를 맞추고 셋팅하느라 겪었을 어려움과 공포를 생각하면, 징역 10년도 솜방망이 처벌이라 느껴진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건에서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경중에만 관심을 가질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사적인 공간에서 1:1로 이루어지는 대인서비스인 활동지원서비스의 특성 상 양쪽 모두 이러한 범죄에 구조적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활동지원사와 이용장애인의 권력관계의 균형이 깨지면 발생하는 문제다. 비장애인과 장애인의 관계와 서비스 제공 노동자와 이용자의 관계 사이에서 활동지원사와 이용장애인의 갑을관계는 뒤바뀔 수 있다.
비교적 경증장애인이고 거주환경이 나쁘지 않아서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렵지 않아 얼마든지 마음대로 활동지원사를 교체할 수 있는 경우에는 이용장애인이 갑의 위치에 놓이기 쉽다.
이 경우 이용장애인이 활동지원사에게 부당한 요구를 하거나 범죄에 해당하는 폭력을 행사하더라도 생업 유지를 위해 이를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반대로 일이 힘들거나 거주환경이 열악해 기피 대상이 되거나,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마땅한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려운 우리 뇌병변장애인과 같은 중증장애인은 을의 위치에 놓이기 쉽다.
이들은 활동지원사의 부당한 요구나 폭력에도 다른 활동지원사를 구하기 어렵고, 그런 활동지원사의 범죄행위에 대한 대응조차 누군가의 도움이 없으면 쉽지 않아, 드러내지 못하고 참고 살게 되는 경우가 많다.
한편, 지난 18일, 전라남도 담양에서는 80대 노모와 살던 40대 중증중복장애여성 C씨가 자택에서 일어난 화재를 피하지 못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C씨는 어머니가 병원에 입원해있는 사이 홀로 집에서 지내던 중 스스로 연탄불을 갈려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C씨는 지체장애와 발달장애가 있었지만 장애인콜택시나 활동지원서비스 등 지역사회 서비스들을 받지 않고 있었던 것으로 파악되었다.
우리 협회에서 작년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쳐 성명을 냈던 인천 뇌병변장애인 비속 살해 사건에서와 마찬가지로, C씨 또한 지역사회에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들이 있었음에도 장애를 가진 자녀를 드러내기 꺼려한 부모에 의해 서비스에서 방치되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어떠한 경우든 서로에 대한 폭력이나 인권침해는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설령 부모라 하더라도 장애 자녀를 방치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범죄행위라 할 수 있다. (성)폭력이든 방임이든 죄를 지었다면 그에 따른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다만 우리 협회는 중증장애인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누리며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할 정부와 지자체는 과연 어디에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활동지원사와 이용자 사이의 폭력과 범죄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고, 중증장애인에 대한 학대와 방임, 심지어 존비속 살해들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 책임은 장애인당사자와 가족, 그리고 서비스 현장의 실무기관들에게만 전가되고 있다.
서비스 수급 불균형, 활동지원사 및 이용자에 대한 교육의 부재 등으로 인한 폭력을 근절하고, 활동지원서비스, 응급안전서비스, 야간순회 서비스 등 신청주의에 가로막힌 서비스 사각지대에 방치되고 있는 중증장애인의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은 정부와 지자체의 당연한 책임이다.
윤석열 정부와 광역, 기초 지자체들은 탈시설과 운동방식에 대한 찬반을 이용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장애인과 장애인을 갈라치는데 골몰할 시간에, 중증장애인들이 시설이나 주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하거나 폭력이나 사고에 방치되는 일 없이, 지역사회에서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필요한 서비스를 받으며, 동등한 시민으로 안심하고 자립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빈틈없이 살피며 정책과 예산을 확대해야 할 것이다.
- 장애인복지서비스의 신청주의를 타파하고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서비스가 주어질 수 있도록 전달체계를 전면 개편하라!
- 활동지원서비스를 세분화, 전문화하여 1:1 서비스로 인해 발생되는 인권침해 예방 대책을 마련하라!
- 활동지원사 양성 교육 및 보수교육, 이용인 교육 시 형식화되어있는 인권교육 실질화 등 활동지원사와 이용인의 인권감수성 강화 방안 마련하라!
- 전문성 및 고강도 노동을 필요로 하는 서비스에 대한 교육과정 마련 및 이수자에 추가 급여 지급 등 뇌병변 중증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의 안정적 수급 방안 마련하라!
- 장애인에 대한 폭력, 학대 및 방임 등이 발생한 지자체에 교부금 삭감 등의 패널티 부과 등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 부과 방안 마련하라!
2023년 2월 28일
사단법인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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