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첼로는 이제 취미를 넘어 내 인생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첼로를 배우고 싶은 마음에 돈을 모은 뒤 첼로를 가르쳐 달라고 연락했을 때, 네 명의 선생님으로부터 거절당했다. 내가 시청각장애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특히 현악기인 첼로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데 내가 못 들으니까 레슨하기 어렵다고 했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다섯 번째 연락드린 선생님은 첼로를 가르쳐 주셨고,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게 처음으로 첼로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이 언젠가 내게 어떤 공연을 초청해주신 적이 있다. 객석에 앉아도 연주자들의 모습이 잘 안 보이고 연주하는 소리도 잘 듣지 못하기 때문에 공연에 가는 것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 누구도 아닌 첼로 선생님이 초청해 주신 자리라 찾아갔다.
거긴 어느 무용수들의 무용 공연이었다. 첼로 선생님이 마련해 주신 자리는 무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자리였다. 무용수들의 무용을 관람하던 중 나는 깜짝 놀랐다. 무용수들이 무용하는 곳 옆, 그러니까 무대 한켠에 조명을 받으며 사람 한 명이 첼로를 연주하고 있었다. 첼로 선생님이었다.
무용수들이 무용을 하는데, 첼로 선생님의 첼로 연주를 배경으로 무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용수들의 무용도 물론 아름다웠지만, 첼로 선생님의 첼로 연주가 그렇게 멋있어 보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 첼로를 배운지 1년도 채 되지 않았던 내게는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은 정말 꿈도 꿔보지 않았다.
무용과 첼로의 하모니
그날은 정말 오래 전 기억이다. 그렇지만 요즘 첼로 선생님과 무용수들의 하모니 공연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장애무용수와 비장애무용수가 함께 하는 (주)한국파릇하우스를 알게 되면서 언젠가 나도 당시 첼로 선생님이 그랬던 것처럼 무용수들과 함께 무대에 서는 모습을 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처음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는 올해 1월에 찾아왔다. ‘하하놀이 선생님’ 역할로 대학 캠퍼스 부속 유치원을 찾아가서 공연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장애예술가들의 직무를 개발하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이 프로그램에서 난 첼로 연주와 피아노 반주로 함께 했다.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에 동요를 연주했다. 내 첼로 연주에 맞춰 장애무용수와 유치원생들이 율동과 무용하는 것을 보며 말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연주하는 첼로의 소리를 내가 듣지 못하기 때문에 내가 멜로디를 제대로 연주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연주를 하면서 간간히 본 아이들의 율동과 무용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였고, 또 신나 보였다. 적어도 아이들이 알고 있는 멜로디에 가깝게 연주를 했다는 느낌을 받아서 정말 기뻤다.

새로운 도전
그동안 연주를 하게 되면 ‘혼자’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시청각장애인 첼리스트’로서 어떻게 첼로를 배우고 어떻게 연주하는지를 스토리와 함께 연주를 곁들여서 진행했다. 초청연주를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독주로 한다. 그래서 ‘하하놀이 선생님’ 시도가 내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었고, 무언가 연주자로서 발전된 느낌도 받을 수 있었다.
(주)한국파릇하우스와의 성공적이었던 ‘하하놀이 선생님’ 프로그램 덕분에 다가오는 4월에는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었다. ‘장애인의 날’을 기념하여 기획하고 있는 프로그램에도 함께 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오로지 내 첼로 연주만이 아닌 다른 악기와도 함께 한다. 그리고 내게 처음 첼로를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처럼 무대에 올라서 하는 공연이다.
솔직히 기대가 되면서 떨리기도 하고 걱정도 된다. 다른 악기와 함께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박자를 맞추는 게 중요하다. 혹시라도 다른 어떤 악기가 박자를 조금 빗나가면 그걸 들으면서 맞춰가면 되는데, 난 듣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 박자를 잘 맞춰야 되니 그만큼 연습을 많이 해야 되고 나도 준비를 열심히 해야 될 것 같다.
이젠 나도 첼로 선생님을 보면서 꿈도 꾸지 않았던 걸 꿈꾸게 된다. 언젠가 무대 한켠에서 조용히 첼로를 연주하는 내 선율에 맞춰 무용수들이 아름답게 무용하는 꿈을. 언젠가 그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고 믿으며, 그때까지 지금의 시도들이 좋은 경험이 되어 줄 것 같다. 이렇게 소중한 꿈을 꿀 수 있게 함께 해 주는 (주)한국파릇하우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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