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햇살 좋은 어느 가을날 음악을 하는 몇몇 시각장애인이 자리를 함께했다. 서울에는 한빛예술단과 관현맹인전통예술단도 있고 대구에는 사랑의소리예술단, 하트쳄버오케스트라 등도 있지만, 부산에는 지금까지 음악 모임 하나 없으니 우리도 모임 하나 하는 게 어떨까.

그렇게 시작된 아르테문화복지회가 자조모임으로 구성된 것은 2021년 9월이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부산에서도 장애음악인들이 자립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음악을 사랑하는 장애인에게 음악 교육을 통하여 여가선용과 취미 활동 개발 나아가 비장애인과 소통하는 교류 문화를 확산하고자 했다.

그동안 아르테문화복지회라는 이름으로 경남특수교육원 장애 인식 강의와 공연 등을 비롯하여 몇 군데에서 공연했고 특히 박송이 양은 2022년 12월 2일 제10회 대한민국 장애 예술인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공연연습과 무대 양쪽 계단. ⓒ이복남공연연습과 무대 양쪽 계단. ⓒ이복남

이를 계기로 현대도시개발(주) 대표님과 순병원 원장님의 후원으로 2월 21일 공연을 개최하게 되었다. 처음 계획은 아르테문화복지회의 김진 대표의 사회로 박송이 양의 비창 전곡, 고영광 군의 색소폰, 엄세희 양의 피아노 연주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날짜가 임박했는데 엄세희 양이 갑자기 열이 나고 머리가 아파서 출연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아르테문화복지회는 그동안 몇몇 단체에서 공연했으나 이렇게 큰 무대에서 단독 콘서트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그리고 출연하는 연주자가 다 시각장애인이어서 발달장애인 엄세희 양을 지도하시는 하지림 교수(신라대학교 실용음악과)님이 무대 동선 등을 지도해 주시기로 했으나 엄세희 양이 갑자기 출연을 못 하겠다고 했다.

다행히 하지림 교수님이 엄세희 양이 출연하지 않더라도 오시겠다고 했다. 무대 경험이 많은 하지림 교수님이 오셔서 출연자들의 예행연습이랑 마이크 무대 동선 등을 지도해 주셨다.

공연은 저녁 7시 30분부터 장소는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이었다. 필자도 예정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출연자들의 예행연습과 동선을 지켜보았다.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법제처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령. ⓒ법제처

금정문화회관은 도로에 인접해 있었다. 도로에서는 경사로가 있었고 경사로를 통해서 마당을 가로질러 가면 오른쪽에 은빛샘홀이 있었는데 5~6cm 정도의 턱이 있었다. 이게 뭔가 싶었는데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철판으로 설치한 경사로가 하나 있었다.

누가 왜 입구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휠체어를 사용하는 지체장애인 등은 경사로를 찾아서 들어갈 수가 있겠지만, 턱없이 또는 턱을 완만한 경사로로 만들었다면 시각장애인도 쉽게 드나들 수 있을 텐데 시각장애인은 턱 앞에 발을 멈추고 계단이 있다고 누군가 말을 해 주어야지 만약 혼자 오는 시각장애인이 있다면 걸려서 넘어지기에 십상이다.

강당 안으로 들어가 보고는 더 황당했다.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에 의해 모든 공연장 관람장 등은 장애인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관람객은 입구에서 가까운 곳에 휠체어 석이 네 군데 있었다. 그러나 무대까지는 전부 내려가는 계단으로 되어 있었고 무대로 올라가는 곳도 경사로는 없었고 무대 양쪽으로 계단이 있었다.

금정문화회관 직원에게 얘기했더니 자기는 잘 모른다고 다른 직원을 데려왔는데 그 직원 역시 자기는 잘 모른다고 했다. 오늘 공연하는 사람들이 걸을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라 다행이지만, 만약 출연자 중에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라도 있었다면 어쩔 뻔했겠는가?

금정문화회관에는 김진 대표가 가서 계약했는데 김진 대표도 시각장애인이라 공연장에 장애인 편의시설이 이렇게 안되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고 했다. 이왕 벌어진 일이고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고 연습실로 오르락내리락 해야 하는 필자가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오늘은 아르테문화복지회 공연 이야기를 할 참인데 쓰다보니 그야말로 주객이 전도된 것 같다.

박송이 양 피아노 연주. ⓒ이복남박송이 양 피아노 연주. ⓒ이복남

아무튼 시간이 되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김진 대표가 나와서 인사를 하고 첫 곡은 박송이 양의 비창이었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L.v.Beethoven, Piano Sonata No.8 in c minor ‘Pathetique’)이다. 다른 곳에서는 비창을 연주할 때는 비창 일부 악장을 연주했는데 부산 장애 음악인 피아니스트 최초로 이 곡(피아노 소나타) 전 악장을 연주한다고 했다.

금정문화회관 은빛샘홀은 400석인데 관객들은 부산맹학교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장애인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150명 정도 참석한 것 같다. 관객들이 음악에 조예가 있는 사람들인지라 박송이 양이 비창 전악장을 연주하는 20분 동안 바스락 소리하나 없이 아주 조용했다.

박송이 양의 두 번째 곡은 모차르트 론도 (W.A.Mozart Rondo in D major K.485)였다. 김진 대표가 이 곡은 감성과 기교를 잘 표현하는 연주로, 톡톡 튀는 그녀의 목소리와 같은 연주라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송이 양의 연주가 끝나고 관중들은 우레같은 박수로 화답하면서 앙코르를 청했다. 박송이 양의 앙코르곡은 2022년 7월 대한민국 장애 예술인 경연대회 부산본선 클래식 부문에서 1등상을 수상한 슈베르트 즉흥곡 2번이었다.

고영광 군의 색소폰 연주. ⓒ이복남고영광 군의 색소폰 연주. ⓒ이복남

다음은 고영광 군의 색소폰 연주인데 김진 사회자는 흘러간 비화 한 토막을 소개했는데 옛날 SBS <스타킹>에 고영광 군이 이루마와 같이 출연했다고 했다.

고영광 군의 색소폰 연주에는 박송이 양이 피아노 반주했다. 고영광 색소폰 연주 첫 곡은 슈베르트 송어 D.550 (Schubert. Die Forelle (The Trout) D.550.)였다. 이 곡은 피아노 5중주로 연주되는 『송어 4악장』으로 알려진 유명한 곡으로 가곡으로도 많이 불리고 있는 곡이다.

고영광 군 색소폰 연주와 박송이 양 반주. ⓒ이복남고영광 군 색소폰 연주와 박송이 양 반주. ⓒ이복남

슈베르트의 송어 하면 사람들은 간혹 송어와 숭어를 헷갈리기도 했다. 송어와 숭어는 전혀 다른 어종이지만 송어는 강에 사는 민물고기이고 숭어는 바닷고기이다. 두 번째 곡은 슈베르트 세레나데 4번 (Schubert. Serenade D.957, No.4)이었다. 세레나데는 야상곡으로 원래 조용한 곡인데 관객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두 번째 곡의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을 앙코르를 외쳤다

고영광 군이 앙코르곡으로 선택 한 곡은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오즈의 마법사 OST)였다. 이 곡도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곡이라 많은 관객의 호응을 얻었다.

김진 대표와 고영광 군. ⓒ이복남김진 대표와 고영광 군. ⓒ이복남

원래 순서대로라면 다음은 엄세희 양의 피아노 연주인데 부득이 엄세희 양이 출연하지 못했다. 김진 대표는 엄세희 양이 출연하지 못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왠지 목이 메어 한참이나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튼 엄세희 양이 연주하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출연하지 못했으므로 예정된 프로그램에는 김진 대표의 기타 반주와 고영광 군의 색소폰으로 낼라 판타지아를 연주했다.

그리고 고영광 군의 ‘내 진정 사모하는’ 개신교 찬송가 88장이 무반주 독주로 연주되었다. 이어서 김진 대표가 ‘사랑은 언제나’를 기타치고 노래하면서 선창했다.

김진 대표의 노래. ⓒ이복남김진 대표의 노래. ⓒ이복남

김진 대표는 오늘이 있기까지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후원자와 자원봉사자 등을 소개했다. 그리고 박송이 양의 어머니, 고영광 군의 어머니, 오늘은 함께 하지는 못했지만, 테너 정찬우 군의 어머니와 하지림 교수님을 무대 위로 초대했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시각장애인의 오늘이 있기까지 그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이 베어져 있겠는가. 맹모삼천은 이미 구시대의 유물이 된 지 오래지만 그래도 어머니들의 눈물과 노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금과옥조다.

이 자리에는 맹학교 학생들과 어머니들이 참석했는데 그 학생과 어머니들은 박송이 양이나 고영광 군이 얼마나 부러웠겠는가. 우리 아이도 열심히 노력하면 저리될 수 있을까 하는 희망으로.

연주자와 어머니와 하지림 교수. ⓒ이복남연주자와 어머니와 하지림 교수. ⓒ이복남

특히 이번 공연에는 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찬조를 많이 한 모양이다. 기독교를 위한 행사가 아님에도 김진 대표의 재량인지 몰라도 찬송가가 여러 곡 연주되는 바람에 어떤 관객은 앙코르의 기회를 놓쳤다고 했다.

마지막 곡도 찬송가를 불렀는데 거기다 대고 앙코르를 할 수도 없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지막 곡은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을 불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

일장일단은 있겠지만, 찬송가가 많이 나와서 기독교인들은 좋아했을지 모르겠으나 비기독교인들은 글쎄다. 이번 공연이 아르테문화복지회에서는 첫 공연이지만 공연기획을 할 때는 그 점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왼쪽부터 김진 대표, 하지림교수, 박송이양, 고영광군. ⓒ이복남왼쪽부터 김진 대표, 하지림교수, 박송이양, 고영광군. ⓒ이복남

아무튼 공연은 큰 실수 없이 성황리에 마쳤다. 공연은 무료 초대였는데 어디서 광고를 보았는지 관람하러 가도 되느냐고 전화로 문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무료 초대이므로 입구에서 금정문화회관 직원들이 팸플릿을 나눠 주었는데 찬조금 봉투를 내미는 사람들이 있었으나 돈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표를 파는 게 아님에도 안 된다고 했다. 나중에 따로 주거나 계좌이체를 할 테니까 별문제는 없겠지만.

이번 공연을 위해 무대 뒤에서 시각장애인들의 뒷바라지는 물론이고 공연을 도맡아 준 하지림 교수님과 정경애 선생님, 오대석 선생님, 홍일성 장로님, 그 밖에 많은 후원자 여러분과 자원봉사자 여러분 대단히 고맙습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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