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시력과 고도난청의 특성을 지닌 시청각장애인으로서 키오스크 조작이나 직원과의 대화로 주문이 어려운 경우,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는 정말 편한 방법으로 원하는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박관찬저시력과 고도난청의 특성을 지닌 시청각장애인으로서 키오스크 조작이나 직원과의 대화로 주문이 어려운 경우, 스타벅스 사이렌 오더는 정말 편한 방법으로 원하는 음료를 주문할 수 있다. ©박관찬

내 저시력으로는 혼자 키오스크를 조작하기가 어렵다. 또 청각장애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직원과 원활하게 소통하면서 무언가를 주문하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사이렌 오더’를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편하게 주문할 수 있는 스타벅스는 요즘 내가 가장 선호하는 브랜드다.

사이렌 오더는 내가 키오스크의 글자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무슨 글자인지 읽어내느라, 직원과 원활하지 않은 소통을 통해 주문하느라 고민할 필요 없이 휴대폰의 스타벅스 어플만 보며 원하는 메뉴를 골라서 주문할 수 있다. 가끔 픽업대에서 내가 주문한 음료를 찾지 못할 때도 있지만, 그 정도는 직원에게 도움을 청하면 된다.

그래서 새로 이사를 가게 된 집을 정하는 기준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집 주변에 스타벅스’였다. 운이 좋게도 이사를 간 집에서 도보로 1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스타벅스가 있었다. 이전에 살던 집은 스타벅스까지 걸어서 20분은 넘게 걸어가야 했던 것과 비교하면 너무 좋은 조건이었다. 가깝기도 했지만, 스타벅스도 3층까지 있는 구조라서 한 번씩 커피를 마시며 작업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이사를 하고 어느 정도 짐 정리가 된 뒤, 활동지원사를 만났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집에서 스타벅스까지 가는 길을 익혔다. 활동지원사를 따라 집에서 스타벅스까지 한 번 걸어가 봤는데, 체감으로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집이 워낙 골목의 안쪽에 위치하고 있지만, 그렇게 먼 위치도 아니고 스타벅스가 있는 큰 길가로만 잘 빠져나오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본격적으로 이사한 집에서의 자립생활이 시작된 첫 번째 날. 난 식사를 하고 노트북을 챙겨 여유있게 집을 나섰다. 스타벅스로 가서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담긴 머그컵을 노트북 옆에 두고 작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활동지원사와 스타벅스에 처음 갔을 때 건물 2층에 글쓰기 좋은 자리를 봐두었다. 거기에 아무도 앉지 않았길 기대하며 걸음을 내디뎠다.

그런데···.

스타벅스가 나오지를 않는다. 스타벅스는 고사하고 큰길로 나와야 하는데, 내가 가는 길은 계속 골목만 등장했다. 분명히 활동지원사와 같이 걸어갔던 길로만 간 것 같은데, 스타벅스까지 10분도 안 걸리는데 골목을 빠져나오기는커녕 계속 다른 골목으로만 들어가게 되었다.

그렇게 걸어다닌지 어느새 30분이 지났다. 활동지원사와 함께 갔을 때는 10분 거리라서 만보기에 찍힌 걸음은 1,000보도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5,000보를 넘어섰다. 골목의 깊숙한 곳에서 길을 잃은 걸까?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가 큰 길가에 위치하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큰길로만 빠져나가면 될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계속 걸었다.

하지만 아무리 걸어도 큰길로 빠지지 않고 새로운 골목만 나타날 뿐이었다. 누구한테 물어서라도 가려고 했지만, 진짜 가는 날이 장날인지 그날따라 행인도 눈에 띄지를 않는다. 참 조용한 동네인가보다 생각하면서 계속 걸어가고 있는데, 지금 걷고 있는 골목의 앞에 차들이 다니는 게 보이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가 보았다. 차들이 다니는 도로였는데, ‘큰’ 길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차들이 다니고 있는 만큼 이 근처 어딘가 큰길로 빠지게 될 거라는 확신이 왔다. 그런데 여기서 스타벅스가 있는 큰 길이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오른쪽으로 가야 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만약 왼쪽인데 오른쪽으로 간다면 하염없이 걷게 될 수밖에 없게 된다.

선택의 갈림길에서 난 고민을 했다. 여기에서 현명한 결론을 내렸다. 지금 도로상에서 차들이 다니고 있는 방향과 내 기억으로 스타벅스가 위치하고 있는 길의 방향을 가늠했다. 골목들이 즐비한 곳에서 많이 걸었지만, 큰 길가로는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스타벅스가 위치한 곳의 방향성은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서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임에도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50분이나 헤맨 끝에 겨우 발견한 동네 스타벅스.집에서 도보로 10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임에도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는 바람에 50분이나 헤맨 끝에 겨우 발견한 동네 스타벅스. ©박관찬

그렇게 걸어서 총 50분의 시간을 투자하여 겨우겨우 스타벅스에 도착했다. 집에서 10분 거리의 스타벅스를 찾아가는 데에만 무려 50분을 투자한 것이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으니 진이 다 빠진다. 하지만 무사히 스타벅스에 왔다는 안도감보다 새로운 걱정이 추가되었다.

‘여기서 집으로는 어떻게 가지?’

집에서 스타벅스로 오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큰길을 찾아 나오면 되지만, 집으로 가기 위해서는 골목들을 잘 구분해서 가야 한다. 안 그러면 또다시 미로 속에 갇혀 버릴지도 모르니까. 집에 갈 때도 스타벅스에 올 때처럼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되면 안 될 것 같아서 활동지원사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활동지원사는 내 연락을 받고 스타벅스에서 우리 집까지 가는 방법을 상세하게 글과 사진으로 알려주었다. 왼쪽/오른쪽 어느 방향으로 가야 되는지, 무슨 건물이 나올 때까지 걸어야 하는지, 어느 지점에서 골목으로 들어가야 하는지···. 집에 올 때는 그걸 보면서 안전하게, 그것도 10분 만에 무사히 도착했다.

지도 앱을 보면서 혼자 길을 잘 찾아다니고 싶은데, 내 저시력으로는 너무 어렵다. 지도상에 있는 글자가 작으니까 확대해서 보다 보면 지도의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게 되어 정확하게 길을 찾기 어려워진다. 또 지도에 나와 있는 식당이나 카페를 보면서 길을 찾아가면 좋은데, 식당이나 카페의 간판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간판의 글자 크기나 색, 배경, 디자인 등이 천차만별이라서 하나하나 제대로 확인해 가면서 길을 찾다가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릴 게 뻔하다.

지금은 집에서 스타벅스까지 10분도 안 걸리는 시간 만에 편안하게 다니고 있다. 50분이나 걸렸던 그 날의 호된 신고식 덕분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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