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들어 잃어버린 것이 많다. 그중 하나로 안경 케이스를 잃어버린 일이 있다. 안경 케이스만 잃어버렸으면 안경점에서 새로 사고 끝났을 문제였겠지만, 거기에 많은 것을 함께 넣고 다녔던 것이 화근이었다.
할부로 새로 산 안경과 업무용 USB 메모리, 블루투스 기기, 그리고 가장 중요한 단체 뱅킹용 OTP(일회용 비밀번호 생성기)가 거기에 있었다. 발표를 한다고 USB 메모리를 잠깐 사용한다는 것이 그만 분실로 이어진 것 같다.
여기저기 전화를 하고 경찰청 유실물센터 홈페이지를 찾았지만 단서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찾는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안경은 3년 동안 쓰던 것을 다시 쓰고, 블루투스 기기는 새로 사고, OTP 역시 은행에 직접 가서 재발급받았다. OTP 재발급 과정에서 수수료 납부용으로 통장을 제출한 것을 돌려받기를 깜빡한 것은 덤이다. 그나마 USB 메모리는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분실을 피할 수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그 다음에 잃어버린 것은 블루투스 이어폰이었다. 에어팟 프로를 할부로 사서 2년 동안 통화용으로, 음악 감상용으로 잘 쓰고 다녔고, 보증 연장권을 사서 2년 후에 교환받아서 몇 년은 더 쓰겠거니 했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은 갑자기 찾아왔다. 분명 가방 속에서 꺼낸 기억이 없는데 외출을 위해 소지품을 확인하던 중 분실된 것을 알게 되었다.
잘 쓰던 물건을 잃어버리고 나니 허전했다. 당장 통화를 하는 것이 불편했다. 전에 쓰던 것은 이어폰을 꺼내서 귀에 꽂기만 하면 인식이 되었는데, 다른 제품은 다소 불편했다. 통화음량도 충분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가장 놀랍고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 비영리단체는 매년 2월 10일까지 매입처별 세금계산서 합계표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제를 받을 수 없고 가산세가 부과될 수 있다고 한다.
문득 2월이 됐음을 깨닫고 제출하려고 했을 때는 마감일에서 하루가 지난 상태였다. 나는 자괴감에 빠져들었다. 나 때문에 단체에 가산세가 부과되면 어떻게 하나 생각했다. 최근 들어 잃어버리거나 잊어버린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칼럼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신경다양인은 소지품을 잃어버리거나 과업을 잊어버리는 일이 잦다. 자폐와 함께 신경다양성의 쌍두마차를 이루는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의 특성 중에는 물건을 잃어버리고 할 일을 잊어버리는 것이 있다. 이는 주의력이 다른 사람들보다 낮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2021년 ADHD 당사자 수는 9만 9488명이라고 한다. 같은 해 등록 자폐성 장애인의 수가 3.2만 명을 기록(2021년 발달장애인 실태조사)한 것에 비하면 정말로 상당한 수의 사람들이 이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특성은 ‘덜렁거린다’라거나 ‘부주의하다’, ‘칠칠맞다’라는 식으로 매도되고는 한다. 당사자가 겪는 고충을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이다. 신경다양인이 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것이 당사자의 성격이나 잘못이 아니라 신경 발달 특성으로 인해 발생함에도 말이다.
이러한 비난을 들은 당사자는 자신이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할 일을 하지 못한 것을 두고 자신이 잘못했다고 자책하거나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자기부정에 빠지게 될 수 있다. 그러면 특성이 개선되지 않거나 더욱 심해질 수 있고 당사자는 더 큰 부정에 빠지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당사자가 소지품을 잘 간수하고 할 일을 제때 할 수 있으려면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다. 무조건적인 비난보다는 당사자의 주의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함께하도록 하면 도움이 된다. 체크리스트 메모지나 분실 방지 장치를 선물하는 것도 당사자에게 힘이 된다. 심리적으로도 든든한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다. 이들에게는 비난보다 관심이 필요하다.
학교와 직장, 사회에서도 ADHD 특성과 신경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필요하다. 신경다양성에 대한 교육과 함께, 당사자에 대한 정당한 편의제공이 필요하다. 특히 ADHD는 장애라는 인식이 별로 없어서 그러한 지원에 소홀해지기 쉽다. 이들에게 정당한 편의제공을 지원하는 것은 당사자로 하여금 공동체에서 환대받고 배려받는 느낌을 줄 수 있다.
물건을 잃어버리고 할 일을 잊어버린 나와 신경다양인 친구들의 탄식을 자주 본다. 그들의 슬픔에서, 우리 사회가 잃어버리고 잊어버린 것은 신경다양성에 대한 포용이 아닌지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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