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서울특별시 장애인교통카드 ⓒ이원무필자의 서울특별시 장애인교통카드 ⓒ이원무

나는 지하철 탈 때, 서울시 장애인 교통카드가 있어, 지하철을 무료로 다닐 수 있다. 한번은 지인들과 같이 지하철 탑승했을 때, 지인 한 사람은 내 카드를 이용해 지하철을 무료로 다닐 수 있었다.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구 장애등급 3급)이라 나는 법적으로 중증장애인이고, 중증장애인의 경우, 장애인을 동반하고 있는 보호자 1명까지 카드 사용 가능이라 지인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거다.

그런데 ‘보호자’란 말을 찾아보니, 어떤 사람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는 사람, 미성년자에 대해 친권을 행사하는 사람으로 정의가 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 보호자란 장애인을 보호할 책임을 가지는 사람이라는 거다. 하지만 보호자란 말을 듣는 순간, 피보호자는 능력 없다는 느낌이 들게 된다. 그러니까 장애인은 능력 없으니 보호해줘야 할 대상이란 느낌이 들게 된다.

이 경우 장애인은 길을 통해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는 능력이 없으니, 보호자가 동반으로 지하철 탑승해 그곳에 가야 한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런데 나는 목적지에 보호자, 또는 무료로 동반 탑승한 사람 도움 없이도 목적지에 갈 수 있다. 목적지에 가는 방법을 잘 모른다면 내가 잘 모르는 사람에게 물어서 스스로 그곳에 갈 수 있을 정도다.

더군다나 무료로 탑승한 지인이 나의 보호자라니? 이 사람이 내 삶을 책임졌나? 이 생각까지 미치니 기가 막힌다. 그런데 돌봄 요구가 심각한 성인 지적·자폐성 장애인의 경우엔 글씨 많은 건물 안내도, 버스 노선도 등 이들에겐 단순하고도 시각적이 아닌 추상적 내용인 등 비장애 중심의 교통체계로 인해 목적지를 찾는데,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이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도록 쉬운 버스 노선 안내도 등의 합리적 조정 등이 없다. 그러니 이들에겐 여러 방법을 통해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단, 길을 잃지 않도록 책임지는 사람이 필요해지고, 시설직원, 후견인, 부모 등의 보호자가 알려주는 데로만 길을 가게 된다. 그렇게 돌봄 요구가 심각한 저인지 성인 지적·자폐성 장애인은 이동권 객체로 전락 당한다.

고궁, 능원, 국 · 공립 박물관 및 미술관, 국 · 공립공원, 국 · 공립공연장, 공공체육시설 요금 감면이란 정부 정책을 보면, 등록장애인 및 장애의 정도가 심한 장애인과 동행하는 보호자 1인이 감면을 받을 수 있는 걸로 되어 있다. 그런데 등록장애인이 스스로 이들 시설에 있는 것들을 관람하고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 등을 하는 경우, 이들과 동반하는 사람이 보호자?

보호자의 보호를 받는 게 피보호자이면, 여기선 스스로 시설에 있는 것들을 관람하거나 자유롭게 이용하는 것 등을 할 수 없으니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이 피보호자인 셈이고 그런 느낌이 든다. 그런데, 스스로 그걸 할 수 있는 등록장애인의 경우라면 그 사람이 피보호자란 건 뭔가 맞지 않다. 모순된 건 물론, 보호자란 말에 장애인이 권리의 주체라는 느낌은 역시 사라진다.

한편, 장애아동 등 아동의 경우엔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증장애아동에 대해 양육자의 질병, 사회활동 등 일시적 돌봄서비스 필요 시 일정한 교육과정을 수료한 돌보미를 파견하여 장애아동 보호 및 휴식지원을 하는 등의 장애아가족양육지원서비스가 있다. 이 경우 장애아동 보호는 아동 권리 보장 일환 중 하나이기에 이와 관련해 보호자란 개념이 들어갈 수 있다.

하지만 성인에게까지 보호자란 개념이 들어가게 되면, 성인이 된 장애인은 능력 없는 사람이고, 권리의 객체이며, 어린아이와 같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성인 장애인과 관련해서 보호자라는 말을 쓰게 되는 데는 장애인에게 합리적 조정(정당한 편의)을 권리로 인식하지 않는 등 장애인을 권리의 주체로 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인식이 한몫을 하고 있다.

물론 성인 장애인에게도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삶이 힘들거나 지치거나 죽고 싶을 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을 정도의 보호와 돌봄, 지원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것 말고는 성인 장애인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장애인은 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편견 등으로 장애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막는 건 아닌 거다. 또한, 실패할 자유를 주지 않고 위험하단 이유로 이들을 과보호한다면 극단적으로 시설수용이란 논리까지 가면서 이들의 삶을 망가뜨리지 않겠는가?

그래서 성인 장애인이 권리의 주체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이 사회가 장애인의 의지를 중시하는 인권적 패러다임으로 가려는 노력이 필요함은 말할 필요도 없을 거다. 그러면서 성인 장애인과 함께 동반하거나 동행하는 사람은 보호자란 말 대신 ‘동반자’, ‘동반인’ 등의 말로 바꾸는 게 적절할 것이고 말이다. 그럴 때 성인 장애인이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에서 벗어나, 권리의 주체로 다시금 설 수 있겠지.

‘보호자’란 말, 이제는 다시금 생각할 때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