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혹독한 직장생활
정옥은 고향인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0년 넘게 그날이 그날 같은 날들을 보냈다.
서울올림픽으로 전국의 시선이 서울로 모였던 1988년 그녀는 용기를 내어 서울로 무작정 올라왔다. 그리고 복장학원에 등록을 하였다. 당시 그녀의 나이 31세, 무엇을 배우기에는 늦은 나이였다.
1년 교육과정을 수료하고 학원 추천으로 톰보이라는, 의류회사로서는 대기업에 취업을 하였다. 그녀는 남들보다 더 많이 노력하며 더 많은 일을 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하면 그것으로 패턴을 떠서 봉제실로 넘기면 그곳에서 천을 잘라 재봉을 하는 것이다.
디자인, 재단, 봉제 이런 과정을 거쳐서 옷이 완성된다. 그녀가 하던 재단사는 모델리스트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악착같이 했다.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노골적이던 시절이라서 해내지 않으면 바로 해고되는 분위기였다.
32세에 입사해서 55세에 정년퇴직을 할 때까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혹독한 직장생활을 하였다. 남들은 야근 한 번 할 때 그녀는 두 번 세 번 야근을 했다. 진급하는 데 차별이 있었다. 상사마다 장애인을 불편하게 생각했다.
"제가 직장생활하면서 느낀 것은 사람들이 세 부류예요. 그냥 이도저도 아닌 반응이 없는 사람, 아니면 약간 동정심으로 좀 챙겨 주는 사람, 그리고 보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 해 준 것도 없이… 의류가 아동복, 숙녀복, 남성복 이렇게 세분화되는데 각 팀장이 있고 그것을 총괄하는 부장이 있어요. 저는 숙녀복이고, 나머지 남성복, 아동복 팀장은 둘 다 남자였어요. 한 명을 실장으로 올려야 되는데 숙녀복이 의료 쪽에서는 대세이기 때문에 보통 숙녀복이 먼저 진급을 해요. 그런데 그 부장은 나를 내보내고 싶었나 봐요. 나를 안 내보내면 실장으로 올려 줘야 되니까. 그래서 급여 인상이 있었는데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었어요. 모욕적인 급여 인상이었어요. 그때 갈등을 많이 했죠. 다른 회사로 갈까 하구요. 대기업이라 이직이 잘 되었거든요. 우연히 다른 부서 부장에게 이런 얘기를 했더니 버티라고 하더라고요. 그 부장이 잘못된 거라고 그래서 모욕적인 급여를 받고 그냥 버텼어요. 결국 그 부장이 먼저 그만두고 저는 정년을 했죠. 자기한테 피해를 주는 일도 없는데 다리를 절고 왔다갔다하는 것이 꼴보기 싫었던 거예요. 다른 내 동기들보다 제일 늦게 진급을 했지만 그래도 내가 이긴 거예요. 또 다른 차별은 여성장애인이라고 쉽게 보고, 찝쩍거리는 유부남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저도 연하남이랑 썸을 타며 사내 연애를 한 적은 있어요.”
인생의 터닝 포인트
조그마한 회사는 정년이 없다. 그래서 대기업 스킬을 다 알고 있는 그녀를 스카웃하려는 회사도 있었지만 거절했다. 너무 힘들어서 골병이 들어 있었다. 좀 덜 먹고 절약하면서 자기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기술자로 끝나지 말고 다르게 살아 보기로 결심하고 우선 봉사 활동을 할 데가 없나 찾았다. 자기 혼자만 잘 먹고 살다 죽는다는 것이 좀 허무하기도 하고 얌체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우연히 지역신문에서 장애인 미술교육을 실시하는 소울음아트센터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찾아가서 총무님과 면담을 하고 바로 그날 등록을 했다.
처음에는 봉사하려는 마음으로 갔는데 그림에 대한 동경 같은 게 있어서 그런지 그림 그리는 것이 너무 재미있었다. 사람들이 오면 발딱 일어나서 의자도 빼주고 필요한 물건도 갖다 주고 했는데 점점 작업에 빠져서 누가 왔다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열심히 했다.
미술을 시작한 후의 변화는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떻게 나한테 이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소울음에 다니면서도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강의를 수강하고, 백화점 문화센터 그림 수업, 장애인복지관 미술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기초 공부를 했다.
소울음에 교수님들이 와서 가르 치시는데 교수님 말씀을 이해 못해서 자꾸 되물어 보게 되니까 미안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여 3년 동안 기초 교육을 받는 일에 몰두했다. 데생도 배우러 다니고 소묘도 배우러 다니고… . 이렇게 배우고 나니까 귀가 열렸다.
교수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게 되었다. 그때 교수님이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었다. 그림이 좋으니까 집에 있는 장애인들에게 그림 그리러 나오시라고 권하고 싶었 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장애인들이 안타까웠다.
소울음 최진섭 원장의 마인드가 남달랐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맨날 받는 것에 익숙하지 말아라. 남이 10을 주면 나는 12를줄 궁리를 하라.’고 엄격하게 교육시켰다. 그림에 대한 평가도 혹독했다. 정옥이 처음 그린 그림, 본인이 생각하기에 유치 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보고 최 원장은 칭찬을 했다. 그녀는 너무 좋아서 그날 밤 잠을 설쳤다. 소울음에서 그림 지도를 해 주시는 선생님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시어 더욱 고무됐다.
그래서 열심히 그렸는데 3년 정도 지났을 때 공모전에 응모할 준비를 하라고 하셔서 1년 후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 처음으로 출품하였는데 장려상을 받았다. 그녀에게는 대박 사건이었다. 그 후로는 장애인미술전, 일반미술전 등 꾸준히 응모를 했다. 낙방이든 당선이든 상관 없이 그녀는 준비하는 과정이 즐거웠다. 기회가 되면 그룹전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는 별을 보고 나가서 별을 보고 들어왔기 때문에 해가 뜨는 것이 싫었는데 그림을 그리면서부터는 빨리 날이 새기만을 기다렸어요. 소울음 화실에 가고 싶어서요. 수업이 없는 날은 인사동에 가서 전시회 관람을 했어요. 다른 사람 작품을 보는 것이 큰 공부가 되거든요.”

“5년 전 첫 번째 개인전을 인사동에서 열었어요. 제가 쑥스러워서 연락을 안 하려고 했더니 최 원장님이 무슨 소리냐고 다 해야 된다고 하셔서 연락을 했더니 많이 와 주었어요. 지인들이 구매해 줘서 전시작품의 60%를 팔았어요. 직장 동료들이 사 주더라구요. 동료들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왜 더 놀라냐 하면요. 제가 약간 공격적이었나 봐요. 피해의식이 있었던 거죠. 실장으로 퇴직을 했는데 그때 애들이 나를 무서워했었어요. 그런데 내가 너무 부드러워졌 대요. 대놓고 말하던데요. 사람됐다고… 그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어렸을 때부터 제 별명이 100만 불짜리 인상이었어요. 맨날 인상만 쓴다고. 그림이 나를 확 변화시켰더라고요.”
한 살 때 소아마비로 지체장애 4급인 정옥은 보행은 가능했지만 지나가던 사람이 스치기만 해도 휘청거렸다. 그것을 알고 초등학교 때 아이들이 그녀를 지나가면 쭉 밀어 넘어지기 일쑤 였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뒤에서 머리카락 쭉 잡아당기고 도망가고, 1960년대는 지금과 달라서 아이들이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경계하며 고슴고치처럼 날을 세우고 있었다.
그런데 화가 이정옥은 인간에 대한 사랑이 넘쳤다. “그림을 그리려면 화구가 굉장히 많이 들잖아요. 물감도 좋아야지 작품이 잘 나오고, 액자도 해야 되고 비용이 많이 들어요. 작품은 안 팔리고, 장애인화가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요.”
안양시청에서 그림도 사 주고, 문화예술 일자리도 마련해 주고, 소울음에 화구 후원이 들어올 때도 있어서 근근히 유지가 된다. 정옥은 개인전에서 판매한 그림 대금으로 2년치 물감을 샀다. 그림으로 번 돈이라서 그림을 그리는 데 사용하고 싶었다.
“우리 소울음 식구들이 공모전에 응모하려고 해도 컴퓨터를 다루는 게 어려워요. 그래서 안할려고 해요. 그러면 ‘사진만 보내 내가 등록해 줄게.’ 이러면서 참여를 시키고 있어요.” 그 덕에 제31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소울음 회원 4명이 입선하여 소울음아트센터가 잔칫집이 되었다.
2021년 이정옥은 제31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했다. 소울음아트센터를 찾아간 지 10년 만의 성과였다.

이정옥 작품의 주제는 심오하기보다 주변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들을 두서없이 또는 나열하듯이 표현한다.
시간의 손때가 묻은 고가구, 친구 같은 고양이, 이름 모를 잡풀들과 나비와 텃새들, 소박하고 꾸밈없는 이 친구들은 편안함과 따스함을 주기 때문이다.
수상작 <비밀의 화원>은 모두가 힘겹게 견디고 있는 코로나19로 인해 우울한 일상에 위안을 주고자 어우러지면서 개성 있는 색채를 사용해 단순하고 재밌게 표현해 웃음을 주고 싶었다고 자신의 작품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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