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에 성공한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주변의 응원을 받으며 한번에 세대 분리를 한 이들이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느끼게 된다. 대부분 격한 반대를 이겨내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게 되는데, 때로는 생면부지의 타인에게도 나오지 않는 단어들이 자립을 격하게 반대하는 가족이나 가까운 이들과의 대화에서 나오기도 한다.
독립하겠다는 뜻을 처음 밝혔을 때 “저러다 말겠지”라고 생각했었다는 지인들은 독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과 동시에 어느날부터인가 나에게 맞는 거주지를 알아보기 위해 어플과 부동산 관련 유트브를 확인하는 것을 보면서 “따로 나가 살겠다는 이야기가 장난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중 누군가가 “시설에 가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권유했다. 언젠가는 부모님도 세상을 떠날 것이니 언제까지 부모님의 보호 아래 사는 것은 맞지 않고, 다만 혼자서는 위험하니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는 이유였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속으로 육두문자가 나올 내용이었지만 내게 이 말을 한 사람은 10년 가까이 나를 옆에서 본 연세 지긋한 어른이셨다. 내 건강 상태와 가족 구성원의 현재 상황을 알고 있었던 친구였기에 그도 큰맘 먹고 어렵사리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었다.
더군다나 장애인에 대한 편견 자체에 불같이 화를 내는 내 성격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분에게 거칠게 나가서는 곤란했지만 시설이 대안이 아니라는 것은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제가 생각하는 시설은 요양병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물어보시는 그분께 “제가 생각하는 시설은 요양병원입니다”라는 말을 반복했다.
“들어가기만 하면 숙식 다 제공해주는 곳인데 왜 들어가기 싫은 거야? 자네 말이 잘 이해가 안되네.”
“겉으로 보면 장애인이 시설에 들어가면, 그 사람은 의식주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긴 하죠. 그런데 그 이상은 없는 겁니다. 시설에 있어도 볼 일이 있고 찾아갈 사람이 있으면 나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는 겁니다. 찾아오지 않으면 만날 수가 없으니 그 사람은 점점 잊혀지는 거죠 그리고 주는 대로 먹고 시설 스케줄대로 움직여야 합니다. 교도소나 군대에서 메뉴를 선택할 수 없는 것처럼 시설도 그렇습니다. 내가 생각하지 않아도 알아서 해 주는 곳에 가서 시간이 지나면 저라는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이 될까 봐 못가겠어요. 그게 두렵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시설을 요양병원과 똑같다고 한 겁니다.”
“병원에 입원하면 6인실을 많이 답답하다고 하잖아요? 시설 들어간 장애인들도 아마 마찬가지일 겁니다. 몸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평생 6인실을 쓸 수는 없어요.”
요양병원을 시설과 동급으로 생각한다는 것이 다소 의외라는 반응이었지만, 시설이 싫다고만 애기하기 보다는 연령대에 맞게, 내 이야기를 듣는 주 연령대가 겪을 수 있거나 듣는 내용들을 위주로 설명하니 이야기를 하기가 수월했다. 만약 어르신이 아닌 내 또래의 남자였다면 군대 이야기를 꺼냈을 것이다. 가고 싶은 군대가 없는 것처럼 가고 싶은 시설도 없으니까.
독립에 대해 걱정하며 다소 무거운 분위기로 시작했던 대화는 요양병원을 시설과 연계해 이야기하면서 비교적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끝났다. 장애인의 현실을 이야기할 때도 주 연령층과 같은 기본 정보라도 알 수 있다면 그리고 그에 맞춰 이야기를 준비한다면 훨씬 더 편안한 전달이 되지 않을까? 이유야 어찌 됐든 최근의 지하철 시위로 인해 “장애인은 바라는 것만 많다"”는 부정적인 시선이 많은데, 대중에게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할 시간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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