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여곡절 끝에 따로 나가 살 집이 정해진 직후였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에서 4층까지 오르내려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으나, 당시에는 집값과 함께 전세가격도 오르고 있었기에 엘리베이터가 없다는 이유로 그 집을 포기한다면 당시에 가진 돈으로 좀 더 좋은 곳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렇다고 넓어야 서너평에 불과한 고시원이나 난간도 없는 곳이 태반인 반지하로 갈 수는 없어서 "이곳에 있을 동안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다치지만 말자"라는 마음으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몇 년에 걸쳐 생각하고 준비했던 시간들이 결과물로 되어 돌아왔을 때, 주변의 반응은 "그래 이제 나갈 나이가 되었지"였다. 장애가 있더라도 한참 전에 나갔어야 했는데, 너무 늦게 자취생활을 시작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걱정스럽다는 것이었다. 잔금을 치루기 위해 방문했던 부동산에서도 "나갈 때가 한참 지났는데 이제라도 세대 분리를 하게 되서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살고 싶을 때까지 살라”는 주인분의 말도 함께 전달 받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고 "이제는 이 집을 부모님 댁으로 불러야 되겠구나"라는 마음으로 1인 가구에 필수인 물건들과 나의 몸 상태에 맞춰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하나 알아보던 중 잠시 마루로 나가니 식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그리고 할 말이 있다며 뜻밖의 제안을 했다.
“네 집 현관 비밀번호를 식구들과 같이 공유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네 의견은 어떠니”라는 말이 들어갔다면 그렇게까지 서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맞는 것 같다"라는 말은 "아무 말 말고 식구들 의견에 따르라"는 말의 부드러운 버전으로 들렸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이제는 내 집이고, 나만을 위한 공간이어야 했다. 비밀번호 공유의 이유를 물어보니 "4층까지 오라면서 쓰레기를 버리는 문제가 가장 걸린다"고 했다.
서운했지만 현실적인 문제였다.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리다 미끄러져 다리에 또 다른 시당이 생긴다면 당분간 독립생활을 접어야 하는 입장이었고, 한 손으로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난간을 잡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보이기는 했다.
일흔이 넘은 부모님이 장애가 있는 자녀의 집에서 발생한 각종 폐기물 분리작업을 한다는 것도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지만, 그것마저도 감수하겠다는 부모님에게 절대로 안된다는 입장만 고수하기는 어려웠다. 대신 조건이 필요했다.
“비밀번호 공유는 이사 전까지만 하는 걸로 하죠. 새로 여기 말고 다음에 가게 되는 곳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있으니 쓰레기를 버리거나 하는 일도 내 스스로 할 수 있겠네요.”
“네가 부모와 식구들의 마음을 아냐?”
나의 답변을 예상하지 못했던 듯 조금은 격앙된 식구들의 반응이 들어왔다. 그러나 식구들 역시 이제는 서서히 도움을 줄이는 방법을 생각해야 할 시기였다. 몸이 성치 않은 자식이 혼자 살겠다고 이것저것 해 보는 마음이 안쓰러워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은 것이 부모와 식구들의 마음이라면 두 분이 이 세상에 사진으로만 남게 되었을 때를 대비하여 조금씩 멀찍이 떨어지는 시간을 늘리는 것도 미래를 위해 식구들이 도와줘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현관 비밀번호를 공유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혼자 있는 집에서 갑자기 기절하거나 연락이 안 될 때 즉시 조치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들기는 했지만, 그 부분을 갖고 선뜻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이 점을 설명하며 기존의 내 입장을 설명한 끝에 추후에는 공유 불가로 결론이 나기는 했으나 결론이 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마 전 임대아파트 예비순번을 받았다. 시간이 걸려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하고 나면 이 글에서 썼던 작은 소동도 추억이 될 것이다. 부모님이 언제까지 내 보조자가 될 수 없듯 나 역시 언제까지 막둥이로 남을 수는 없는 일이다.
현관 비밀번호 공유 소동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다시 이사를 가게 되면 그때 다시 이 문제에 대해 논의가 필요할 것 같아 답답하다. 내 집의 현관문 비밀번호 공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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