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달장애와 정신장애로 대표되는 정신적 장애인과 신경다양인은 글쓰기와 거리가 먼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비당사자뿐만 아니라 당사자 역시 그러한 선입견을 가진 경우가 많다. 당사자들은 특히 글쓰기 경험이 많지 않고 자신감이 낮아 글쓰기를 시작하는 데에 막막함과 두려움을 자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글쓰기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특히 신경다양인에게는 더더욱 필요하다. 왜 신경다양인에게 글쓰기가 필요한지 이 글에서 설명하고자 한다.
당사자의 생애사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신경다양인과 정신적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계속 소외되고 고립되어왔다. 고립된 당사자는 조용히 세상 속에서 사라지거나 사건 사고의 주인공이 되어 신문과 뉴스에 오르내렸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를 표현한 기록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기록 자체가 없거나 비당사자들이 함부로 이야기하고 비난하는 글만 남았다.
그런 상황에서 신경다양성 당사자가 자신의 삶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차별과 소외 경험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한 자료 자체가 개인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하나하나 모여 신경다양인의 삶을 증언하고 신경다양인과 그 집단의 역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형식은 제한이 없다. 칼럼도 좋지만 에세이, 편지, 자서전, 그 어느 것이든 상관없다. 자신의 경험이 녹아있는 글이라면 무엇이든 좋다.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는 것이 정신적 장애인 서사의 시작이다.
신경다양성 관점의 미디어를 생산하기 위해서
‘우리들의 블루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신경다양인을 소재로 한 작품이 계속 등장하고 있고 좋은 반응을 다수 얻기는 하였으나, 이들 작품이 신경다양성 관점을 기반으로 한 작품이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시대착오적인 ‘아스퍼거 증후군’ 명칭을 기본 설정으로 사용하여 당사자단체의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당사자의 이야기를 더욱 흥미진진하고 재밌게 그려내면서도 당사자가 함께 웃으며 공감할 수 있는 창작물이 생산되려면 신경다양성(정신적 장애를 뇌 신경발달의 다양성으로 인정하는 것)을 기획 초기부터 마지막 편집까지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신경다양인들이 작품 기획, 집필, 자문의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웹툰,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다양한 미디어가 있지만 이러한 미디어의 핵심에는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이야기를 말하는 것)이 있다. 그리고 스토리텔링은 문학적 상상력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말은 문학적 감수성을 가진 신경다양인이 많아질수록 신경다양성을 반영한 작품이 더 많이 발매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학적 감수성이나 미디어 리터러시(미디어를 이해하고 비평하는 능력)은 그러한 작품을 독해하거나 비평할 때도 물론 좋다. 더 많은 신경다양성인이 기존의 미디어를 신경다양인의 방식으로 비평한다면 콘텐츠 제작자들도 다음 작품을 쓸 때 신경다양성을 고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다양성 및 당사자주의에 입각한 학술문헌을 생산하기 위해서
기존의 정신적 장애 담론은 정신과 의사나 치료사 등의 전문가집단 혹은 가족단체들이 의제를 선점하고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에서 정신적 장애와 신경다양성이 발달 및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기에 치료해야 한다는 폭력적인 주장이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당사자는 계속해서 배제되어왔다.
정신적 장애에 대한 편견과 몰이해가 담긴 그릇된 주장을 없애기 위해서는 당사자가 당사자주의 관점에서 학술적 지식을 생산해야 한다. 신경다양성이 더 이상 치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신경다양성 진영에서는 명확한 진리가 되었지만, 아직 학계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신경다양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개발해야 한다.
신경다양성과 당사자주의적 지식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글쓰기와 친해져야 한다. 지식 생산의 기본인 발표와 논문은 논리력과 작문 능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신경다양성 연구를 하려면 외부 기관 등에서 연구비를 받아야 하는데, 연구계획서를 쓰기 위해서라도 글쓰기가 필수적이다. 글을 쓰지 못하면 연구를 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당사자를 위한 사업을 계획하기 위해서
신경다양인은 아직 일자리가 많지 않다. 주로 당사자단체에서 활동가로 일하거나 병원 등에서 동료지원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한 사업은 이윤을 창출하기 어렵기 때문에 외부 지원이 필수적이다. 국가에서 보조금을 받거나 민간기관에서 지원금을 받아서 당사자 직원에게 급여를 지급하게 된다.
당사자를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외부 지원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려면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제출하여야 한다. 사업계획서는 사업 공모의 콘셉트와 방향성에 맞아야 하고, 세부적인 심사 기준도 통과해야 한다.
사업계획서는 대부분 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글로 심사위원들을 설득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업의 필요성과 효과를 논리적으로 설득하지 못하면 보조금을 받지 못하고 일자리 역시 창출할 수 없다.
신경다양인이 글을 써야 하는 실용적인 이유에 대해 설명해 보았다. 글쓰기는 쉽지 않은 지적 노동이다. 그러나 당사자의 삶을 기록하고 더 인권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필수적이다. 그러니 오늘부터 딱 한 장만 글을 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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