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이 1월 9일 오후 2시 서울시청에서 황재연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장 등 장애인 관련 단체장 9명을 만나 신년인사를 나누고 현장에서 느끼는 장애인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듣는 모습. ⓒ서울시오세훈 서울시장이 1월 9일 오후 2시 서울시청에서 황재연 서울시지체장애인협회장 등 장애인 관련 단체장 9명을 만나 신년인사를 나누고 현장에서 느끼는 장애인 정책에 대한 의견을 듣는 모습. ⓒ서울시

1월 초순, 서울시가 “지하철을 지연시키는 행위는 원칙적으로 대응하겠다”며 무관용 원칙으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주도하는 지하철 시위에 대응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어서 지난주엔 서울시의 오세훈 시장이 장애인 단체장 9명을 만나 신년인사 겸 현장에서의 장애정책 관련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단다.

이 자리에서 장애인 단체장들은 발달장애인의 사회적응교육과 직업능력 향상을 위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운영비 증액 지원, 서울시내 거주서비스 확충 및 거주시설 개선, 중도장애인의 사회 복귀 및 재활을 위한 예산 투입 등을 이야기했단다.

그런데 탈시설에 관해서 탈시설 이후 인권침해가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한다든지, 탈시설을 해야 마치 사람대접을 받는 듯한 느낌이 든다며 탈시설을 한 사람이 행복한지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등의 발언을 장애인 단체장들이 했단다. 이 소식을 듣고는 조금은 우려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지역사회의 서비스 및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잘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탈시설은 장애인에게 강제 탈시설로 작용하니, 시설과 지역사회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 서울시 회의에서 오고 간 내용 중 하나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다. 그런데 하나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여러 일이 있어서 이전에 약속했던 모임에 제시간에 가기 위해 총알택시를 타야만 했던 상황이 있었다고 해보자. 그렇다면 이 경우에 보통은 총알택시 탑승을 선택했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총알택시 탑승 외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선택이라고 말하려면 실은 모든 선택지를 고르는데 동등한 기회가 보장되는 환경이어야 한다는 거다.

다시 회의내용으로 돌아오면, 지역사회에서의 서비스가 불충분하니, 그게 갖춰질 때까지 탈시설을 미루고 시설과 지역사회 중에 하나를 선택하자는 식으로 말하는 게 서울시 회의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장들이 말하는 논리다. 시설을 선택하는 시설 거주 장애인들의 비율이 탈시설을 원하는 장애인들보다 많다는 통계자료도 이들의 논리를 뒷받침하는 거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지역사회에서의 서비스는 항상 불충분했고, 장애인의 욕구, 선호, 의지를 중시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서비스이기보단 예산과 구 장애등급 등에 맞춘 장애의 의료적 모델이 다분한 서비스를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것이 대한민국 장애인 정책 역사에서 거의 반복되다시피 했다.

한 사람이 어느 길을 갈지 선택을 고민하는 모습. ⓒPixabay한 사람이 어느 길을 갈지 선택을 고민하는 모습. ⓒPixabay

만약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서비스를 구축하고 장애에 대한 인식이 포용적인 환경 등 지역사회에서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나서 지역사회와 시설 중 하나를 선택할 때 만약 장애인이 자발적으로 시설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그때는 진정한 ‘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그런 환경을 만들지 않고서 선택을 얘기하는 것은 뭔가 맞지 않다.

위에서 얘기한 장애인 정책 역사를 고려한다면, 시설을 원한다는 응답 속엔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조건이 안 되니 시설 거주인에게는 탈시설을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시설에 살 수밖에 없다는 판단 속에 시설밖에 대안이 없었을 거다. 이런 경우 진정으로 시설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이 경우엔 시설 외엔 다른 선택 여지가 없다고 말하는 게 맞다.

또한, 시설에 입소할 때 ‘나를 시설에 들어가게 하시오’라고 자발적으로 말하는 장애인들이 많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사실은 지역사회에서 인간다운 삶을 살 지역사회 조건이 잘 갖춰지지 않으니, 시설밖에 대안이 없어 시설입소를 반강제적으로 한 장애인들이 대부분이다.

즉 지역사회에서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기반한 서비스를 갖추고 이 서비스를 충분하게 하려는 실제 노력 없이 지역사회의 서비스가 충분하지 못하니 탈시설을 하는 경우 강제 탈시설 등의 인권침해가 우려된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상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잘 대변해주는 문구가 UN 탈시설 가이드라인 제37항에 분명히 나타난다.

37. 모든 장애인은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일부 사람들은 독립적으로 살 수 없고 시설에 남아야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차별이다. 의사결정에 대한 권리를 부정당해온 이들은 자립생활과 지역사회 통합을 시작하더라도 초반에는 이러한 생활환경이 편안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시설은 그들이 아는 유일한 생활환경일 수 있다. 당사국은 시설에 수용된 사람들의 개인적 성장(발달)을 제한해온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며 장애인의 ‘취약점’ 또는 ‘약함’이 탈시설의 걸림돌로 작용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탈시설 과정은 장애인의 존엄성 회복 및 이들의 다양성 인식을 목표로 해야 한다. (장애인 당사자의) 손상을 기반으로 한 자립생활 능력 평가는 차별적이며 개인별 요구사항 및 지역사회 내 자립생활 장벽 평가로 바뀌어야 한다.

여기서 탈시설 과정은 장애인의 존엄성 회복 및 이들의 다양성 인식을 목표로 해야 한다고 나와 있다. 장애인의 욕구와 선호, 의지 등을 존중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니 탈시설 과정은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서비스 구축 및 장애인식 증진계획 등을 통해 진행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또한, 탈시설에 제동을 걸려고 하는 측에서 이야기하는 시설 거주인들이 가질만한 우려도 이 37항에 잘 나와 있다.

이 부분에서 나는 전 세계 당사국들이 협약을 비준했음에도 시설화는 계속되는 모든 나라의 현실에 대해 장애인권리위원회 위원들이 심각하게 고민한 흔적을 이 37항에서 잘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인권리협약은 이상적 문구가 아닌 현실을 반영한 조약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게 됐다.

UN이 올해 9월 9일 발표한 탈시설 가이드라인 원문 중 일부 ⓒUN CRPD CommitteeUN이 올해 9월 9일 발표한 탈시설 가이드라인 원문 중 일부 ⓒUN CRPD Committee

아직도 정부와 서울시 등의 지자체는 장애인의 의지, 선호, 욕구를 존중하는 장애의 인권적 모델과 이를 추구하는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관심이 없거나 이게 있다는 것을 알아도, 무시하는 듯하다. 또한, 일부 장애인 단체장들도 UN 탈시설 가이드라인에 많은 관심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들에겐 UN 장애인권리협약이 무용지물인 듯한 느낌이다. 이 느낌이 거짓이면 좋겠지만 말이다.

또한, 발달장애인의 사회적응교육과 직업능력 향상을 위한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 운영비 증액 지원이라고 했는데, 여기서도 우려가 되는 지점이 있다. 발달장애인 평생교육센터의 커리큘럼을 보면, 저인지 지적·자폐성 장애인들을 위주로 한 단순교육이 중심이라, 장애인의 욕구와 선호, 의지를 다양하게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교육이 아닌 거다.

또한, 통합적 환경이 아닌 사실상 분리된 환경에서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기에 사회적응교육과 직업능력 향상을 위했다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통합적 환경에서 교육을 제공한다면, 비장애인과의 관계에 자신감이 생기기에, 직업능력 및 사회적응능력 향상에 도움이 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기에, 지적장애인 등 장애인 직업이 대부분 단순노무직에 불과한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탈시설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논란을 끝내고 어떻게 하면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라 탈시설 과정을 이끌 것인지 시설 거주인 및 장애인 당사자들을 필두로 정부와 지자체, 장애인 단체장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평생교육과 관련해서도 장애인 당사자들(고인지, 미등록 장애인 포함)의 욕구를 조사해, 이를 토대로 장애의 인권적 모델에 따른 평생교육 체계를 만드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아울러 장애인 단체장들과 서울시는 UN 장애인권리협약 및 탈시설 가이드라인의 내용을 훈련 수준에까지 완전 숙지해야 한다는 거다. 서울시 공무원 및 모든 지역 지자체장과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각 지자체장들과 지자체 공무원들은 훈련 수준으로 익힌 협약 및 가이드라인을 지역사회 장애인의 일상생활 영역에서 이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뿌리 깊게 적용해야 한다는 거다.

그렇지 않는 한 사실상 핑계인 탈시설 논란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장애의 의료적 모델은 고수될 것이며 장애인의 인간다운 삶은 현실에서 먼 그저 허망한 신기루와 같은 것이 될 거다, 이 점을 서울시와 회의에 참석한 장애인 단체장들은 잘 생각했으면 한다. 대한민국 정부 및 지자체 정책에 UN CRPD에서 천명하는 원칙들이 구체적인 모습들로 담기길 바라며 말이다.

마침 지난 1월 16일, 뿌리 깊은 장애인 시설수용 정책을 오랫동안 보아온 한국장애포럼 등의 13개 시민사회단체와 장애인 당사자, 그리고 이들의 뜻에 동감한 정의당,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한국의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에 대해 UN에 직권조사 신청할 뜻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번 기자회견이 고질적인 장애인 인권침해 온상인 시설수용 정책을 종식하는 시작점이 되었으면.

한국장애포럼 등 13개 시민사회단체가 정의당 장혜영‧강은미 의원, 더불어민주당 강민정‧최혜영 의원과 함께 1월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에 한국의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에 대한 직권조사를 신청한다고 밝히는 모습. ⓒ국회방송캡쳐한국장애포럼 등 13개 시민사회단체가 정의당 장혜영‧강은미 의원, 더불어민주당 강민정‧최혜영 의원과 함께 1월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유엔에 한국의 장애인거주시설 정책에 대한 직권조사를 신청한다고 밝히는 모습. ⓒ국회방송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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