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전에 연락처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로 전화 왔다.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필자는 받을지 말지를 생각하다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고 보니 KT에서 이용하고 있는 케이블방송과 인터넷을 3년 더 재약정을 하려는지 물어보기 위해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안 상담사는 문자로 대화하자고 했고 필자는 상담원과 문자로 대화하면서, 케이블방송과 인터넷 3년 재약정을 하는 절차를 무사하게 마칠 수 있었다.
전화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면 활동지원사 선생님들이나 지인들의 도움을 받았던 필자에게는 결코 작지 않은 성취감을 주었다. 3년 재약정하니까 KT에서 티비 셋톱박스를 무료로 교체해주었다.
교체된 셋톱박스에는 몇 가지 기능들이 추가되었는데 리모컨 없이도 말로 채널들을 돌릴 수도 티비를 끄고 켤 수 있는 인식 기능도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티비 셋톱박스가 필자의 말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니야”라고 아무리 불러도 티비 화면에 음성인식 기능이 실행된다는 마이크 표시가 나타나지 않는다. 언어장애가 있어 티비 셋톱박스가 필자의 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면 당연하다.
그러나 한 번 만 더 생각하면 티비를 시청할 때 음성인식 기능이 필요한 사람들은 비장애인들보다 장애인들이다. 그중에서도 다른 장애 영역과 비교해서 중증장애인들이 많은 뇌병변장애인에게 음성인식 기능이 더 필요한 기능일지도 모른다.
필자와 같이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뇌병변장애인들은 음성인식 기능을 활용하면서 티비 시청을 하지 못하고 있다. 티비 셋톱박스가 아주 정확하게 말하는 비장애인들의 말 발음들만 인식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다.
심한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뇌병변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대화할 수 있는 가벼운 언어장애를 가지고 있는 뇌병변장애인들도 티비 시청할 때 음성인식 기능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뇌병변장애들이 가지고 있는 언어장애가 개개인 마다 다른 것 같지만 분석해보면 일곱 가지 유형으로 묶을 수 있다.
말할 때 특정 단어를 다른 단어로 대치하는 유형, 말할 때 특정 단어를 생략하는 유형, 말할 때 특정 단어를 부정확하게 왜곡하는 유형, 말할 때 특정 단어를 첨가하는 유형, 말할 때 자음들의 위치나 모음들의 위치를 바꾸는 유형, 말을 반복하는 유형이다.
지금 하루 다르게 발전하고 있는 AI기술을 이용하면 이러한 언어장애 유형을 가지고 있는 뇌병변장애인의 발음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는 티비 셋톱박스를 개발할 수 있을 것이다.
케이블방송을 송출하고 있는 KT, SK, LGU+에서 이러한 점을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이 글은 전주에 사는 장애인 활동가 강민호 님이 보내온 글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도록 기고 회원 등록을 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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