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이 되어버린 22회 FIFA 카타르월드컵을 보면 16강에 올라간 팀 가운데는 아시아 3팀, 아프리카 2팀이 된다. 아시아, 아프리카, 북중미는 국제축구계에선 비주류로 불린다. 이들 가운데, 한국, 호주 등은 승점 자판기로, 일본, 모로코 등은 기적이 필요한 팀으로 분류됐다.
나도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월드컵에 처녀 출전한 주최국 카타르는 개막전에서 에콰도르에 2대 0으로 지고, 이란은 베이란반드 골키퍼 부상 후 해리 케인이 이끄는 잉글랜드에 6대 2로 참패를 당할 때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루사일 아이코닉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아르헨티나와 사우디와의 경기에서 사우디가 아르헨을 2대 1로 이기는 대이변인 ‘루사일의 기적’을 연출했다. 아르헨은 현란한 패스플레이로 점유율을 우세하게 가져갔지만, 오프사이드 트랩에 육탄방어 등 강력한 수비로 팀을 무장하고 찬스를 살린 사우디의 벽을 뚫지는 못했다. 팀보다 위대한 선수는 없음을 상기시킨 경기였다.
이어서 다음 날 독일과 일본의 경기에선 독일이 미드필드에서 우위를 점해 패널티킥까지 얻고 침착하게 성공시키까지 해 독일의 승리로 끝나는가 싶었다. 하지만 공격 다양성은 떨어졌고, 독일의 한 수비수가 깡충깡충 뛰면서 공을 잡는 등 일본 선수에게 굴욕감을 주기도 했다.
이후 하지메 감독은 도안 리츠 같은 공격성향 선수로 교체하는 승부수를 던졌는데, 미드필드에서 패싱게임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얼마 후 미나미노 패스를 받은 선수가 슛을 넣은 게 독일의 마누엘 노이어 골키퍼 손에 막혔지만, 세컨볼을 도안 리츠가 차 골망을 갈랐다. 동점이 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사노는 우측면 깊숙이 공을 차넣어 역전시켰다. 남은 15분 동안 독일은 총공세였지만, 일본의 탄탄한 수비에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경기는 2-1 일본 승리로 끝났다.
코스타리카에 1-0 패배를 당해 잠깐 주춤했지만, 유럽의 무적함대인 스페인과의 경기에서 독일전 때 했던 것과 비슷한 전술로 탄탄한 수비에 패싱게임, 때로는 몸싸움까지 써간 끝에 스페인에게 2-1 역전승을 거뒀다. 16강전에서 크로아티아에게 우세한 경기를 하고도 패널티 승부로 지긴 했지만, 이들의 경쟁국인 우리나라 입장에선 부럽기도 하면서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호주의 경우엔 첫 경기 프랑스전에서 4-1로 참패했지만, 2차전 튀니지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이겼다. 3차전 덴마크와의 경기에선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덴마크 공격을 잘 막은 다음, 후반 역습으로 이겨 1-0으로 승리해 16강 티켓을 거머쥐었다. 16강전에선 카타르월드컵 우승국인 아르헨티나에 아쉽게 2-1로 졌지만, 아르헨티나를 끝까지 괴롭히며 인상적 경기력을 펼쳤다.
아프리카 팀들도 이번 월드컵에 2팀이나 16강에 진출했다. 특히 모로코의 돌풍은 막강했다. 합심한 수비진의 막강수비로, 유럽의 강호인 스페인과 포르투갈, 벨기에는 이들의 벽을 뚫지 못했다. 사실 선수 절반이 축구 강국들이 모인 유럽에서 생활했기에 이런 돌풍이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가나처럼 급조된 게 아니라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기에, 이들의 돌풍은 더욱 빛이 난다.
우리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빌드업 축구로 당당히 맞섰다. 전형적 뻥축구가 아닌 패싱플레이를 펼치면서 주눅 드는 것 없이 능동적으로 맞서고, 상황에 따라 때로는 롱볼도 때리면서 경기를 주도했다. 비록 뒷공간을 내준 가나전에 2-3 패배했지만, 우루과이엔 전체적으로 우세한 경기를 펼쳤고, 포르투갈전에선 2-1로 극적으로 이겨, 2번째 원정 16강인 ‘알 라얀의 기적’을 이뤘다. 물론 체력이 소진된 16강전 브라질전에선 1-4 완패로 아쉽긴 하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16강 팀을 보면, 아시아 3팀, 아프리카 2팀, 북중미 1팀, 유럽 8팀, 남미 2팀이었다. 16강 팀이 전 대륙에서 나와, 다양성 있는 진짜 월드컵이란 생각이 들었고, 독일, 벨기에, 덴마크, 우루과이 등 전통강호들이 1라운드에서 탈락해 집으로 돌아가는 등 ‘영원한 강자, 영원한 패자’는 이제 없다는 게 더욱 확연히 느껴지는 대회였다.
우리나라와 일본, 호주 등 아시아 국가들은 축구 선진시장인 유럽에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문을 두드려 EPL, 라리가, 분데스리가 등에 선수들을 이적시켜 왔다. 이적한 선수들은 선진축구를 경험하면서 실력을 증진시켰고, 이는 대표팀 실력 증진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됐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2002년 전엔 차범근, 설기현, 안정환 선수 등 소수의 선수이 유럽에 진출했다. 하지만, 2002년 이후 박지성, 이영표 선수의 PSV 아인트호벤 이적을 기점으로 현재는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나폴리), 이강인(마요르카) 선수 등에 이르기까지 이전보다 더 많은 선수들이 유럽에 진출해 선진축구를 배우며 활약하는 중이다.

17세 이전까지 개인기 위주 교육에 즐기는 축구를 가르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축구협회가 감독 권한을 지나치게 간섭하는 걸 지양하는 등, 투명한 운영방식으로 바꾼다면 유럽과 남미가 양분한 축구 주류세계에 우리나라도 당당히 들어올 것을 확신한다. 상상만 해도 즐겁다.
일본의 경우 2050년 월드컵 우승을 목표로 협회 차원에서 선수들의 유럽 진출을 지원했다. 이번 월드컵에도 유럽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우리보다 훨씬 많고, 개인기도 유럽, 남미 못지않은 등, 발군의 실력을 갖춘 선수들이 많이 보였다. 체계적인 협회 지원이 지금처럼 계속되면, 진짜 이들의 목표는 현실이 될 걸 생각하니, 부러우면서도 우리 축구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느낀다.
4강에 진출한 팀이 2002년에 우리나라였다면, 이번 월드컵에선 아프리카의 모로코가 이를 이뤄냈다. 축구선수 중 유럽에 사는 이중국적자들과, 유럽축구에서 활약하는 아프리카 선수들이 많아지고, 모로코의 4강 신화까지 발생했으니, 이런 추세면 앞으로는 아프리카에서 월드컵 우승팀이 나오는 게 멀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이번 월드컵을 통해 아시아와 아프리카가 세계축구의 비주류, 언더독, 변방임을 거부하며, 남미와 유럽이 양분한 축구의 주류세계에 들어가려는 움직임이 더욱 확연히 느껴졌다. 앞으로도 유럽축구를 배우는 아시아, 아프리카 선수들의 움직임이 계속되고, 각국 협회의 투명성이 개선된다면, 남미와 유럽으로 양분된 세계축구의 주류세계에서 아시아, 아프리카도 동등한 한 일원으로 함께 어울리고 당당히 경쟁하며 활약할 것을 기대해본다.

그런데 과연 장애인들은 주류사회의 동등한 한 일원으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며, 인간다운 삶을 살고 있을까? 최근 지하철 탑승시간을 5분 이상 초과하면 500만 원을 서울교통공사에 지불한다는 법원의 강제조정을 한 장애인단체가 수용하는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오세훈 시장을 위시한 서울시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시위로 인한 시민의 불편을 이유와 명목으로 삼아 단 1분도 휠체어 이용인의 탑승을 허용할 수 없다며, 경찰병력을 배치하고 이들이 지하철을 타는 것을 막아냈다. 시민의 불편을 초래했으니 경찰이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팽배하고 어느 면에서는 그럴듯하며 일리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비장애 중심의 교통체계로 인해 휠체어 이용인 등 장애인은 이동권 제한으로 자립생활은 물론 주류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함께 어울릴 기반을 오랜 시간 박탈당해왔다. 게다가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단차로 인해 장애인들이 부상을 당하도록 만든 시스템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오히려 장애인과 시민을 갈라치기하며 장애인을 혐오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장애인을 사랑·배려한다는 건 장애인은 시혜·동정의 존재이자, ‘권리의 객체’이며 이는 비장애 중심 사회가 만든 가증스러운 위선과 민낮이었음이 이번 일을 통해 확연히 드러났을 뿐이다.
장애인들과 장애인단체, 시민단체 등이 정부·지자체 등이 만든 비장애 중심 사회의 이런 위선에 함께 맞서고, 유니버설한 교통체계를 세우기 위해 계속 노력할 때, 장애인 이동권 보장 등을 통해 장애인은 주류사회의 동등한 한 일원으로 함께 어울리며 인간다운 삶을 살게 될 실마리가 보이겠지.

장애인 교육과 관련해선 분리교육이 대세를 이루는 현실이고, 이는 지난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 방향이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은 서로 만날 기회가 줄어들고, 장애 학생이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신감을 갖기란 하늘의 별따기며, 그 가운데 차별·혐오는 자라난다. 관계에 자신감이 줄어들면 장애 학생이 성인이 되어 주류사회 고용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은 줄어들 거다.
주류 고용시장에서도 장애인 하면 ‘일을 못할 것 같아서’, ‘적합 직무가 없어서’, 또한 정신장애가 있다는 이유 등의 편견으로 대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선 미등록 자폐성 장애인, 정신장애인 등 능력 있는 장애인들조차 고용에서 배제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서부터라도 다양성이 전제인 실질적 통합교육 조치가 취해진다면, 장애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서로 만날 기회가 많아지고, 장애학생은 주류학교에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말하며, 사람들과의 관계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거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낮아지고, 이를 통해 장애인은 주류사회 고용시장에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하겠지.
이러면 장애인은 주류 고용시장에서 비장애인과 함께 어울리는 등 주류사회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주류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주류사회와 시민사회의 동등한 한 일원으로 자리 잡게 될 거다.
이렇게 장애인이 주류사회에서 활발히 활동하려면, 장애인 당사자가 필두가 되어 장애인계, 시민사회 등이 함께해 의견은 다를 수 있지만, 손상 중심의 문화로 인한 갈등과 반목을 극복하고, 장애 정체성에 기반한 문화로 모두가 하나가 돼 목소리를 내고 그와 관련해 노력하는데 집중해야 할 것으로 본다.
장애인을 분리하는 사회에선 지금부터라도 장애 등 다양성과 장애인의 선호와 의지, 욕구를 존중하는 패러다임으로 가도록 장애인의 정책, 사회 참여를 보장하는 통로를 만드는 등 국가와 지자체 차원의 행동계획이 있어야 할 것이다.
장애인도 동등한 인간이다. 장애인 어느 누구도 사회의 비주류에 남고 싶지 않다. 적어도 주류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다. 또한, 장애인은 사회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
장애인만 노력해서 되는 건 아니다. 편견이란 렌즈로 장애인을 바라보고, 장애인이 이룰 수 없는 무리한 비장애 중심의 기준을 사회는 은근슬쩍이라도 장애인에게 강요해선 안 될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다양성을 중시할 때, 장애인은 함께 어울리며 주류사회의 동등한 한 일원으로 활동하는 계기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런 계기가 만들어지는 계묘년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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