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에 떠나 12월 중순이 다 된, 짧지 않은 여행을 끝내고 밤늦게 집에 도착했다. 괜히 집이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다음 날은 짐을 풀고 정리하느라 바빴다. 하지만 시차 때문에 오후 5시가 되자 잠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그때부터 모두 자서 중간에 조금 깼지만, 다음 날 아침 7시까지 14시간을 내리 자고 일어났다.

한국 음식을 못 먹어서인지 집에 와서 김치만 가지고 먹어도 밥이 너무 맛있다. 전에 자주 먹던 계란찜도 맛있고, 계란말이도 맛있고, 된장찌개도, 곰국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그 다음 날도 시차 때문에 밥을 먹고 샤워하고 나니 피곤이 밀려왔다. 하는 수 없이 저녁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자고 나니 잠이 안와서 아침 7시까지 겨우 누워 있다가 일어났다. 새벽에 깨서 잠이 안 온다고 계속 날 깨우는 애들한테 나도 몸이 너무 힘들어서 짜증을 내고 말았다.

새벽에 화를 내서 현혜에게 미안함이 많이 들었는데, 7시에 일어나자마자 현혜는 나 몰래(물론 난 편지 쓴다는 거 정도는 알았지만) 나한테 줄 선물을 준비한다고 난리였다. 곰국에 계란말이 반찬으로 아침을 먹이고, 어린이집을 보낼 준비를 하는데 첫째 현이가 하얀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자기들이 어린이집 가고 나면 풀어 보라며 반지도 있다고 했다.

37일간의 여행 후,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 상자 속 편지와 빵 묶는 타이로 만든 하트 반지 ⓒ박혜정37일간의 여행 후, 아이들이 내게 준 선물 상자 속 편지와 빵 묶는 타이로 만든 하트 반지 ⓒ박혜정

그 전에 받았던 현혜의 편지와 같은 느낌으로 생각했고, 장난감 반지 하나 들었나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는 현혜를 보내고 나서 나는 해야할 일이 산더미였다. 여행 빨래를 돌려야 했고, 설거지, 청소도 해야했다. 모든 일을 거의 다 해놓고 한참 뒤에 상자를 열어보았다.

그 안에는 식탁에 널브러져 있는 빵 묶는 타이를 가지고, 직접 만든 하트 반지가 들어 있었다. 그 어떤 반지보다 더 사랑스러운 반지였고, 정성껏 그리고 쓴 편지가 들어 있었다. "낳아주셔서 고맙습니다,"라는 글과 함께 휠체어 탄 나를 그려 놓았다. 게다가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이쁘다."는 말을 써 놓았다.

힘들어 짜증만 낸 못난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엄마로 그려준 딸들 현혜 ⓒ박혜정힘들어 짜증만 낸 못난 엄마를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엄마로 그려준 딸들 현혜 ⓒ박혜정

순간 눈물이 왈칵 나면서 현혜한테 너무 너무 미안했다. 맨날 혼내기만 하고 짜증만 내고 화만 내는 부족함 투성이 엄마인데, 현혜는 나를 이렇게 멋진 엄마로 생각해주다니 내가 얼마나 감사하고 행복한 사람인지 모른다. 현혜에게 몸도 마음도 세상에서 제일 이쁜 엄마가 되도록 정말 노력할게! 현혜야 정말 사랑해~!


그렇게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있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나가보니 동장 아줌마가 첫째 현이의 취학통지서가 나왔다며 주셨다. 아... 드디어 나왔구나! 기분이 이상했다. 내가 초등 학부모가 되는구나, 우리 현이가 이렇게 컸구나!

여행 후, 첫째 현이의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고 뭉클했다. ⓒ박혜정여행 후, 첫째 현이의 초등학교 취학통지서를 받고 뭉클했다. ⓒ박혜정

우리 첫째 현이는 나를 좀 더 많이 닮아서 서로 많이 부딪히기도 했다. 부족한 게 우리 서로 너무 많지만 하나, 둘 함께 맞추고 채워 나가 보자고 마음이 들었다. 많이 아프기도 하고 많이 울기도 하겠지만, 분명히 나도, 현혜도 성숙하고 단단해지리라 믿는다.

37일 간의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가족 여행을 통해 우리 현혜는 더욱 성장하고 성숙한 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내가 성숙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된 게 느껴졌다.


벌써 6년 전의 기록이다. 입학 통지서가 나왔던 첫째 현이는 벌써 올해 6학년이 된다.

우리 가족은 이 여행 이후에도 계속 여행을 했고, 여행을 하며 더욱 끈끈하고 위해 주는 가족애를 가지게 되었다. 여행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한 아이들, 그로 인해 더 성장하는 휠체어 엄마와의 이야기는 계속 될 것이다.

2023년 계묘년(癸卯年) 한해도 '겁대상실 휠챠녀 현혜의 우당탕탕 이야기' 많은 기대 부탁드립니다! 더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들 보내세요~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