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ENA 방송에서 재방을 하기 시작했다. 넷플렉스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독차지한 이 드라마에서 ‘이상한’을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는지 궁금했다. 자동번역기로 번역해 보면 ‘이상한’을 ‘weird’란 단어로 번역하는데, 이는 ‘이상하다’, ‘기묘하다’, ‘불가사의하다’, ‘무시무시하다’,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공식 번역물에서는 ‘Extraordinary’란 단어로 번역하는데 이는 ‘대단한’, ‘비범한’, ‘비상한’ 등의 뜻이 된다.
‘이상한’이란 단어 하나에도 고정관념이 들어 있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무서운 사람이 되기도 하고, 비상한 사람이 되기도 하며,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특이한 사람이 되기도 하고, 대단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첫 회 방영에서부터 탄탄한 구조로 관심을 끌었다. 자폐성 스펙트럼 장애인 우영우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보던 법전을 모두 외웠고 고래에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남의 말을 따라 하는 반향어를 한다거나, 여러 가지 자폐성 스펙트럼의 특징을 소유하고 있으면서 서번트(천재성)의 특징을 보인다. 이는 자칫하면 일반적인 장애인의 특징과는 다르다거나 장애 우상주의에 사로잡힌 작품으로 취급하기 쉽다. 하지만 소통의 제한이나 애착증 등 자폐 스펙트럼 장애인의 흉내 내기로 가볍게 보기에는 너무 진지하고 섬세하고 치밀함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한바다(우영우가 근무하는 법무법인)에서 활동하는 우영우, 고래가 바다에 사는 것과 같다. 경쟁사인 태산은 높고 빼어난 산으로 자본주의나 능력주의, 경쟁 사회를 의미하지만, 한바다는 포용을 의미한다.
바로 읽어도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는 회문(Palindrome)을 이름으로 선택하고, 기러기 토마토 스위스 인도인 별똥별과 같은 회문을 이름을 소개할 때 같이 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자신을 소개할 때 ‘우 투터 영 투더 우’란 랩으로 인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들만의 문화코드를 보여준다. 고래의 세계와 우영우의 세계, 장애인의 세계 등 각자 다양한 문화코드가 존재한다. 그리고 한바다로 출근하기 위해 내리는 역이 바로 회문으로 이루어진 역삼역이다. 우영우가 가장 적응하기 어려워했던 시설물이 바로 회전문이다. 회문은 단순하여 외우거나 이해하기 쉽고, 회전문은 복잡하다. 바로치기와 둘러치기의 차이다.
이런 구조적 설정의 탄탄함으로 1회분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흡입력으로 시청자들에게 다가갈 것이 바로 예상되는 작품이 바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우영우는 하필이면 고래에 깊이 빠져 있으며, 고래를 너무나 좋아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러 사람들과 이 문제에 대해 논의해 보니 이유가 열 가지나 되었다. 첫째, 어릴 적에 고래모형(인형)을 가지고 놀게 했는데, 그 고래의 이야기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애착증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고래에 관심을 가지고, 고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상대의 상황은 아랑곳하지 않고 고래의 전문적 지식을 쏟아낸다.
둘째, 고래는 자유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넓은 바다를 마음대로 헤엄칠 수 있고, 고래를 잡아먹는 포식자도 없으니 바다에서는 자유로운 존재다. 하지만 바다에 살려면 어류여야 가장 환경에 적응하기 편한 것인데, 고래는 포유류다. 알을 낳는 것이 아니다. 실재 드라마에서 거대 고래가 알을 낳으면 몸무게가 얼마나 줄어드느냐고 물으면서 고래는 알을 낳지 않기 때문에 몸무게가 줄어드는 모든 숫자의 대답은 틀린 답이라고 말한다.
마치 올챙이가 따듯한 물에서 알을 낳느냐, 찬물에서 알을 낳느냐고 물으면 따뜻한 것과 찬 것의 구분에 집중한 나머지 올챙이는 알을 낳지 못함을 망각하는 넌센스 문제와 같다. 서산대사가 동쪽으로 말을 달리면 머리카락이 어느 방향으로 휘날리느냐는 문제(머리카락 없음)나 말이 동쪽을 보고 있으면 꼬리 방향은 어느 쪽이냐는 문제, 컵의 손잡이는 컵의 어느 방향에 있느냐는 문제와 유사하다. 말의 꼬리는 서쪽이 아니라 땅쪽을 향하고 있으며, 컵의 손잡이는 오른쪽이나 왼쪽이 아닌 바깥쪽이 정답이다.
셋째, 고래는 보호를 상징한다. 알을 낳아서 스스로 알을 깨는 어류와는 달리 고래는 포유류라서 새끼를 품고 양육한다. 고래는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를 이루며 서로 보호하는 의무를 가지고 있다. 이제는 멸종 위기가 되어 인간이 고래를 보호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장애인도 비정상으로 세상에서 없어져야 하는 존재로 취급되기도 하고, 장애예방 운동을 하여 최소화해야 하는 존재였으나 이제는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서의 가치를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다. 사회의 보호막이 필요하지만 개인적 보호나 배려는 의존적 존재로 취급해 버릴 수 있다.
넷째, 한바다에는 많은 변호사들이 있다. 다른 변호사들이 헤엄치는 물고기라면 우영우는 고래처럼 뛰어오르는 발상을 한다. 치매 걸린 포악한 남편을 다리미로 얼굴을 가격해 살인자가 된 할머니를 단순하게 불쌍히 여겨 집행유예를 받도록 노력하려는 접근법에서, 우영우는 죄가 인정되면 처벌의 강도와 무관하게 상속권이 박탈됨을 인식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노후를 보내게 될 것이라 말한다. 계속되는 사건들에서도 기발한 발상을 내놓는다.
다섯째, 고래고래 소리지르기란 말이 있다. 어원은 고래와 무관하다. ‘골목이 떠나가도록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거나 고함을 지르다’란 말이다. 하지만 고래의 소리가 클 것이란 생각과 ‘큰 소리치다’의 고래 소리가 알 수 없는 코드로 이루어진 음파란 사실이다. 이는 고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신호이며, 자폐 스펙트럼의 언어다. 그리고 늘 긍정적이다. 모든 상황을 걱정하지 않고 저돌적이다. 어릴 적 트라우마로 인해 귀를 막고 평소에 기죽어 지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변호인석 책상을 탁 치며 일어나는 고래다.
여섯째, 우영우는 엄마가 깊이깊이 숨겨놓은 아이다. 대학 시절 혼전임신을 하여 아이를 아빠에게 맡기고 떠난다. 후에 경쟁 법무법인 대표가 되어 법무부 장관 후보에 오른다. 아빠는 우영우 양육을 위해 법조인의 길을 포기한다. 넓은 바다에 숨겨진 아이가 우영우이고 고래도 같은 입장이라는 것이다.
일곱째, 소설 모비딕(백경)에서 흰고래는 사실은 흰색이 아니라 회색이라고 드라마 속에서 우영우가 말한다. 즉 고정관념과 사실이 다르다는 것이다. 고래는 인간이 가진 고정관념으로 인해 사실이 왜곡되거나 고정관념으로 인해 차별이나 억압이 이루어지는 이차적 현상이 나타남을 상징적으로 고래에 비유한 것이다.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과 법적 다툼에서 상투적 변론방식에 젖어 있는 고정관념들, 죄인을 바라보는 고정관념에서 진실이 묻혀버릴 뻔한 사건들을 보여주면서 고정관념이 얼마나 불합리적인지를 보여준다.
여덟째, 고래를 생각하면 해결책이 떠오른다. 고래는 새로운 발상을 하게 하는 아이디어의 매개체다. 너무 집중하고 머리를 쥐어짜도 나오지 않는 해답이 고래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알이 아니라는 것에서 근본적인 잘못된 출발선을 찾게 하고, 물 위로 튀어 오르는 것에서 숨통을 열어준다.
아홉째, 고래는 장애 동료를 끝까지 돌봐주는 동물이다. 동료가 그물에 걸리면 동료들은 그물을 이빨로 물어뜯으며 동료애를 보인다. 동물학자이자 곤충학자이기도 하고 통섭학자(학제간 학문)로서 인문학을 연구하고 있는 최재천 교수는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란 책에서 장애인날이라고 법석을 떨 것이 아니라 평소 포용하고 더불어 살아감을 강조하며, 허파로 숨을 쉬어야 하는 고래가 부상을 당하면 물 위로 올라오지 못해 죽게 되는데, 동료가 숨을 쉬도록 밀어 올리는 동료애가 고래에게 있다고 하였다.
열번째, 고래는 허파로 숨을 쉬는 동물이다. 그러니 빨리 숨을 쉬기 위해 물 위로 뛰어오른다. 숨을 쉬려고 서서히 물 위로 올라온다면 뛰어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 물 위로 올라오려고 힘을 쓰면 뛰어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자폐 스펙트럼이 소통을 해야 하는데, 늘 소통하는 것이 아니라 숨을 쉬어야 하는 상황처럼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방식으로 소통하며 그것으로 인류에게 기여하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자기들만의 음파를 이용하여 소통하는 고래와 자폐 스펙트럼, 인간에게 자연파괴의 경고를 죽음을 통해 알려주는 고래, 고래는 참으로 사랑과 경고, 고정관념, 포용, 감춰짐, 새로운 발상의 전환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고래와 자폐 스펙트럼을 스펙트럼으로 해석하기에 가장 적합한 것이 고래였다는 사실을 알게 한 드라마의 설득력에 우리는 감정과 이성을 모두 드라마 속으로 내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상한 것의 해석이 정반대의 해석으로 가능한 것처럼 우리는 세상을 서로 정반대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장애인의 정상화가 장애인을 정상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을 포용하여 살아가는 사회가 정상임을 알게 한 드라마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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