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장애인을 위한 언론, 이른바 ‘장애인 신문’들을 읽으면서 마음이 지쳐갔다. 원래 신문이라는 매체의 특성이 그러하듯, 장애인 신문 역시 기분 좋은 소식보다는 대개 걱정스럽고 마음이 아프고 깊은 한숨을 자아내는 소식들로 가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독일과 같은 유럽 선진국의 현황과 비교하며 국내 장애인복지 현실을 끊임없이 비판하는 소식들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러한 소식들을 계속 읽어 나가며 마음이 잔뜩 지쳐 있던 시점, 우연히 에이블뉴스의 칼럼니스트 모집 공고를 발견했다. 그 순간, 에이블뉴스의 한 공간을 빌려서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고, 독자에게 신선한 감동과 생각거리를 제공하며, 무엇보다도 독자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글을 한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독일에서 수년간 거주하고 공부하며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독일이라는 나라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연히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대단한 복지 선진국이 아니라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과 간절함이 통했던 것일까, 운 좋게도 나는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로 당첨되었고, 2021년 1월 “민세리의 독한여자 이야기” 칼럼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난 2년간 에이블뉴스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일부 독자와 이메일로 소통하는 기회가 있었다. 다양한 연령과 성별의 장애인, 비장애인 독자들이 내게 이메일을 보냈는데, 그중에서 어느 여성 독자와는 현재 매우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 그녀의 신원을 보장하기 위해 여기에서는 그녀를 ‘소희’라고 하겠다.
2021년 겨울, 소희는 “올해 초 에이블뉴스에 올려주신 칼럼을 읽고 독일 장애인복지에 대해 조금 더 여쭤볼 수 있을까 싶어 실례를 무릅쓰고 연락드립니다”라고 시작하는 장문의 이메일을 내게 보냈다.
척수손상으로 휠체어를 타며 독립적으로 직장생활과 일상생활을 하는 소희는 석사학위를 위해 2022년에 베를린으로 올 예정이라고 했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땅으로, 홀로 독일로 올 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희는 독일의 사회보장제도 및 복지정책이 외국 유학생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지 궁금하다며 내게 답변을 요청했다.
순간 내 눈앞이 깜깜해졌다. 지금까지 독일에 15년 가까이 살면서 다양한 한국 유학생의 독일 정착과정을 도왔지만, 휠체어 사용자를 동행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소희가 막연하게 상상하거나 기대하는 독일 생활과 실제 현실 간의 괴리가 클 거란 사실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소희의 메일이 내 마음을 강하게 움직였다. 일면 일식도 없는 여성의 베를린 정착과정을 동행해야겠다는 마음이 불끈 솟아났다. 나는 소희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2008년, 달랑 몇 백만원만 손에 쥔 채 아무런 연고가 없는 독일 땅에 홀로 도착해 지금까지 나름 성공적으로 정착해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어쩌면 소희에게 희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 봄에 소희는 베를린에 도착했다. 배리어프리 주거시설을 찾는 일부터 보험 체결, 각종 관공서 방문 등 모든 일이 술술 풀리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는 없었다. 처음에는 눈앞이 깜깜할 정도로 막막했지만, 소희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와 적극성, 친절함, 세심함 그리고 나의 독일 생활 경험 및 노하우가 어우러져 우리는 크고 작은 과정을 함께 헤쳐나갔다. 그렇게 소희는 현재 베를린에 성공적으로 정착하여 학업에 매진하며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당당하게 유학 생활을 이어 나가고 있다.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라는 어느 책 제목처럼, 나는 소희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은 마음에 소희의 베를린 정착과정을 동행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지금 와서 되돌아보니 오히려 소희가 나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었다. 언니인 내가 오히려 동생 소희로부터 위로와 응원을 받을 때가 많고, 때로는 물심양면으로 챙김을 받는 수준까지 와버렸다. 소희를 만날 때마다 우리의 소중한 인연이 시작될 수 있었던 에이블뉴스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의 부족한 필력에도 불구하고 “민세리의 독한여자 이야기” 코너를 통해 독자들과 소통하고, 독일의 장애인 이야기를 다양하게 펼칠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준 “에이블뉴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지난 2년간 나의 칼럼을 읽고 공감하고 응원해 준 독자들에게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에이블뉴스의 독자들이야 말로 나에게 있어 희망의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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