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의 모차르트홀에서 은성호의 제4회 콘서트가 열렸다. 이 행사는 예술인 은성호와 어머니 손민서씨가 주최하고, 드림위드앙상블의 협력과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의 후원으로 마련됐다.
성호(38세) 씨는 피아니스트이자 클라리네티스트다. 1991년, 초등학교 2학년 때 자폐성 장애로 의사소통도 어렵고, 일상생활도 어려웠던 그에게서 음악적 재능을 발견한 것은 담임교사였다. 동요를 듣고 건반을 두드리는 것을 보고 절대 음감이 있음을 알게 된 선생님은 어머니에게 피아노 학원에 보낼 것을 권했다. 그 후 피아노 학원에서의 연습과 중학교 때 한국선진학교 합주단 이명은 선생님 지도로 성호는 마림마 연주를 하며 공연 활동을 통해 자신의 음악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학교 전공과 졸업 후 2004년부터 피아노 솔로 활동을 계속해 왔으나 오케스트라 안에서 앙상블 활동을 통해 단원들과 소통의 폭을 넓혀 주려는 의도에서 클라리넷을 가르치게 되었다고 한다. 2007년 오디션을 받아 하트하트 윈드오케스트라의 클라라넷 단원으로 활동하였고, 2015년까지 심포니 클라리넷 수석으로 활동하며 더욱 많은 음악적 성장과 발전을 가져오게 되었다.
하지만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에서의 음악 활동은 프로그램 중심이라 8명의 클라리넷 단원 어머니들은 자녀들에게 전문 프로 연주자의 길을 열어주기 위해 2015년 독립하여 국내 최초 발달장애인 직업 연주단체인 사회적협동조합 ‘드림위드앙상블’을 창립하게 되었다. 이때 하트하트 오케스트라에서 클라리넷 지도 담당이었던 고대인 선생님도 함께 나와 앙상블 단원들을 더욱 열정적으로 지도해주었다.
성호 씨는 현재 드림위드앙상블 단원들 중 맏형으로서 연주 활동에 힘쓰고 있으며, 수원시 힐링문화단 연주자로서도 10년간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또한 음악적 전문성을 더욱 높이기 위해 백석예술대학 관현학과와 백석대학 콘서바토리 과정을 졸업했다.
2012년 백석대학교에서 만난 곽준영 교수님은 이날 콘서트의 사회를 맡아 자신의 이종사촌이 뇌성마비 장애인이라 장애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갖고 있었고, 성호 씨를 통해 장애인이 음악 안에서 자유를 누림과 가르침에 반응해 발전해 가는 모습에 큰 보람을 가지며, 그 변화의 발견은 기적의 체험이었다고 고백하였다.
특히 성호 씨는 2017년 8월 SBS 스페셜 ‘서번트 성호를 부탁해’라는 다큐 프로그램에서 음악적 재능을 가진 장애인 형만 돌보는 엄마와 비장애 동생과의 갈등을 음악 세계를 통해 풀어가는 스토리로 화제가 되었고, 이러한 숱한 고난을 겪으면서도 음악적 도전을 계속해 온 엄마 ‘민서’ 씨와 성호 씨의 끈질긴 삶의 스토리를 10여년 간 영상으로 담아온 정관조 감독님은 다큐영화 [녹턴]을 제작하여 올해 8월 개봉하였다.
이 다큐영화는 2020년 모스크바 영화제에서 다큐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한 바 있다. 이 영화에서 엄마의 헌신이 성호 씨의 동생 건기에게는 무모해 보여 늘 불만이었지만, 러시아의 미하일로프스키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위한 여정에서 엄마를 대신하여 쌍트페테르부르크까지 동행하는 과정에서 형이 가진 음악적 빛을 발견하고 엄마에게 냉소적이던 마음을 되돌려 조력자로서 거듭나는 동생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성호 씨는 2017년 7월 KT체임버홀에서 피아노와 클라리넷 연주로 첫 개인 콘서트를 가진 바 있고, 제2회 연주는 러시아 쌍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하일로프스키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며, 3회 콘서트는 2021년 7월 서울시향 수석 한지연 바이올리니스트와 ‘지나온 길에 핀 꽃을 잊지 않으리’라는 주제로 듀오 콘서트를 열어 찬사를 받기도 했는데 이 세 번의 콘서트를 기획하고 진행하는 일에 정관조 감독님의 수고와 동생 건기씨의 숨은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4회 콘서트에서도 예술인 성호 씨는 음악의 독창성을 여지없이 발휘하였다. 쇼팽의 녹턴(야상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조용하고 명상적인 분위기에서 나온 잔잔한 서정성과 섬세함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줄 뿐만 아니라 연주자 본인 스스로도 삶의 위로와 평안함을 누리는 듯해 보였다. 이어서 바흐의 시칠리아노가 연주되었고, 그 다음에 클라리넷 독주곡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이어졌는데 이 곡은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도전하기 힘든 어려운 노래이다.
그런데도 성호 씨가 오히려 이 곡을 즐기며 연주하는 모습이 감동인데 어쩌면 그것은 10대 학창 시절에 불가능해 보였던 하프마라톤을 땀범벅이 되면서도 끝까지 완주하며 느꼈던 그 성취감을 어려운 연주곡을 통해 회상하는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성호 씨의 연주는 어떤 역경을 견디면서 누리는 자유와 우아함이 돋보이는 것 같다. 그 자유로움이 다른 한편으로 당당함과 풍부함과 행복감마저 가져다 준다.
성호 씨는 소통에 있어서 자폐성 장애로 인하여 어려움이 있지만, 음악 연주에서는 완전히 장애가 장애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음악소통에서의 자유가 관객들에게 자유를 느끼게 한다. 그 자유가 감동을 가져다준다. 피아노와 클라리넷의 선율에서 자유를 만끽할 수 있도록 자유자재로 기량을 보여주며, 자유 속에서의 안식처를 제공한다.
영화 ‘녹턴’의 한 장면. ©서인환드림위드앙상블에서 활동했던 유승엽, 민경호, 김경주 등과 함께 한 벨루스 클라리넷 앙상블 연주에서도 힘찬 생명감과 활력을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내면 세계를 하나의 하모니로 아름답게 표현한 선율은 눈길과 손길, 감정들이 밀려오면서 관객들의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때로는 미끄러지듯이, 때로는 두드리듯이. 성호 씨는 음악 안에서 대화의 장벽 없이 자유를 마음껏 누리고 있었기에 음악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도 그 자유를 함께 느끼는 기쁨이 있었다. 마치 사람들 속에서 서로 조화를 통해 자유를 누리며 상호존중에서 상호 즐거움의 자유의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장애인문화예술인의 지원을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지만, 법은 그 지원의 근거를 마련했을 뿐, 실질적인 수준의 이행을 담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것은 행정을 하는 사람의 몫이다. 자유라는 새로운 세계의 음악은 우리 모두의 자산인데, 그 자산을 보유한 성호 씨가 문화예술인으로 우리 곁에 영원히 있게 하는 수준의 지원이 제도화되어야 할 것이다.
음악 세계에서의 자유가 일상생활에서도 실현되기를 바란다. 서번트니까 외롭겠지, 서번트니까 할수 있는 것이지 못하는 보통의 장애인과는 다른 별종이 아니냐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적도의 귀하고 고고한 꽃도 수분과 영양이 없이는 피지 못하는 생명이다.
성호 씨의 음악에서의 자유는 관객에게 자유를 만끽하게 하고, 생명의 숨결을 나누게 한다. 이러한 성호 씨의 음악적 도전이 계속되기를 응원하며 더 행복하고 멋진 음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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