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의 어느 날, 인터넷 커뮤니티에 나의 어렸을 적 이야기를 올렸다. 그랬더니 그건 자폐 특성 같다는 댓글을 받았다. 내 머릿속에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의문점을 가지고 자폐에 대한 글을 보거나 AQ(Autism Spectrum Quotient, 간이 자폐 검사)를 해보기도 했다. AQ에서 40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았을 때도 내가 정말로 자폐인인지에 대해 의구심이 들었다. 확신할 수 없었다. 정신과에서는 나에게 자폐 진단을 내려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종종 주치의가 자폐를 언급하기도 했으나 “너는 자폐는 아니다” 정도의 언급으로 지나갔다.

신경다양성 단체 ‘세바다’ 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 그러한 의문은 급속도로 커져갔다. 나는 조현병 스펙트럼(범주성) 장애를 진단받았지만 나의 모습은 다른 자폐인들과 더 비슷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모습들이 떠올랐다.

4살 때 부모와 애착 반응이 없었던 것, 유아기부터 중학생 때까지 타인과 눈을 마주치지 못한 것, 위생에 대한 불문율을 익히지 못해 집단 따돌림을 당한 것, 또래들이 관심을 갖지 않는 전자기기에 몰입한 것, 글씨가 악필이었던 것,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질문을 너무 많이 했던 것.

성인이 되고 나서는 동기와의 스킨십을 극도로 어색해했던 것, 선배들에게 먼저 인사하지 않았던 것, 눈치 없는 말을 했던 것, 사람들에게 먼저 관심 가지고 연락하는 법이 없던 것, 다른 사람을 빤히 쳐다보기만 하거나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던 것, 무심코 했던 수많은 혼잣말과 손동작, TV나 전단지, 간판의 단어들을 소리 내어 읽던 모습들, 별 문제를 느끼지 못했던 틱과 유사한 동작들, 유달리 민감했던 후각과 미각, 청각.

혹시 내가 정말로 자폐였던 것은 아닐까? 나는 결국 자폐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허나 처음부터 난관을 겪게 되었다.

내가 사는 시에 있는 정신과 의원에 자폐 초진을 보는지 물어보았다. 검사를 받고 싶다고 말하니 3차 병원에서 받아야 한다는 답변이 들려왔다.

그러면 3차 병원을 가야 되지 않는가? 그러나 불행히도 나는 의료급여 수급자였다. 의료급여 수급자는 1차(혹은 의원) 병원, 2차 병원, 3차 병원을 순서대로 가야 한다. 1차 병원에서 의사에게 요양급여의뢰서를 받으면 2차 병원에 가서 제출하고 의뢰서를 다시 받는다. 그리고 그걸 다시 3차 병원에 내고 진료받아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진료비를 전액 부담해야 한다.

내가 요양급여의뢰서를 발급받으려면 1차 병원과 2차 병원 모두에서 내가 자폐로 의심된다는 소견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나는 성인 여성이었고 겉으로 보기에 티가 많이 나지 않았다. 사회적, 직업적으로도 잘 활동하고 있었다. 이런 나를 어떤 의사가 자폐로 의심할까?

게다가 자폐 검사로 유명한 병원들은 죄다 인기 있는 대학병원들이었고, 예약에만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곳들이었다. 요양급여의뢰서의 유효기간은 단 일주일. 수 계산에 어려움이 있는 나에게는 각 병원의 진료 예약을 어떻게 잡을지 난감했다.

이러한 고민을 직장 동료분께 솔직하게 털어놓으니 자폐 검사를 꼭 받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자폐 검사를 받을 수 있게 도와주셨다. 정신과 의사에게 나의 특성을 설명하니 종합심리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의뢰해주셨다.

종합심리검사에서 지능검사와 함께 다양한 설문지를 했다. 임상심리사와 면담도 했는데, 자폐 특성에 초점을 맞춘 질문들이 많았다.

심리검사를 받고 나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인지 한 달 동안 고민했다. 자폐가 아니라는 소견이 나오지는 않을지 걱정했다. 그렇다고 해서 자폐 진단을 받으면 정신장애인 정체성이 부정될까봐 두려웠다. 조현병 스펙트럼 장애와 자폐를 모두 진단받을 가능성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어느 쪽이든 불안하고 두려웠다.

시간이 흘러 정신과 예약일이 다가왔다. 정신과 의사와 함께 나의 심리평가보고서를 확인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기존 진단명인 조현형 성격장애와 함께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적혀있었다. 의사에게 그 진단이 적절한지 물어봤더니 맞는 것 같다고 하셨다.

나의 심리평가보고서에 적힌 진단. 위부터 순서대로 조현형 성격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우울증 의심이다. ©조미정나의 심리평가보고서에 적힌 진단. 위부터 순서대로 조현형 성격장애, 자폐 스펙트럼 장애, 우울증 의심이다. ©조미정

그리고 나는 F840(자폐성 장애) 코드를 받게 되었다. 나는 자폐인이 맞기는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장애등록 가능성은 별로 없었다. 의사에게 장애등록에 대해 물어보니 장애진단서를 발급받으려면 전문적인 검사를 몇 가지 더 해야 하고, 나는 인지 능력이 좋기 때문에 장애인 판정이 나올 가능성이 낮다고 하셨다.

어렵게 자폐 진단을 받았지만 기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자폐 진단을 받은 게 너무나도 믿기지 않았고 비현실처럼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자폐인 정체성이 어색했다. 정신장애인 정체성과 마찬가지로 자폐인 정체성도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2부에서 계속>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