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각모형.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순천만 국가정원 프랑스정원과 순천 호수정원, 보물 화서문, 화성 창룡문, 화성 장안문, 마이산 탑사. ©서인환촉각모형. 사진 좌측부터 시계방향으로 순천만 국가정원 프랑스정원과 순천 호수정원, 보물 화서문, 화성 창룡문, 화성 장안문, 마이산 탑사. ©서인환

문구점에서 자동차 모형 장난감을 사면 몇 천원이면 살 수 있다. 그런데 자동차 모형을 장난감이기는 하지만, 좀 더 전문화된 레고 장난감으로 사려면 그 10배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다양한 실제의 자동차를 닮은 장난감은 수집의 가치도 있고, 조립하는 것으로 더욱 흥미롭게 가지고 놀 수도 있으며, 자동차의 구조를 이해하는 지식 습득이나 학습, 지능 발달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자동차 회사에서 모형을 신차 개발 기념으로 한정판으로 모형을 만든 것을 소장하려면 다시 비용을 그 10배에서 100배까지 지불해야 한다. 물론 훨씬 가치가 있을 것이다.

최근 열린 관광이라 하여 장애인을 위한 관광지를 지정하면서 촉각모형과 점자안내책자를 구비하도록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은 관광을 가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몸으로 체감할 모형도 없다. 그렇다고 모형을 장난감처럼 대충 만든다면 그 문화유적물에 대한 올바른 대접이 아닐 것이고, 시각장애인을 낮추어 대하는 것이 될 수도 있다.

경기도 화성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여러 가지 촉각모형이 전시(보물 화서문, 화성 창룡문, 화성 장안문) 되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제작사를 방문해 궁금증을 풀어보기로 했다. 알고 보니 화성만이 아니라 순천만 국가정원에도 호수공원과 프랑스정원에 촉각모형이 설치되어 있고, 마이산 탑사에도 설치되어 있었다.

촉각모형은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일까? 관광 가이드가 큰 건축물을 이모저모 설명을 할 때 상세하게 설명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모형 앞에서 건축물의 특징을 설명하면 매우 정확하게 모형과 비교하면서 전체적이거나 세부적인 설명을 할 수 있다.

많은 관광 인원이 이동을 해야 하는 경우 설명을 위해 모였다 흩어졌다 하는 경우에는 누군가는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여서 모형 앞에서 설명을 듣고 관광을 하면 아주 편리할 것이다. 특히 걷기 힘든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설명에도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더구나 직접 만져보면서 설명을 들으니 실감도 배가 될 것이다. 큰 건물을 한 바퀴 둘러봐도 전체 면을 비교하면서 모양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모형은 전체를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엑스알텍(XR)사는 입체(3D) 프린팅에 독보적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전문 회사다. 회사 대표는 영화감독 출신으로 명함에도 사장이 아닌 감독으로 적혀 있었다. 황창선 대표는 고려직업전문학교 교수로도 일하고 있다. 메타버스 관련 국가기관이나 단체나 모임에서 활동을 하고 있으며 동방신기, 호세카레라스, 뮤지컬 건달과 아가씨, 천사들의 합창 등의 제작을 하기도 하고, 웹툰이나 영화 감독 활동도 하고 있었다.

엑스알텍사는 바이오와 미디어 전문 회사다. 디지털 프로그램이 약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식약청의 허가를 통과해야 하는데, 임상실험을 통한 효과성과 부작용에 대한 검증을 받아야 한다. 현재 엑스알텍사는 치매치료 디지털치료제를 개발하여 임상실험 중에 있다. 본사와 연구소, 공장을 보유하고 있는데 나는 연구소를 방문했다.

NFT 기반 메타버스 OTT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으며, 메타버스 화성의 VR 제작과 인각사(일연이 삼국유사를 집필한 장소) 디지털 복원, 예천 용궁역 테마파크 실감 콘텐츠 존 구성, 증감 현실 동화책, 농협 핀테크형 메타버스 플랫폼 개발, 경북 문화재단 AR 교육 게임 플랫폼 개발, 한식진흥원 3D AR 콘텐츠 구축, 해오름 국립극장 VR 기록물 제작, 떠나는 폼나는 360도 VR 여행 콘텐츠 제작, 걸그룹 스텔라 VR 뮤직비디오 ‘찔러’ 제작, 쇼핑센터와 여러 매장의 메타버스 제작 등 사업 실적은 너무나 대단하여 일일이 헤아릴 수가 없었다. 메타휴먼 및 인공지능 쳇봇 기술도 보유하고 있었다.

눈으로만 보던 역사를 이제는 만질 수도 있고 느낄 수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촉각모형은 시각장애인만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직접 만지고 느낄 수 있는 모형을 말한다. 여기에는 조형적 아름다움이 필수이다.

촉각모형은 드론을 이용한 입체 촬영을 토대로 설계도면을 복원한다. 이미 있는 설계도면은 대부분 역사 현장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복원해 둔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오류투성이다. 실제로 오류 측정 기술을 이용하여 문화재청이 보관하고 있던 도면에서 화성의 복원 설계도면의 오류를 수백 건이나 찾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문화재(국가문화자산)의 촉각모형 제작 과정에서 설계도면이 정확하게 복원되는 추가적 이점이 있다. 이 도면은 후대에 매우 중요한 자산이 될 것이다.

다음으로 이 도면을 몇만 분의 1로 축소하여 입체프린트를 한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입체 프린트기는 대형 모형을 프린트할 수 있는 기기가 없고 50센티미터짜리도 국내 두 대밖에 없다. 그래서 다시 조각 설계를 하여 여러 조작으로 나누어 제작을 한 다음 이를 다시 조합하여 모형의 완성품을 만든다. 재료는 알루미늄 금속물로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런 제작 과정은 다른 기법으로 제작하는 것보다 약 4배 이상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촉각모형은 심미성도 뛰어나고, 안전성도 담보되어 있으면서 석조물의 질감을 그대로 살릴 수 있다. 시각장애인을 위해 점자설명판을 OR코드를 이용하여 추가로 제작하였으며, 촉각모형에 대한 상세한 오디오 설명을 음성유도기처럼 버튼을 달아 추가할 수 있도록 했다.

인천 월미도 촉지도와 인천 연안부도두 촉지도, 인천 하나개 해수욕장 촉지도를 보니 이것은 편의시설 수준의 촉지도를 넘어 예술작품으로 느껴졌다. 한국의 역사 속의 고인돌이 다시 살아난 것 같았다.

나는 왜 시각장애인을 위한 촉각모형을 개발하게 되었는지 묻지 않았다. 시각장애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유니버설이라고 답할 것이 뻔하다. 그래서 어쩌다가 이런 모형을 만들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촉각모형을 하게 된 동기를 황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촉각모형이라는 것을 접하게 된 건 2021년 말이었습니다. 수원시 관광진흥과로부터 수원화성을 VR로 홍보영상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제작회의를 하던 중이었는데 그때 수원시 화성의 장안문과 창룡문, 화서문을 알루미늄 촉각모형으로 만들어 달라는 또 다른 제안을 해 온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정말 쉽게 생각했습니다. 문화재청에 있는 설계도를 기반으로 3D모델링을 하고 그 모델링을 기반으로 3D프린터로 제작하면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당연히 시각장애인들이 문화재를 직접 만지고 형태를 알아갈 수 있다는 공익적 목표도 있었기에 돈을 떠나서 충분히 명분이 있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일단 문화재청엔 설계도가 존재하지 않았고 그나마 존재하는 ‘화서문’ 설계도 역시 오류투성이라 모델링이 불가능한 상황이라 부득이하게 역설계를 통한 설계도를 다시 만들어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문화재 설계도는 일반 설계회사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각 지자체에 등록된 문화재 전문 설계업체만 할 수 있는지라 수원시에 등록된 문화재 전문 설계업체를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시간과 비용이었습니다. 장안문, 창룡문, 화서문 등 3개의 수원성을 역설계해야 하는데 성문 하나당 6~8개월의 시간과 1억 7~8천만원의 비용을 요구하는지라 전체예산 1억 3천만원을 가지고는 도저히 설계도부터 제작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침 저희 회사는 가상현실을 하는 회사였으며 포토그래메트리라는 디지털 기반의 3D모델링 기술을 보유하였기에 이를 접목하였고 다행히 기존의 아날로그 측량을 통해 만들 수 있는 설계도보다 더 빠르고(1개월) 정확한 설계도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또 발생되었습니다.

설계된 3D모델링을 통해 3D프린팅 작업을 들어가려고 국내 모든 3D프린팅 업체를 수소문하였으나 일단 메탈프린팅을 하는 업체가 없었고, 그나마 찾은 2개 업체 역시 최대 가능 크기가 50cm가 넘지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프린팅 기간만 80일 이상이 필요했고 알루미늄으로 제작할 경우 작업 후 프린터 청소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더 필요해, 정해진 시간과 예산으로는 더욱더 불가능했기에 정말 힘든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어려움에도 결국 해낸 과정에 대해 나는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다는 공익적 명분도 명분이려니와 국내 최초로 메탈로 만든 대형 촉각모형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저희 전 직원은 연구개발에 매달리기 시작했고 결국 분할 설계기술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통해 시간과 비용을 더욱 줄일 수 있게 되었고, 결국 무난히 납품하게 되었으며, 현재는 촉각모형 그 자체의 조형적 아름다움으로 인해 시각장애인들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에게도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작품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수원 화성의 장안문과 화서문, 창룡문뿐만 아니라 순천만정원의 호수정원, 프랑스정원, 진안군 마이산 돌탑사, 인천의 개항박물관, 일본 옛영사관 등이 제작되어 많은 분들에게 전시되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관광공사의 열린 관광지 사업과 맞물려 계속해서 주문이 증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저희는 우리나라 대형 메탈 촉각모형의 선두주자로서 더욱더 기술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나아가 우리나라의 다양한 문화재를 촉각모형으로 제작하여 전 세계를 돌며 전시회를 기획할 예정에 있습니다.”

그의 포부가 너무나 고마웠다. 앞으로 시각장애인에게도 관광이 더욱 즐겁게 될 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관광에서 결코 소외되지 않을 것이다. 엑스알텍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너무나 뿌듯했고, 마음이 따뜻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한국 문화재를 외국 시각장애인이 만져본다면 감격할 것이다. 한국의 장애인에 대한 배려에 놀랄 것이고, 한국 문화재에 대한 자부심에 놀랄 것이고, 한국 문화에 놀랄 것이다. 편의시설이 우리가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만드는 것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