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달 전, 한 인터넷 신문사에 기사가 하나 올라갔다. 다름 아닌 ‘글을 쓰는 발달장애인 김유리’ 내 인터뷰 기사였다. 지인과의 인터뷰가 기사화된 것이다.
인터뷰어가 돼주신 ○○님은 발달장애인 글쓰기 모임에서 조력자로 만났다. 10회기의 글쓰기 모임이 끝나갈 무렵 ○○님이 나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했다. 글 쓰는 내 이야기가 불특정 다수에게 알려진다고? 살짝 겁이 나기도 했지만 설레었다. 흔히 발달장애인은 지적인 문제로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 ‘글 쓰는 발달장애인’ 이야기를 세상에 널리 알려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님과 나는 글쓰기 모임이 끝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린 시절에서부터 시작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글쓰기와 관련된 내 전부를 나누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나를 드러내 보이는 일이 낯설지는 않았다. 6년 전에도 인터뷰이가 되어 본 경험이 있었으니까.
○○님이 보내주신 최종 원고를 찬찬히 읽어보면서 사람들이 글 쓰는 나를 응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님은 나에게 글을 써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해 주셨다. 글 쓸거리가 좀 늘거라 생각했다. ‘방금 유리님 브런치 보고 왔는데 책을 출판하시려면 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시겠네요. 글쓰기 수업을 들어 보시길요’와 같은 댓글이 달리면 ‘아이고 고맙습니다’라며 넙죽 엎드리리라 다짐했다.
인터뷰 기사가 나간 후 유명 포털 사이트 메인에 노출되었다. 기사 내용은 발행 전에 이미 수십 번도 더 봐서인지 궁금하지 않았다. 내 최대 관심사인 댓글 창부터 열었다. 기대에 부푼 내 예상과는 다른 댓글들이 달렸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한 말로만 듣던 악플이었다.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놀란 가슴 뒤로 하고 차분히 살펴보았다. 단순히 인터뷰 기사가 실린 언론사가 싫어서 공격하는 무차별적 악성댓글이 많았다. 가만 보니 초면인데 반말이 기본이었다. 평소 존댓말만 듣다가 얼굴도 모르는 이에게서 반말을 들으니 기분이 확 상했다.
포털사이트 메인 노출이 길어질 경우 언론사뿐만 아니라 나를 향해서도 비난이 쏟아질 거라는 생각에 지레 겁이 났다. 기사에 실린 내 사진을 보고 ‘정말 애자처럼 생겼네!’와 같은 댓글들이 달리는 상상을 나도 모르게 하게 되었다.
인터뷰 기사를 써 주신 ○○님께 정면으로 촬영한 사진을 내려 달라고 요청드렸다. 기사에 사진이 여러 컷 되었는데 달랑 두 컷만 남았다. 글만 덩그러니 남은 기사를 보니 속상했지만 적어도 인신공격은 받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안심이 되었다.
댓글을 안 보고 싶었지만 사람의 심리라는 게 알 수가 없다. 댓글에 상처받을 것을 알면서도 자꾸 들여다보게 되었다. ‘언젠간 들어가 보게 될 거 자꾸 들어가 봐서 무뎌져 버리자’라고 생각했다. 기사가 나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웬만한 댓글들은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직면하고 무뎌져서 결국엔 잊으려는 노력을 반복하던 중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댓글을 발견하였다. ‘장애는 안타깝지만 그게 특권은 아니란다.’
기사에 장애가 특권이라는 문장 자체도 안 쓰여 있는데? 그리고 내가 안타깝다고? 나는 이 댓글과 마주하자마자 기사를 써 주신 ○○님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냈다. ‘미안합니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기사 노출 안 되게 해 주세요.’
○○님은 언론사에 연락해 해결해 주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인터뷰 기사는 포털사이트 메인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포탈 메인에 내 기사가 뜨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그깟 악플 따위를 못 이긴 내가 한심스러웠다. ‘이 내용 빼 달라’ ‘저 내용은 이렇게 바꿔달라’고 하는 까칠한 인터뷰이이기 때문에 매우 힘들게 기사를 써 주셨을 ○○님에게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단어 하나, 문장 하나를 고를 때도 신중에 신중을 기한다. 글에 특정 계층을 비하하는 표현이 담기지 않았는지, 내 글을 보고 누군가가 상처받진 않을지, 논리에 타당한 내용인지 두루 살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는 걸 알고 놀랐다. 일전에 장애인 육아 관련 기사 인터뷰에 참여하신 아는 언니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포털사이트에 장애인 관련 기사가 뜨면 악플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뭐? 장애인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고?’
장애인은 지하철을 공짜로 탈 수 있어서 좋겠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데 왜 굳이 돈 들여가며 언제 올지 모르는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느냐고 묻는다. 엘리베이터가 전역에 설치되어 있지도 않은데 휠체어 이용자가 지하철이 무료라고 해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을까? 승강장과 지하철의 넓은 간격에 휠체어 바퀴가 자꾸 빠지는데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목숨 걸고 탈까?
장애인만 편한 세상을 만들자는 게 아니다. 장애인에게 편한 세상은 비장애인에게는 더욱 편하다. 길거리에 턱과 계단이 사라지면 휠체어뿐만 아니라 유모차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장애인을 위해 설치된 지하철 엘리베이터를 지금은 누구나 이용하는 것처럼.
내가 원하는 복지는 지하철 무료승차권이 아니다. 장애를 가진 나도 부모님 없이도 지역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적절한 지원을 받는 것 하나면 충분하다. 각자 개개인이 가진 상황에 따라 바람이 다를 것 같다.
수많은 발달장애인 당사자분들이 발달장애인도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며 목소리를 내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나 또한 그들과 함께 ‘글로 싸우는 김유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글을 계속 써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신 악플러님들께 이 지면을 빌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표한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