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장애청년드림팀 시절 영국에 갔을 때 어쨌든 영어를 조금 배워갔기 때문에 그나마 의사소통이 되었고 결국 나중에 주한영국문화원 어학원에 등록해서 영어 공부를 했었습니다. 그랬지만 어쨌든 언어를 이용한 소통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좋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몇몇 발달장애인에게 외국 여행을 준비하라고 하면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될 것입니다. 그나마 외국어 공부를 했던 발달장애인이라면 사정은 좀 낫겠지만, 여행 목적지 국가 언어를 모른다면 큰일이 나는 문제입니다. 제 페이스북 친구는 캅카스의 조지아 출신인데, 그 친구가 페이스북으로 글을 쓰면 저는 십중팔구 사진을 보고 댓글을 다는 현실입니다. 조지아는 키릴 문자도 로마자도 아닌 별도의 글자를 쓰고 있어서 전혀 읽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만 조지아 출신 친구가 한국어를 매우 잘 알아서 한국어로 소통할 수 있으니 다행일 뿐입니다. 그 친구는 한국에 있었을 때 TV에도 출연해서 많은 한국인이 조지아를 러시아와 구분을 못 했는데 남오세티야 전쟁(2008)이 터지고 나서야 전쟁 뉴스 때문인지 많은 한국인이 조지아를 알게 되었다고 한국어로 말했을 정도입니다.

그런 일은 사실 비장애인도 겪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한국 국내에서 한국어로 의사소통하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할 수 있을까요? 지금은 목청껏 말할 수 있어도 갑자기 말을 할 수 없게 되었다면 그때 저는 어떻게 의사소통해야 할까요?

수어를 배우는 방안도 있긴 있습니다만 어쨌든 수어는 구사자나 이해할 수 있는 자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장치를 이용하면 그나마 사정은 나아집니다. AAC, 즉 보완대체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을 활용한다면 상황은 바뀔 것입니다.

지난 10월 말, 저는 서울시장애인의사소통권리증진센터의 행사에 참석하는 형식으로 AAC 시연에 참석했습니다.

일단 AAC에서 놀란 것은 전통적 의미의 AAC인 단어 카탈로그 방식의 소통을 벗어났다는 점입니다. 물론 아직도 남아있기는 하지만 일종의 TTS(Text to Speech), 즉 문자대로 읽어주는 방식의 AAC도 시연 대상에 있었다는 점입니다. 잘 하면, 이러한 기능으로 연설이나 프레젠테이션 같은 것도 시행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해당 기술이 많이 보편화하였으니 더 좋은 기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더 나아가 개인 목소리를 입력하면 AI, 즉 인공지능을 통해 내 목소리를 바탕으로 TTS가 구현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듭니다.

AAC 시연에 참석하여 가정 자동화 기기를 작동시키는 필자 ⓒ장지용AAC 시연에 참석하여 가정 자동화 기기를 작동시키는 필자 ⓒ장지용

그리고 의사소통 보조를 넘어서 이제 가정 자동화 기기에 AAC를 접목한 기술 시연도 봤는데, 이러한 것은 장기적으로 비장애인에게도 유용한 기술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원격 입력 방식을 이용하면 AAC 때문에 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가정 자동화를 통해 생활 환경을 혁신할 계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에 오기 전에 전등을 켜거나, 간단한 장치를 가동하는 등은 구현이 가능할 전망입니다.

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 승하 소식을 AAC로 표현한 실제 ⓒ장지용영국 국왕 엘리자베스 2세 승하 소식을 AAC로 표현한 실제 ⓒ장지용

저는 그 시연 과정에서 한가지 구상도 해봤습니다. 장기적으로 AAC로 ‘이랬다더라’ 정도의 소위 ‘단신 보도’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습니다. 저는 그래서 당시 세계적인 뉴스였던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 승하 소식을 AAC로 만들었는데, 간단히 ‘영국 여왕 죽음’ 이 세 아이콘만으로 완성했었습니다. 제가 실험해 본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단신 정도 수준의 뉴스를 발달장애인 등에게 전달할 때 AAC를 활용할 수 있는 대안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이러한 AAC 시연을 실제로 서울시장애인의사소통권리증진센터 측은 적용 실험까지 시도했다고 관계자에게서 들었는데, 결론은 ‘보완 필요’로 나왔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지만 어쨌든 대규모 보완 작업은 필요할 것입니다.

이러한 AAC를 활용하여 다양한 활용을 해보는 것은 좋을 것입니다. 심지어 가정 자동화에 AAC를 결합하면 비장애인에게도 귀가 준비를 매우 신속하게 할 수 있는 좋은 장점이 있기도 해서 그렇습니다. 비장애인이라고 해도 전등불이 켜져 있는 등 준비된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다른 분야에서도 AAC를 활용하면 매우 좋은 시도가 될 전망입니다. 이미 가능성을 본 외국인 의사소통 과정에서도 사용할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아직 완전한 번역기까지 결합하려면 시간은 더 필요하겠지만, 번역기와 TTS가 결합하고 거기에 AAC를 활용한다면 아마 해외여행 외국어 소통의 어려움은 조금 더 줄어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많은 한국인 해외여행자들이 힘들어하는 문제가 바로 외국어 소통이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제가 구상한 AAC 단신 뉴스도 장기적으로 시도해볼 가치가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들이 언어를 몰라도 이러한 것을 통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번 실험에서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국왕 승하 소식을 전했지만, 다른 뉴스는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가 앞으로의 과제일 것입니다.

AAC의 새로운 발전을 기대합니다. 새로운 발상으로 시도하는 AAC의 확장이 반드시 언어를 통해야만 소통한다는 그런 것이 아닌, 문자라도 쓸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또 안 되는 지점인 농인 등 비발달장애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 의사전달수단으로 발전하는 꿈을 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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