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환영할 만한 법안이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국회의원이 ‘장애인차별금지법(장차법)’에 따라 금지된 차별행위를 시정하기 위해 제기된 소송에서 소송의 공익성 등을 고려해 패소한 당사자의 소송비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것이다.
‘장차법’은 소송 제기 등 법원의 구제 조치로 평등권 보장이라는 공익을 구현하기 위한 법임에도 불구하고, 차별구제청구소송의 소송비용 부담에 관한 특별한 규정이 없다. 소송을 제기한 원고 측이 패소한 경우, ‘민사소송법’에 따라 피고 측이 변호사 비용 등 소송비용을 청구하고 있어 소송을 제기한 장애인에게 큰 부담을 주고 차별구제청구소송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꾸준히 지적되어 온 것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은 전동휠체어 이용 장애인 2명과 서울교통공사를 상대로 ‘지하철단차 차별구제청구 소송’을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등과 함께 2019년 7월 3일 이후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지난 2020년 7월, 1심 패소판결에 이은 항소장 제출 후 2021년 8월 항소심 패소판결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더욱 놀라운 것은 2021년 10월 법원은 최고서를 발송해 1, 2심에서 패소한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소송비용을 부담하도록 소송비용액 확정 결정을 송부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차별 없이 이용해야 마땅할 서울지하철의 환경 개선을 위해 공익소송에 나선 사회적 약자들에게, 서울지하철공사는 1심, 2심 변호사 수임비용 천만 원(10,045,900원)을 부담하라고 통보한 것이다. 서울교통공사는 강제집행을 예고했고. 원고 등은 대법원에 상고하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최종 판결을 낙관하기 어려워 포기했는데 대법원에서도 패하면 상대에게 줘야 할 소송비용이 더 늘어난다는 점도 고려한 것이다.
이번 사례는 현행 패소자부담원칙의 맹점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외 없는 패소자부담원칙 적용은 헌법상 기본권인 재판청구권을 제약한다. 공익소송은 특성상 출발선에서부터 원고에게 불리하다. 두 당사자의 지위가 대등하지 않다. 소송을 제기하는 쪽은 사회적 약자나 시민사회 단체이고, 상대는 국가·공공기관·지방자치단체 또는 대기업 등 힘 있거나 전문성을 갖춘 집단이다.
공익소송은 기존 틀에서 벗어나 ‘새롭게 시도하는 사건’이 많아 패소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으므로 시민사회가 일률적인 패소자부담원칙을 공익소송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하는 이유이다. 공익소송에서 승소해 제도를 개선하면 그 이익은 모든 시민에게 돌아가지만, 패소하면 개인이나 단체가 책임을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현실이다.
이 소송에서 재판부는, 전체 교통약자를 대표하여 지하철 단차로 인한 차별을 구제받기 위한 공익소송을 제기한 점, 항소심에서 재판부 스스로 현재의 서비스와 환경이 휠체어 사용자의 승하차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정당한 편의로 보기 어려워 이러한 상황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차별행위라고 규정했던 점에도 불구하고, 장차법 제4조의 제3항에서 규정한 ‘과도한 부담이나 현저히 곤란한 사정’ 등 정당한 사유가 있는 경우 차별행위로 보지 않을 수 있다고 또다시 면죄부를 주었다.
이것도 모자라 서울교통공사가 변호사 수임비까지 공익소송의 사회적 약자 원고들에게 부담토록 청구하다니. 이 또한 과도한 부담이었단 말인가. 본인의 안전과 생명의 위협을 통해 타인의 차별과 피해까지 살펴 거대 공기업의 책임을 묻는 일.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인가 묻고 싶다.
장차법에서 차별을 논할 때 '정당함'이란 제공자의 면죄부가 아닌, 권리로서의 '서비스 소비자'가 느끼고 판단해야 한다. 나아가 ‘과도한 부담이나 곤란한 사정’이라는 이중 면죄부의 덫에 걸려 빠져나오지 못하는 장애인을 위해 장차법부터 공익 소송비용에 대한 면제 규정 신설이 필요하다.
이번 개정 법률안 발의가 편면적 패소자부담제도(공익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승소하면 피고로부터 소송비용을 받고 원고가 패소해도 소송비용을 피고에게 주지 않아도 되는 방식), 민사소송법 개정 등 다양하게 제기되어 온 개선 논의 활성화의 단초(端初)가 되길 기대한다.
2022년 12월 5일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에이블뉴스는 각 단체 및 기관에서 발표하는 성명과 논평, 기자회견문, 의견서 등을 원문으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게재를 원하시는 곳은 에이블뉴스에 성명, 논평 등의 원문을 이메일(ablenews@ablenews.co.kr)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