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천해누리복지관 자립준비반의 교실. 김지선 씨(뇌병변장애, 36세)가 근무하고 있는 일터다.
김지선 씨는 손을 마음껏 쓰지 못하는 뇌병변장애인이지만 대학까지 모든 학교생활을 비장애인들과 함께해, 장애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사회로 나와 취업의 문을 두드렸다.
2009년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졸업한 그녀는 작가를 꿈꾸며 도전했지만, 사회의 장벽은 높기만 했다. 한해, 두해 길어지는 취업 실패는 자존감 하락으로 이어졌고, 2014년 처음 장애일일자리사업을 알게 돼 2년 동안 동사무소에서 행정보조 등 업무를 담당했다.
한국장애인개발원이 2007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장애인일자리사업은 미취업 장애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으로, 5,000여명으로 시작해 올해에는 2만 7,564명의 장애인이 참여했다. 특히 업사이클링, 다문화 아동청소년 학습·생활지도, 체육활동 보조코치 등 신규 직무를 매년 개발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간 취업실패로 인한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자신에 대한 의심을 2년간의 근무로 떨쳐낸 그녀는 배우라는 꿈을 향해 다시 한 번 도전했고, 2016년부터 약 3년간 장애인극단에서 배우로 활동했다. 하지만 즐거운 마음과 달리 고된 활동으로 인한 건강 악화와 경제적 압박은 그녀를 취업전선으로 다시 발을 들이게 했다.
이후 장애인일자리사업을 통해 2018년에는 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했고, 2019년부터 현재까지 양천해누리복지관에서 일하고 있다.
주 업무는 자립준비반의 발달장애 청년들 기초문해 수업과 담당선생님의 업무 보조다. 특히 발달장애 학생들 각각의 욕망과 특성을 파악하고 지원하며 문제 발생 시 선생님들과 내용을 공유해 자립준비반이 원활히 운영되도록 하는 핵심인물이다.

김지선 씨는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지켜보면서 상황 파악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현재 업무는 나와 잘 맞아서 매우 만족하면서 근무하고 있다”고 밝혔다.
양천해누리복지관에선 2019년부터 근무를 했지만, 처음부터 자립준비반 업무를 담당했던 것은 아니다. 2019년에는 여러 프로그램을 보조했고, 코로나19가 성행했던 2020년에는 1층 안내데스크에서 이용인의 발열체크를 하는 등 업무를 했다.
현재 업무를 담당하게 된 것은 복지관 나주연 팀장 덕분이었다. 2019년에는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2020년에는 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을 취득한 지선 씨를 사회복지와 큰 관련 없는 업무를 담당하게 내버려두기에는 아쉬웠던 것.
나주연 팀장은 “지선 씨는 사람들을 잘 관찰하고 파악하는 사람이다. 발달장애 학생 중 언어적 소통을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는데, 지선 씨는 그분들의 욕구와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어 우리가 함부로 상태를 간과하거나 지레짐작하지 않도록 연결다리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자원봉사자 분들은 무조건 발달장애인을 도와주려는 경향이 있는데 지선 씨는 학생들이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잘 알고 있어, 가능한 일은 스스로 하도록 지원하고 있다”며 “그래서 그 엄격함에 가끔 학생들이 서운해 하기도 하고 먹을 걸 안 나눠 주기도 한다”며 웃었다.
김지선 씨는 “2년 동안 어려운 일도 있었고 시행착오도 겪었다. 하지만 처음에는 밖에 혼자 나가기도 무서워하던 학생들이 지금은 혼자 카페로, 편의점으로 자신들이 사고 싶은 것들을 사러 다니길 좋아하고 자신들의 의사를 확실하게 표현하는 등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면 매우 뿌듯하다. 또 나 자신도 발전할 수 있어서 너무나 귀중한 일자리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지선 씨는 퇴근 후에도 쉴 틈이 없다. 1년마다 사업기간이 끝나는 장애인일자리사업의 특성상 매년 사업을 신청하고 합격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안정적인 일자리를 위해 사회복지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는 것.
그녀는 “2014년 장애인일자리사업을 처음 신청할 때보다 훨씬 인원이 늘어나긴 했지만, 이 사업의 취지가 처음 일을 하는 장애인이 최대한 많이 일자리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보니 몇 년째 사업을 통해 일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합격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이기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사회 진출을 두려워하고 장애로 인한 장벽으로 상처를 가진 사람들에게 “대학 졸업 후 첫 일을 시작하기까지 기간이 길다보니 내가 일을 할 수 있을까 무섭기도 하고 자신을 의심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일을 시작하니 나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은 당연히 두렵지만 시도해보니 가능했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도전해보아라. 한 발짝의 용기가 필요할 뿐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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