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TV ‘국악한마당’에서 야마키타 노리히코가 작곡한 <소라게와 월식>을 해금 양하은, 피아노 김성일이 연주하는 모습이 아주 인상깊었다고 말한다.
해금 연주자 양하은은 1998년, 열 달을 채우지 못하고 6개월 만에 세상 밖으로 나왔기에 인큐베이터 신세를 져야 했다. 몸무게가 겨우 600g인 아기는 나름 살기 위해 투쟁을 했지만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당시 인큐베이터는 산소과다로 실명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갑작스럽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셔서 어머니 혼자 2남 1녀를 키우셨 기에 맏딸인 하은은 항상 어머니의 삶의 무게를 덜어 드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해금을 배울 때도 장애인예술단체의 오디션을 통해서 기회를 얻었고, 대학 4년 내내 장학금으로 학비를 마련하였다. 졸업 후에는 관현맹인전통예술단 정단원으로 월급을 받기 때문에 지금은 어머니께 용돈을 드리고 있다.
해금을 처음 만나고
하은은 자신이 국악을 전공하게 될 줄 몰랐다. 어렸을 때부터 서양음악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다. 어머니께서 클래식 음악을 늘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 살 때 토이 피아노로 동요를 따라 치면서 그녀에게 절대음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듯 하은이 처음 접한 악기는 피아노였다.
한빛맹학교에 입학하자 학교가 음악 분위기였지만 어머니는 딸이 음악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다. 예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은은 가르치는 것도 좋아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해서 음악은 친구처럼 곁에 두고 교사가 되려고 했다.
6학년 때 <동이>라는 TV 드라마를 보면서 해금 소리의 매력을 발견하였다. 그전까지는 해금 소리를 들어도 바이올린 소리에 익숙해져 있어서 좋은 줄 몰랐었는데 <동이> 속 해금 소리가 묘하게 그녀의 마음을 울렸다. 그래서 그때부터 해금을 취미로 시작하였다. 집 앞에 피아노 학원이 있었는데 마침 그곳에 국악 그룹에서 해금을 하는 분이 있어서 해금을 배울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미국으로 어학연수를 갔다. 영어를 좋아했기 때문에 앞으로의 진로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였다. 갈 때 해금을 들고 갔는데 미국에서 1년 동안 지내면서 교회와 교민들이 있는 곳을 방문하여 연주를 하게 되었는데 그것이 너무 즐거웠다. 그때 교회에서 만난 어떤 분이 하은에게 큰 동기부여를 해 주었다.
백혈병으로 투병을 하면서 병원에서 연주를 한 적이 있는데 음악이 흐르자 환자들에게 바로 활기가 생겼다면서 음악이 얼마나큰 역할을 하는지 말해 주었다.
“화려한 무대에서 연주를 하는 것도 중요하 지만, 아무도 찾아 주지 않는 곳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일인지 말씀해 주셨어요. 그 말씀이 여전히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저는 해금을 전공해서 해외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국음악을 선보이 고, 소외계층을 위한 연주를 많이 하러 다녀 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어요.”
해금을 전공하기로 결심

중학교 3학년부터 해금을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장애음악인을 가르치는 뷰티플마 인드의 오디션을 보았다. 그곳은 서양악기 아카데미였지만 하은은 오디션에 합격하여 아카데미에서 해금 공부를 할 수 있었다.
그러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디션에 참석했는데 연주 도중 줄이 풀렸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하였다. 바로 그 침착함과 최선을 다하는 열정에 하은은 오디션을 무사히 통과하고 일주일에 두 번씩 해금 공부를 하러 먼 곳까지 다녔다.
고등학교 때 콩쿠르에 나갔었는데, 다른 참여자들의 연습 소리를 들으면서 머리가 하얘졌다. 바깥 세상은 너무나 경쟁이 치열해서 전쟁터처럼 느껴졌다.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시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지금도 긴장될 때면 ‘사람들은 나의 관객이고 나의 음악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라며 긴장을 푼다.
대학 입시 준비는 쉽지 않았다. 국악과가 있는 대학이 많지 않고 서울대학교 외에는 장애인 특별전형이 없었다. 선택의 폭이 좁았던 터라 수원대학교 국악과 정시 일반전형으로 원서를 넣었는데 다행히 합격을 했다.
해금 연주자로서 성장하기까지

절대음감이라는 것이 국악을 할 때는 방해요소로 작용하였다. 국악은 평균율이 아니고, 음간이 서양음악과 달라서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좀 많이 걸렸다. 게다가 입시를 위해 매일 같은 곡을 반복하다 보니 지겹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졌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몇몇 수업은 따라가기가 힘들었다는 것이다.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연주를 해야 하는 관현악 과목에서는 시각장애가 큰 장벽이 되었다. 해금은 활의 포지션이 연주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바뀌는데 그럴 때 일반 학생들은 악보에 표시를 하면 되지만 하은은 악보를 볼 수가 없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다. 교수님도 ‘하은이는 관현악이 어렵겠네.’ 라고 말씀하시어 더욱 상실감이 컸다. 아무것도 못하고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하고, 그냥 교실 밖으로 나가 버리기도 하였다.
그래서 다른 데로 눈길을 돌렸다. 장애인 인권에 관심을 갖고 인권운동도 해 보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해 보면서 음악과 완전히 다른 활동들에 주력했다. 그래도 대학교 4년 동안 하은은 해금 연주자로서 성장하고 있었고, 하나의 인격체로서 성숙해지고 있었다. 비장애인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습득하고, 인내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서 산다는 것은 버텨 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졸업 연주회 준비도 엄청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의 마지막 연주회여서 모든 역량과 열정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자기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은 만족스러운 연주를 할 수 있었다. 하은은 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엄마에게 ‘엄마, 내가 4년을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 라고 인사를 했다.
학생이 아닌 사회인으로 자신의 삶에 책임감을 느끼고 있을 무렵 우연히 어떤 선생님의 산조 연주를 들었는데, 음악에 완전히 몰입되어 하는 연주에 감동을 받아 그때부터 원나경 선생님의 팬이 되어 다시 음악을 열심히 듣기 시작했다. 관현맹인예술단에서 역량강화 교육을 실시할 때 망설임 없이 원나경 선생님에게 교육을 받고 싶다고 하였고, 원나경 선생님도 하은의 얘기를 듣고 바로 응해 주셨다. 다시 해금 공부를 하면서 자신이 정말 해금 음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도 원나경 선생님의 지도를 받으며 연주자에게 좋은 스승은 길을 밝혀 주며 안내해 주는 등대 같은 존재이기에 원나경 선생님을 만난 것은 자기 인생의 행운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음악 활동을 하며
관현맹인전통예술단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공연이 학교나 청소년 쉼터, 병원 같은 곳에 찾아가서 하는 공연이다. 국악이라는 장르가 진입 장벽이 높다 보니,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늘 하면서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지만 연주를 다니면서 특수학급 선생님들이 감사하다는 내용의 짤막하지만 점자로 써 주시는 편지와 공연 후기들을 홈페이지에서 읽다 보면, 음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는 언어임을 실감하게 된다.
공연을 하다 보면 해금이 할 수 있는 음역대가 넓다 보니 크로스오버 장르의 레퍼토리가 많아졌는데, 그러다 보니 해금 연주자로서 도태되고 있지는 않은지 고민이 되었다. 전통적인 곡과 크로스오버 곡 사이에서 혼란스러워진다.
하은은 공연 보러 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전통음악을 전공한다고 해서 그런 공연만 보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뮤지컬, 클래식, 종교음악 CCM 콘서트처럼 다양한 음악을 감상한다. 공연 진행이나 프로그램들을 보면서 공연을 어떻게 구성할지 고민해 볼 수 있고, 다른 사람의 공연을 보면서 에너지를 받아 올 수 있기 때문이다.
SEM(Socially Engaged Musician, 사회참여적 음악가) 부트캠프 참여

하은이 관심 있게 보던 앙상블리안 인스타그램에서 부트캠프 공고를 보고 장애예술인으로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에서 참가해도 될지 고민이 많이 되었다. 그러던 중 신청서라도 한번 봐 보자 하는 마음에 신청서를 열어 보았는데, 장애예술인과 비장애예술인을 확인하는 항목을 보고 신청을 하였다.
“사회참여적 음악가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에는 너무 생소했어요. 그런데 찬찬히 되돌아보니 이미 저는 사회참여적 음악가로 살아가고 있더라고요. 음악을 통해 제가 가진 예술성을 잃지 않으면서 사회적인 메시지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사회참여적 음악가가 갖춰야할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음악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그어떠한 장벽 없이 연결할 수있는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런 연결 통로를 만드는 것이 사회참여적 음악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트캠프에서 함께하는 순간순간마다 인상적이었다. 심은별 대표는 장애예술인들과 음악 활동을 굉장히 많이 하고 있는데 면접 마지막의 ‘하은 님이 합격을 하든 그렇지 않든 그것은 장애 여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라는 말이 정말 감동이었다.
하은은 선정이 되어 부트캠프 OT에 참석을 했는데 명찰에 점자 스티커가 붙어 있어 구성원으로서 모두가 평등하게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의 소망

그녀는 하고 싶은 게 많다. 음악가 양하은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이 가장 크다. 예술단에서의 활동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과의 협업도 해 보고 싶다. 그리고 편곡에 관심이 많아서 재즈와 국악을 접목하는 등의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싶다.
지난해 일본 도야마현에서 열리는 “Sukiyaki meets the world 2023” 월드뮤직페스티벌에 참여하여 국악을 선보였다. 이 페스티벌에는 장애인 참가자가 관현맹인전통예술단 하나여서 스키야키 페스티벌에서 주목을 받았다.
관현맹인전통예술단 장재효 예술감독이 ‘Sukiyaki Meets the World Festival’ 고문이고, 서울드럼페스티벌 총감독으로 발이 넓은 분이라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활동이 다양해졌다.
주중문화원 초청으로 지난 6월에 중국 공연을 하였는데 중국 역시 관현맹인전통예 술단의 수준 높은 연주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맡은 공연을 열심히 하면서 관현맹인전통예술단의 단원이자 더 나아가 한 음악 가로서의 양하은의 연주를 보여 주는 자리가 많아지길 바라고 있다.
양하은
수원대학교 국악과 졸업 관현맹인전통예술단 단원
제7회 대한민국장애인예술대상경연대회 금상
2021 전국 무안 장애인 승달 국악대제전 동상
2024 퓨쳐와이드오픈 <the circle> 초연
2022 카타르 월드컵 초청 공연
2019 카네기홀 초청 공연 정기 연주회를 비롯하여 국내 외 공연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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